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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부 - 마르셀 프루스트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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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의 흐름은 나의 삶이자 나 자신이었음을.




나는 질베르트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생 루의 결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되는 나, 당시의 여러 가지 생각을 오늘 아침에도 그대로 가지고 있던 나는 그녀의 옆에 열여섯 살 가량의 소녀, 그 훤칠하게 자란 키가, 보고프지 않던 그 '시간'의 거리를 재어 보여 주는 아가씨가 있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빛깔이 없고 잡을 길 없는 '시간'이 그것을 이 눈으로 보고, 이 손으로 만지게끔, 그 아가씨의 모습으로 구현시켜, 아가씨를 하나의 걸작으로 만들어냈는데, 한편, 평행하게 내 몸엔 슬프게도 '시간'은 그 작품을 다 마쳤을 뿐이었다. 이 사이에 생 루 아가씨는 내 앞에 와 있었다. 그 오목한 눈은 맑고도 날카로워 찌르는 듯하였고, 새의 부리처럼 약간 굽은 콧날의 곡선은 스완의 코와 닮지 않고 생 루와 꼭 닮아 예쁘장하였다. (중략) 내가 잃어버리고 만 세월 자체로 빚어진, 미소 어린 이 아가씨야말로 내 젊음과도 비슷하였다.

- p. 477.





. 마지막 7부는 두 개의 시간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은 6부에서 비극적인 파국을 맞아 알베르틴을 영영 잃어버린 주인공이 파리로 돌아와 어린 시절 첫사랑인 질베르트(주인공의 친구인 로베르와 결혼했다)와 다시 친구가 되어 그녀와 거리를 산책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고, 또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또다시 20년 정도가 흐른 후, 오랜 요양생활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로 요양소에서 나와 쓸쓸하게 파리로 돌아온 주인공이 게르망트 저택에서 열린 저녁 만찬에 참석해서 깨닫고 결심한 것들에 대해 털어놓는 이야기다. 시기는 다르지만 두 이야기 모두 이제는 '잃어버린 채 흘러간' 시간 위에 선 주인공이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자기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었음을, 그렇게 시간도, 사람도,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도 '다음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어 본댔자 질베르트는 기억 못 할지도 모르고, 또는 거짓말을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그런 건 내게 알아볼 만큼의 흥미도 없었다. 내 마음이 질베르트의 얼굴보다 더 변해 버렸으니까. 이 얼굴은 이젠 내 마음에 거의 하나도 들지 않았고, 특히 나는 이제 불행하지 않았고, 재고해 본들, 젊은이와 어깨를 나란히 총총걸음으로 걸어가던 질베르트와 마주쳐서 그토록 불행하게 되어 '끝장이다, 그녀하곤 영영 만나지 않겠다'고 혼자 말했던 기분을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먼 해, 내겐 긴 번민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에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삼라만상이 낡아지고, 모든 게 소멸하는 이승에서, 와르르 무너져 아름다움보다 더 빈틈 없이, 자취 없이 부서지는 것이 있다. 그건 '슬픔'이다.





.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부분에 이르러, 프루스트는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길고 긴 이야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 그러나 실제로는 자기 속의 저 아득히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었던 시간에 대해 쓸 것이라고. 오해와 서투름으로 인해 어느 새인가 멀어져버린 질베르트와의 씁쓸했던 첫사랑, 사랑과 열정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해 파국으로 끝나버린 알베르틴과의 일들에 대한 후회, 그리고 젊은 시절의 그를 둘러싸고 있던 샤를뤼스, 샤를리, 로베르, 엘스튀르, 블로크, 게르망트 공작부인 같은 인물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스완과 오데트, 베르고트, 프랑소와즈와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 쓰겠노라고. 그리고 자신의 실패와 잘못과 좌절과 절망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실패하고, 잘못하고, 잃어버리고, 흘려보낸 채 겉보기에는 무엇 하나 성취하지 못한 삶이었지만 그 모든 시간과 사건들은 사라지거나 흩어지지 않았다. 그의 깊은 곳 어딘가에 이야기의 원천이 되어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다.


