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6부 - 마르셀 프루스트 ●●●●●●●◐○○
"알베르틴 아가씨가 떠나셨습니다."
"알베르틴 아가씨가 떠나셨습니다." 번민은 얼마나 심리 분석보다 더 깊숙이 심리 상태 속에 파고드는 것인가! 조금 전, 자기 분석을 하면서, 이런 영별이야말로 내가 바로 바라는 바라고 믿었고, 또 알베르틴이 내게 주는 기쁨의 평범함을, 그녀의 방해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는 수많은 욕망과 비교하면서(그녀가 내 집에 있다는 확신, 말하자면 나의 정신상 분위기의 압력이 내 감정의 앞면을 차지하게 해 왔으나, 알베르틴이 떠나버렸다는 기별과 겨루어 보기조차 못한 여러 욕망은 기별을 듣는 즉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자신의 두뇌가 예민하다는 생각도 하고, 이제 나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알베르틴 아가씨가 떠나셨습니다'라는 한마디는 내 마음속에 더는 배겨 낼 수 없는 고통을 불러일으켜, 당장 그 고통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 p. 7.
. 드디어 주인공의 모든 자기합리화와 겉치장과 방어기제들이 벗겨지는 6부. 5부 내내 끝없이 괴로워하고 고민하면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이제는 마음을 확실히 다잡았기에 더 이상 알베르틴으로 인해 아파하고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는 주인공의 자만심을, 프루스트는 5부 마지막의 단 다섯줄로 사정없이 무너뜨려 버렸다.
. 그렇게 6부가 시작되자마자 주인공은 만남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삶과 심장을 꼭 쥐고 있었던 것은 알베르틴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어떻게든 그녀를 다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금전 공세부터 시작해서 누구나 속을 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떠보기에다 친구들까지 동원하면서 온갖 발버둥을 쳐댄다. 그런 추태들 중에서도 당신이 나와 헤어진다면 당신의 친구인 앙드레와 결혼할 거라는(그 와중에도 당신이 앙드레보다는 더 귀엽다며 은근히 흘리기까지 하고 있다. 어이구. 어이구-_-) 되도않은 편지를 보내는 게 압권인데, 당연히 알베르틴은 그럼 둘이서 예쁜 사랑 하시라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이제 어떤 방법도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그녀가 하고 싶은 거라면 어떤 조건이라도 좋으며 그렇게 매달릴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알베르틴에게 애걸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알베르틴이 오늘 저녁 안으로 돌아와 있도록 서둘러 손을 써야겠다. 봉탕네 사람들을 내게서 금전을 갈취하기 위해 조카딸을 이용하는 수상쩍은 인간으로 생각하기는 좀 씁쓸한데, 그런들 어떠랴? 알베르틴이 오늘 저녁 이곳에 돌아와 있기 위해 설령 내 재산의 절반을 봉탕 부인에게 주게 된대도, 알베르틴과 내가 둘이서 즐겁게 살아가는 데 충분한 재산이야 남겠지. 이러는 동시에 나는 그녀가 탐내던 요트와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이날 아침 주문하러 갈 틈이 있을는지 계산해 보았다, 이제는 온갖 망설임이 사라져, 어제만 해도 그녀에게 그런 것을 사 주다니 이 아니 슬기롭지 못하냐고 생각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서. 봉탕 부인의 동의만으로는 부족해서, 혹시 알베르틴이 숙모의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기 싫어 내 곁에 돌아오는 조건으로 그녀가 차후로는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요구한대도 좋지, 좋고말고! 어떠한 고통이 내게 닥쳐온대도, 나는 그녀가 멋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어야지.
- p. 10.
