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랄파마도어 :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제5도살장>에 등장하는 외계 행성
**B612 :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행성
사마가 죽었다고 들었다.
기린은 몹시 신이 난 어조로 사마가 왜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자랑했다. 나는 사마를 내심 응원해오고 있던 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경청하는 시늉을 했다. 기린은 작은 반대의 목소리조차 참지 못했다. 그는 소설이 ‘누구에게’ 읽힐지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진짜배기 소설은 독자에게서 ‘무엇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기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마, 사마는 안타까웠다.
사마의 삶은 내 삶과 닮은 데가 있었다. 항상 기린이 나를 일부 참고하여 만든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기린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기린의 가녀린 자존감이 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또’ 박살난다는 것은 이전에도 그랬다는 뜻이다.
기린은 ‘네 최근작이 S작가의 결말과 비슷하게 끝나더라.’라는 말을 듣고 이미 한 번 폭발했었다. 그래서 미리 말한 것이다. 기린은 작은, 정말 작은 반대의 목소리조차 참지 못하는 작가라고 말이다.
어쨌든 다시 사마로 돌아와서, 그가 죽은 것은 정말 슬픈 일이었다. 게다가 기린이 왜 사마를 꼭 죽여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마는 주인공이었고 자신이 할 일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기린은 이 사마 이야기를 아주 오랫동안 공을 들여 썼다. 기린이 대서사시의 중간 지점에서 사마를 죽인 것은 실수도 엔딩도 아니다. 기린은 여기서 ‘무엇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가 ‘무엇을’ 읽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사마에게 ‘무엇을’ 던졌는지, 그래서 독자들은 그것을 보았는지 말았는지.
잠시 사마의 일대기를 이야기하고 싶다.
사마는 장신의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왜 알 수 없는가 하면, 사마가 외계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마는 트랄파마도어* 행성과 아주 가까운, 그러나 교류는 하지 못하는 다른 행성에 살고 있었다. 사마의 행성은 평화롭지 않았다. 또 사마와 그의 가족들은 트랄파마도어인들처럼 몇 차원을 보는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마의 행성은 오히려 지구와 비슷했다. 그들은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주에 다른 지성체가 있는지 알기 위해 매년 사람을 뽑아 우주로 쏘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약 20%의 사람은 타죽고 말았다. 사마의 행성은 과학 발전이 조금 더뎠다.
사마의 차례가 왔을 때, 사마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사마는 직접 지원하여 뽑힌 우주 비행사였다. 이 새로운 탐험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훈련들을 견뎠고, 몇 개국의 언어를 배웠으며, 자신의 행성에 대해 여러 나라 말로 적힌 지도와 서적과 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사마가 우주선에 올랐을 쯤에는 사고 발생률이 10% 아래로 떨어진 시점이었다. 무사히 귀환하는 우주 비행사들이 많았다. 물론 가끔 여전히 타죽는 사람들이 있었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그 정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사마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사마가 탄 비행선은 빠르게 하늘로 쏘아져 올라갔다. 이들은 로켓 대신 자신의 행성에서 나는 가연성 물질을 태워 우주선을 보냈다. 사실 정확히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기린이 이 지점을 굉장히 애매하게 서술해놓았기 때문이다. 기린은 행성을 떠나기 전 사마를 눈에 띄지 않는 단세포 수준의 비중으로 설정했음이 분명했다. 사마의 비행선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나는 사마의 친구 이누가 우주 비행에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누는 비행선 발사 과정에서 불타 죽고 말았다. 10%는 여전히 우습게 볼 수 있는 확률이 아닌 것이다.
다행히 사마는 무사히 우주로 간다. 무수히 많은 행성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지성체를 찾는 데 실패한다. 바로 코앞에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살고 있었는데도!