. 그와 함께 시간은 주인공의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그 열매를 맺고 있다. 마지막 만찬(7부 마지막에서 질베르트와 로베르의 딸인 생 루 아가씨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주인공과 질베르트는 대략 40살 전후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에서 주인공은 질베르트의 딸인 질베르트 생 루를 통해 - 그녀는 외가쪽으로는 스완과 오데트, 질베르트의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부터, 친가쪽으로는 로베르 생 루와 게르망트 가문의 '게르망트 쪽'에서부터 이어져 있다 - 시간이 만들어낸 결실을 목도한다. 이제 막 열 여섯이 된 그녀는 한 때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던 20년 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고, 이제부터 그녀의 시간은 이어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를 통해 시간은 계속되어, 이야기를 읽는 우리와 그 다음을 통해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한 줄기의 새로운 빛이 이 몸 안에 비쳤다. 그리고 나는, 이와 같은 문학 작품의 재료 모두가 나의 지나간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몸을 통해 저장된 하찮은 쾌락, 게으름, 애정, 괴로움 안에 싸여, 이런 재료가 내게로 왔다는 걸, 식물을 키우는 데 필요한 온갖 양분을 보존해 두는 씨앗만큼도, 내가 그런 재료의 장래나 생존만큼도 짐작하지 못했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나는, 식물이 자랄 때의 씨앗처럼 죽어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자라나는 식물을 위해서,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 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책상을 대하면 주제조차도 찾을 수 없었던 이러한 책들과, 나의 생활이 언젠가는 접촉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그러므로 그날까지의 나의 모든 생활은, '천직'이라는 표제하에 요약될지도 모르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안될지도 모른다.




. 그렇게 주인공 -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주인공과 하나가 된 프루스트는 이러한 '시간'에 대해 쓰겠다고 선언한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자신 속에 오롯이 남아 있던 '되찾은 시간'에 대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시간에 대해. 그게 얼마나 길고 긴 이야기가 될 지, 과연 병들고 약해진 자신에게 그 긴 이야기를 쓸만한 시간이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남은 평생 내내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삶을 살게 된다 할지라도 모든 삶을 바칠 것임을. 평생 낮에 잠을 자고 밤에 글을 쓰며 은둔하는 생활을 살며 오직 글을 쓰고 글을 완성할 것임을. 그런 프루스트의 결심은 -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면서 서른 여덟 살부터 쉰 한 살에 이르기까지 병든 몸을 부여잡고 의지만으로 삶을 연장해가며 결국 완성해낸 글은, 정말 길고 또 길어서 읽는 사람을 괴롭히고 때때로 진절머리를 내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동안의 고생만큼이나 큰 울림과 위로를 준다.





내가 내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내고자 한 것은, 김 빠진 '시간'의 관념, 우리에게서 분리되지 않은 지나간 세월의 관념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공 부인 댁에 있으면서 스완 씨를 배웅하는 저 발소리, 드디어 스완 씨가 떠나버려 어머니가 2층으로 올라오려는 기척을 알리는 작은 방울의 짤랑짤랑하는 금속성의, 끊임없이 울리는, 요란한, 산뜻한 그 소리를 나는 다시 들었다. 아득히 먼 과거에 있었던 소리건만 나는 옛소리 그대로 들었다. (중략) 그 방울 소리를 좀 더 가까이 들으려면, 나는 나 자신 가운데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따라서 그 방울 소리는 언제나 내 가운데 있었고, 또한 그 방울 소리와 현재의 순간 사이에는,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줄도 몰랐던 무한히 펼쳐진 온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중략)


이토록 장구한 시간의 흐름이 나를 통해 단 한 번의 중단도 없이 존속되고, 생각되고, 분비되었음을, 그 시간의 흐름은 나의 삶이자 나 자신이었음을, 그뿐만 아니라 나는 그 온 시간을 줄곧 내게 메어 두어야 했음을, 그것이 나를 받쳐 주었음을, 머리가 뱅뱅 도는 이 시간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나임을, 시간을 옮겨 놓지 않고선 몸을 움직일 수 없었음을 깨닫자, 나는 질겁과 피로를 느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내 안에 있는 콩브레의 정원에서 내가 조그만 방울 소리를 듣던 날,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줄 모르던 그 망망한 차원의 기점이었다. 나는 내 발 밑 - 사실은 나의 안이지만 - 에 마치 몇천 길의 골짜기를 굽어보듯이, 무수한 세월을 바라보자 어지러웠다.

- p.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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