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 프랑크 디쾨터(열린책들) ●●●●●●●◐○○
농촌의 경우에는 앞서 대약진 운동으로 당의 신뢰성이 떨어졌다면
문화 대혁명으로 당 조직이 붕괴되었다.
. '해방의 비극', '마오의 대기근'에 이어 '문화대혁명'으로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시리즈가 끝이 났다. 장제스의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던 공산주의 중국의 희망찬 시작은 4반세기 내내 계속된 숙청과 기근과 문혁의 비극 속에 1억명이 희생당한 처참한 실패로 끝을 맺었다. 말이 1억이지 온 세계가 뛰어들었던 2차세계대전의 희생자가 7,500만이었는데 중국 한 나라에서의 희생자가 1억이라니. 할 말이 없다.
. 그 비극들 중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고발해서 맞아죽게 만들고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었던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은 그 무엇보다 컸다. 반대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동조자들의 말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창기에 문화대혁명의 주장에 동조하여 정치도 경제도 군사까지도 사회주의와 인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던 조반파들은 이에 반발하는 군과 군의 반발에 위기감을 느낀 마오쩌둥의 협상 과정에서 제물이 되어 팔아넘겨졌다. 심지어 이후 문화대혁명의 사냥개로 앞장서서 활동한 홍위병들마저도 그들의 쓸모가 다해지자 더 이상의 소요를 막겠다는 마오쩌둥의 뜻에 따라 '현장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시골 오지로 분산되어 내려보내져서 10여년이 지나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정권의 2인자였던 린뱌오조차도 마오쩌둥의 견제와 경계를 이기지 못하고 암살시도에 연루되어 도망치다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당했을" 정도니, 마오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가 철저하게 희생된 10년이었다.
. 심지어 아이러니하게도 문화대혁명을 통해 마오쩌둥이 이룩한 공산주의는 와해의 길을 걷고 만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당은 수차례 뒤집혔고 이 광풍 속에서 대다수의 지도자들과 수많은 당원들이 숙청당하면서 당은 민중을 통제할 힘을 잃었다. '마오의 대기근'을 겪은 민중들은 더 이상 당의 지시를 믿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급격하게 자본주의를 수용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이 이를 승인하면서 중국의 초기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수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 결국 반대자도, 추종자도, 이념까지도 모두 무너지고 마오쩌둥이 죽자마자 무너지게 될 1인 숭배만이 남아있었던 15년의 시간. 하지만 마오쩌둥의 꿈이 공산주의 중국을 세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중국의 또 다른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면, 이보다 만족스러운 15년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문화대혁명으로 당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집권 말기의 주석이 파벌을 이용해 다른 파벌을 견제하는 동안 대중은 조용히 그 기회를 이용해서 각자의 생활에 매진했다. 특히 농촌의 경우에는 앞서 대약진 운동으로 당의 신뢰성이 떨어졌다면 문화대혁명으로 당 조직이 붕괴되었다. 수백만 명의 농민들이 암시장을 열고, 공동 재산을 나누고, 토지를 분배하고, 몰래 공장을 운영하는 등 조용한 혁명을 통해서 은밀하게 전통적인 관십을 되살렸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 9월 이전부터도 이미 많은 농촌에서 계획 경제를 포기했다.
- p. 17.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