사마가 지구를 찾은 것은 지구 주변의 엄청난 쓰레기들 덕분이었다. 쓰레기들은 고리 모양으로 지구를 감싸고 회전하고 있었다. 사마의 행성도 쓰레기들 덕분에 골머리를 앓다가 우주로 쏘아 보낸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사마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쏘아올린 쓰레기는 추후 다시 하나하나 수거하여 정리해야 했다.) 이 쓰레기 행성에는 분명 지성체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사마는 지구 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사하의 비행선 연료가 마침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사하의 비행선은 이리저리 기우뚱 거리다가 마침내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사하는 이누를 생각했다. 불에 타 죽을 확률은 여전히 10% 안팎이었을까?
사마는 다행히 강에 빠진다. 불타는 유성 덩어리나 다름없던 비행선에서 죽지 않을 수 있던 까닭은 보호 장비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사마는 허리띠에 달린 여러 버튼 중 하나를 눌러 구명보트를 꺼낸다. 거기에 올라타고 물기슭까지 갔다. 사람들이 잔뜩 모여 수런수런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마는 마침내 지성체를 만났다는 생각에 눈물마저 흘렸다. 한 종족의 오랜 숙원을 사마가 해결한 것이다.
사마가 처음 지구인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나도 울었다. 그것은 219페이지 61번째 줄에 나온다.
‘사마는 강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발자국이 움푹 패며 물이 고였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마는 용감하게, 위풍당당한 태도로 몸을 일으켰다. 사마의 행성인들은 키가 컸다. 사마도 2m 정도는 되었다. 사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물었다.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나는 그 문장을 사랑했다.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그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마는 지금 한 은하를 건너와서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외계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위대한가, 얼마나 바보 같은가.
지구에 오기 전에 사마는 불타는 행성에 먼저 갔다. 그곳의 대지는 타오르고 있었고 대기 중에는 독가스가 가득했다. 숨을 쉬거나 맨발을 디딜 수 없어서 사마는 우주 비행복을 입고 산소통을 짊어진 채 행성을 탐험해야 했다. 그때도 사마는 거대한 돌더미들 사이를 지날 때마다 그 말을 외치고 다녔다.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아주 큰 목소리로, 마침내 독가스가 마스크 사이로 스며들어 비행선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사마는 총 10번이나 그 말을 외친다.
당연히 행성에 생명체는 없었다.
기린은 사마를 죽인 것에 아무 죄책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에는 몇 번이나 사마가 왜 죽었는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기린은 ‘아니, 그냥 더는 쓰고 싶지 않아서.’로 대답을 일축했으나 수상한 구석이 있었다. 기린의 글은 단 한 번도 ‘그냥’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캐릭터의 죽음과 탄생 모두 이유가 있었고 설령 한 줄로 스쳐간 곳이 있더라도 반드시 의미가 있었다.
“장난치지 마.”
내가 기린에게 말했다.
“사마가 죽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잖아.”
기린은 이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이게 네 소설의 끝일 리 없어.”
기린이 푸푸 숨을 내쉴 때마다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넌 뭘 믿고 그렇게 자신하는 건데?”
이번에는 기린이 나에게 말했다.
“음.”
나는 꽤 오래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사마는 나를 닮았으니까. 너는 사마의 일대기를 끝까지 쓸 의무가 있어.”
기린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귀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 사실 사마를 만들 때 나를 참고해서 만들었잖아.”
기린이 담뱃재를 터는 것을 잊어버려 이불에 구멍이 났다. 기린에게서 담배를 빼앗자 기린은 그제야 놀라며 이불을 두드렸다.
“너를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아니란 말이야?”
“너를 참고했다고…….”
갑자기 기린이 또 폭발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손을 휘저으며 빠르게 말을 바꿨다.
“아니라면 내가 착각한 걸 수도 있겠네.”
“사마를 만들 때 누군가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오긴 했지.”
기린이 말했다. 기린이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유하게 반응하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가 나는 아니다 이건가?”
“아니야, 네 말이 맞아.”
기린은 이제 방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원룸이어서 기린은 직선으로 서성거리지도 못하고 페로몬에 잘못 홀린 군대 개미마냥 원형으로 맴돌았다.
