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부 - 마르셀 프루스트 ●●●●●●●◐○○
"아아, 그래 잘 했어. 프랑수아즈. 고마워, 물론이지,
나를 깨우지 않기를 잘 하고 말고.
잠시 혼자 있게 나가 줘, 조금 이따 부를테니."
초인종 소리를 알아들은 프랑수아즈가 들어왔다. "아이고 맙소사" 하고 프랑수아즈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이렇게 늦게서야 초인종을 누르시다니. 어찌할 바를 통 모르겠네요. 오늘 아침 여덟시쯤, 알베르틴 아가씨가 나한테 가져오셨던 짐을 달라고 하지 뭡니까. 쇤네야 감히 안 된다고 하지 못하고, 도련님을 깨웠다간 욕을 한 바가지 받을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쇤네의 생각으론 좀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시겠지 누르시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에, 아가씨에게 여러 말로 구슬려 보았습니다만 허탕. 아가씨는 마다하시고,이 쪽지를 도련님께 드리라 하시고는, 아홉시에 떠나버리시더군요." 그러자 - 인간이란 제 자신의 마음 속을 이다지 모른단 말인가, 나로 말하면 여태까지 알베르틴에 대해 아랑곳없다고 스스로 믿어 왔건만 - 내 숨구멍이 탁 막혀, 두 손으로 심장을 움켜잡자, 그 손은 알베르틴이 경편 열차 안에서 뱅퇴유 아가씨의 여자 친구에 관해 했던 폭로 이후론 겪지 못한 식은땀으로 갑자기 축축했다. "아아! 그래 잘 했어, 프랑수아즈, 고마워. 물론이지, 나를 깨우지 않기를 잘 하고 말고, 잠시 혼자 있게 나가 줘, 조금 이따 부를테니."
- p. 558.
. 4부의 마지막에서 애증과 의심으로 인한 뒤틀린 집착과 소유욕에 사로잡혀 갑자기 알베르틴과 결혼하겠다며 그녀를 파리로 데려온 주인공. 알베르틴은 사랑이 이뤄진 것이라 믿고 결혼을 기다리면서 주인공과 함께 살기 시작하고 둘은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짧은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무려 한 권이 55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5부 내내 묘사되는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와 계속되는 알베르틴에 대한 의심과 변덕은 둘의 발밑을 파들어간다. 어머니에게 순진무구하고 찡한 애착을 보이고 보리수꽃 달인 물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면서 아련하게 과거를 떠올리던 주인공은 어디로 사라졌나 싶을 정도로 -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감성적인 제목은 대체 어디갔나 싶을 정도로, 5부 내내 의심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모습은 고전문학의 인물이라기보단 스릴러물에 나오는 사이코의 집착에 더 닮아있다.
. 알베르틴과의 생활에 행복을 느끼다가도 이제 맛볼 수 있는 행복은 다 누린 것 같다며 앞으로 그녀와의 사이에 남은 건 권태 뿐일거라고 자기 속으로 침잠해버리고, 그러다가 그녀의 동성애 사실을 의심하게 되는 작은 낌새라도 잡았다 치면 그녀의 행적을 일일이 캐묻고 함정을 파서 그녀를 떠보고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하나를 가지고 고민한다. 그러다가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하고 알베르틴의 결백함에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뱅퇴유 아가씨가 초대되었다' 같은 한마디에 또다시 의심과 고통이 주인공을 휘감는다. 그나마 그런 와중에도 결코 알베르틴에게 손끝 하나 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홀로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다 조심스레 떠보는 선에서 그치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곧바로 행동에 나서는 요즘의 심리스릴러 물에 나오는 인물들에 비해 훨씬 음습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사소한 일로 애정은 행복의 위치에 자리잡는다. 그럼 안색이 빛나고, 사랑하는 이뿐만 아니라, 또한 사랑하는 이의 눈에 자기를 돋보이게 한 이들, 좋지 못한 유혹에서 애인을 지켜준 이들을 다정다감한 정으로 덮는다. 그러고서 이젠 안심이거니 여긴다. 그런데 '질베르트는 오지 않을 걸'이라든가, '뱅퇴유 아가씨가 초대되었다'라는 한마디로, 마련된 행복, 그쪽을 향해 자기가 뛰어간 온갖 행복이 와르르 무너지며, 해가 가려지며, 나침반이 방향을 바꾸며, 마음 속에 폭풍우가 광란하여, 언젠가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만다.