. 그동안 나름 이런저런 책을 읽어왔지만, 이정도로 어떤 명분도 자존심도 남겨두지 않은 채 철저하게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박는 장면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 다자이 오사무조차도 이야기 내내 끊임없이 자책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는데도 그 안에서는 그 비하를 통해 자기를 방어하려는 모습이 언뜻언뜻 비쳐보이는데, 프루스트는 그게 외면이든 내면이든 자신의 속물스러운 추함을 상세하게, 읽는 사람이 그 솔직함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고백하고 또 고백한다. 그래서일까. 80페이지 정도 '온갖 바보짓'을 거듭하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어떠한 조건이라도 무방하니 돌아오라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도 좋고 다만 매 주 세 번 잠들기 전에 잠깐 안아주길 바란다 - 아니 한 번 뿐이라고 해도 감지덕지하겠다"며 완전히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부분에 이르면 그동안의 한심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동정섞인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 하지만 이렇게 주인공을 밑바닥까지 까뒤집어 놓고 이제 와서 하하호호하면서 어영부영 둘을 맺어줄 프루스트가 아니다. 이야기를 읽는 입장에서 뒤이어지는 알베르틴의 퇴장은 더없이 냉혹하게 느껴지지만,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온갖 가면과 얼기설기 짜집어 놓은 허영을 낱낱이 벗어던지게 하는 것으로, 알베르틴의 역할은 끝이 난 것이다. 전체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쨌든 - 그게 어떤 모양이든간에 주인공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흘러간(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길디 긴 이야기를 써야 할테고, 그러려면 홀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쓴다고 해도(물론 그 솜씨는 천지차이겠지만^^;) 다른 누가 쓴다고 해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알베르틴에 대해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어떠한 조건이라도 무방하니 돌아오라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도 좋고 다만 매주 세 번 잠들기 전에 잠깐 안아주길 바란다는 절망적인 부탁 전보를 그녀에게 쳤다. 또 그녀가 한 번 뿐이에요 하는 대답을 보낸대도 나는 한 번으로 감지덕지했을 것이다.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전보를 친 지 얼마 안 되어 한 통의 전보를 받았다. 봉탕 부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세계는 우리 각자를 위해 한 번에 다 창조되지 않았다. 일생 동안에 짐작도 못한 일들이 거기에 연이어 덧붙는다. 아아! 전보의 첫 두 줄이 내 마음속에 일으킨 건 결코 번뇌의 제거가 아니었다. "불쌍한 벗이여, 우리의 귀여운 알베르틴은 이제 이승에 없사와, 이 무서운 소식을 그토록 그 애를 아껴 주신 당신에게 전함을 용서하소서. 그 애는 산책 중 말에서 떨어져 나무에 부딪쳤습니다. 우리의 온갖 노력도 그 애를 소생시키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 애 대신 죽어야!"
- p. 81.
. 이 긴 이야기의 후반에 다다르고 나니,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길디 긴 준비작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방향이 잡힌 4부부터 6부까지, 그리고 남은 마지막 7부에 이르는 길이 외갈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주인공이 샤를뤼스 씨의 자극적인 생활을 속속들이 목격하게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알베르틴을 의심하고 집착하게 했을 것이고, 그런 비정상적인 관계가 파국에 이르지 않을 리 없으며, 결국 주인공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끝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깨달음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 않은 게 없고 당연한 귀결이 아닌 게 없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는 대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종잡을 수 없는 길이었지만, 아무리 복잡하고 방대한 미로라 해도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는 한 줄의 길은 분명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시작되는 지점에 서서, 프루스트가 온 힘을,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마지막 생명까지 쏟아부어 그려낸 마지막 장면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벅찰지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렇다, 방금 프랑수아즈가 이 방에 오기 전에는, 나는 이제 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나도 등한히 한 게 없이, 정확한 심리분석가로서, 내 마음의 바닥을 잘 파악한 줄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지성은, 그것이 아무리 명석하더라도, 그 지성을 구성하는 요소, 일반적인 형태인 기화 상태에서의 유리를 가능케 하는 어떤 현상이 생겨, 그것이 응고하기 시작하지 않는 한 거의 짐작하지 못하는 여러 요소를 지각할 수 없다. 내 마음속을 똑똑히 보았다고 여겼던 것은 내 잘못이었다.
- p. 8.
흐르는 인생에서 우리 우정의 생명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느 기간이 지나면, 또(정계에서는 옛날 장관이, 극장에서는 잊혀졌던 각본이 다시 부활하듯이) 오랫동안 끊어졌다가 같은 사람 사이에 우정이 되살아나서, 기쁨으로 맺어지는 수가 있다. 10년이 지나면, 한쪽이 너무 사랑한다는 이유, 또 한쪽은 너무나 강한 상대방의 고집을 못 참겠다는 이유, 이러한 이유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절만이 남는다. 질베르트가 전에 나에 대해서 거절했던 모든 것, 못 견디겠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쉽사리 내준다 - 아마 내가 그것을 그다지 열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그 변화를 마음에 분명하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정답게 대해 주었고, 나하고의 결별을 결코 서두르지 않았던 까닭은, 나의 사랑이라는 장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 p.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