- p. 296.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책이나 인터넷의 몇몇 소개글을 읽었을 때, 그리고 이 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누구도 이런 내용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아름답고 훈훈한 내용일거라고 생각했기에(....) 책의 이런 분위기가 당황스럽지만,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흔들리는 주인공의 심리와 파국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전개에 이 책을 시작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페이지가 휙휙 넘어갔던 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이 나온 게 대략 1910년대 후반의 일인데, 이 때는 이미 수많은 고딕소설이 나왔고 추리소설들이 한창 쏟아지고 있는 시기였기에 이 글 역시도 그런 장르문학의 느낌을 한가득 담고 있고, 그래서 내겐 이 부분이 더 낯익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1-4부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길고 세세한 문장 역시도, 5부의 갑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불안정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데엔 정말 잘 어울렸다.
이 어릿광대들은 진실로 가득 찬, 심오하고도 독특한 인물들이자, 도스트예프스키에 특유한 인물들이지. 이 어릿광대들은 고대 희극의 등장 인물처럼, 역할이 없는 존재로 보이나, 인간의 마음의 참된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지 몰라!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 지껄지껄하거나 쓰거나 하는 이들의 과장된 투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들의 심중에서 자존심과 거만이 맡아 하는 소임을 주목했겠지?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애정과 제정신을 잃은 증오, 선량과 배신, 겁과 방약무인, 이런 게 한 성격의 양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그 성격이란 아글라야, 나스타샤, 미타에게 수염 뽑힌 대위, 알료사의 적이자 친구인 크라소트킨 같은 인물이, 실제 그대로의 제 '모습'을 보이는 걸 막는 자존심과 거만이지.
- p. 513.
. 특히 이 책의 마지막 80쪽이 주는 흡입력은 엄청나다. 알베르틴과 주인공은 주인공의 의심병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을 내자고 이야기하다 긴 대화 끝에 결국 헤어지지 않기로 결정하고는(....) 갑자기 도스트예프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오만으로 고통받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이제 눈앞의 파국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야말로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 자신이 먼저 알베르틴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할거라고 의기양양하게 마음먹고 편안하게 잠든 그 다음 날 아침. 그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알베르틴은 주인공이 잠든 밤 사이에 그를 떠나버리고, 홀로 남아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된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는 엔딩은 이 소설 전체 중에서도 손꼽힐만한 부분이다. '숨구멍이 탁 막혀, 두 손으로 심장을 움켜잡자, 그 손이 (중략) 식은 땀으로 갑자기 축축했다. "아아, 그래 잘 했어. 프랑수아즈. 고마워, 물론이지, 나를 깨우지 않기를 잘 하고 말고. 잠시 혼자 있게 나가 줘, 조금 이따 부를테니."' 프루스트는 5부의 마지막에서 550페이지 내내 이어지던 주인공의 교만과 겉치레와 자기방어를, 단 다섯 줄로 산산조각 내버린다. 어쩌면 이리도 -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진절머리를 냈던 나조차도 이건 냉정을 넘어 냉혹하기까지 하구나 중얼거리게 만들 정도로 - 가차없고 멋들어진 끝맺음인지.
새 나라에 상륙했을 때에는 새로운 환경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딴 나라였다. 나의 게으름부터가 새로운 형태를 띠기 때문에, 도저히 같은 게으름 같지가 않았다. 형편없이 궂은 날씨라 해도,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집에 갇혀 있기만 해도, 선상 여행의 미끄러지는 듯한 상쾌함, 마음 가라앉는 고요, 그리고 흥취를 느낄 수 있다. 또 화창한 날에 침대에 조용히 누워 지내는 일은, 나무의 줄기처럼 자기 주위에 그림자를 빙그르르 일회전시키는 일이었다. 또 새벽 미사를 드리러 가는 여인들처럼, 가까운 수도원에서 울리는 첫 번째 종이, 은은한 소리의 가랑비로 어두운 하늘을 희뿌옇게 물들이면, 훈훈한 바람이 금세 풀어헤쳐 흩날려 버릴 때면, 나는 어수선하면서도 즐거운 폭풍우의 하루를 느꼈다. 그런 날에는, 간간히 오락가락하면서 지붕을 적셔놓고 가는 비가, 한 줄기 바람이나 한 가닥 햇살에 금방 말라 버리면, 지붕은 비둘기 같은 소리로 속삭이면서 빗방울을 굴려, 바람이 다시 방향을 바꿀 때까지 잠깐 비치는 햇빛에 무지갯빛으로 반사하는 자회색 슬레이트를 반짝이게 한다. 이런 날에는 날씨의 변화, 하늘의 격변, 뇌우 등이 잇따르기 때문에, 게으름뱅이라도, 말하자면 자기를 대신하여 대기가 펼치는 활동에 흥미를 느껴, 하루를 허송했다는 생각은 않는 법이다.
-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