“문제는 너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게 아니라는 거지.”
“뭐라고?”
“그리고 네 말도, 그 전에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는 거야.”
“무슨 뜻이야?”
“나는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을 사마에 섞어 넣었어. 사마에게 섞여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너 같은 반응을 하더군. 사마가 죽으면 안 된다는 말.”
“그 다른 사람은 또 누군데?”
“너도 알고 있는 친구야.”
이상하게 화가 났다. 나는 여전히 뱅글뱅글 돌고 있던 기린을 잡아 침대에 다시 앉혔다.
“그래서, 누구?”
기린은 사마의 죽음을 철회하지 않았다.
대신 사마를 위한 유서를 만들었다. 이 유서는 사마가 자신의 행성에서 우주 비행사로 뽑혔을 때 작성한 것이었다. 그곳의 우주 비행사들은 모두 유서를 작성해야 했다.
사마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사마의 유서는 항상 비장하게 시작했다가 웅장하게 끝이 났다. 사마는 명예, 부, 또 무엇보다도 사마 본인에게 중요한 탐구심을 위해 행성 조사에 참가한다고 적어두었다.
‘원하는 가장 큰 보상은’
이 문장 뒤에 놀랍게도 사마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려 넣었다.
행성 B612**는 당연히 사마가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이것은 기가 막힌 우연일 뿐인 셈이다.
‘이 안에 있다. 이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다녀오고 나면 상자를 열어볼 것이다.’
사마의 유서는 이런 문장으로 끝났다.
사마의 죽음을 발표한 다음 날, 오전 6시에 기린이 찾아왔다. 기린은 취해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신 것이 분명했다.
“너도 내가 여태 쓴 게 다 헛짓거리였다고 생각해?”
기린이 물었다.
“사마를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게 했으면 더 나았을까?”
“누가 그런 말을 했는데?”
“사마의 다른 한 쪽이.”
기린은 딸꾹질을 시작했다. 술에 취해 혀가 꼬인 기린의 말을 딸꾹질 속에서 알아듣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게 대관절 누구냐는 말이야.”
“희. 김 희.”
“희가 사마의 반쪽이라고?”
“그래.”
얼떨떨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희는 우리 중 가장 체격이 작은 친구였다. 얼굴이 창백했고 단 한 작품도 완성하지 못했으면서 늘 시를 적는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 그렇게 해야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바로바로 쓸 수 있다는 게 희의 주장이었다. 희는 기린보다도 더 SF소설을 좋아했다. 희가 쓰는 시도 대부분이 SF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들이었다.
희가 나와 같이 사마의 참고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무나 말하는 거 아니고?”
“아니야. 내가 설마 그런 실수를 하겠어?”
“희와 사마는 전혀 닮지 않았어.”
“너도 사마와 별로 닮지 않았어.”
모욕을 당한 듯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희보다는 차라리 내가 더 닮았다고 자신할 수 있다고.”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무뚝뚝한 짜증이 말투에 묻어나고 말았다. 기린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가 누군가를 빗댄 글을 쓰는 걸 싫어하는 거 알지?”
“그래.”
“그런데도 사마는……, 사마만큼은 굳이 누군가에게서 베껴 온 이유를 알아?”
“뭔데?”
“나 혼자서는 도저히 완성시킬 수 없는 캐릭터였거든.”
기린이 맨바닥에 담뱃재를 털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희를 재료로 썼어. 하지만 재료가 같다고 같은 요리가 나오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희는 자신을 재료 삼아 만든 캐릭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어.”
“희가 화냈단 말이야?”
희는 감정이 아주 옅은 친구였다. 희가 크게 화를 내는 건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 기린이 희가 기르는 작은 강아지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는 놀이를 했을 때였다. 그때 희는 아주 무서운 어조로, 한 번만 더 그 강아지를 건들이면 연을 끊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화를 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마를 죽였다는 걸 알자 그럴 바에야 왜 굳이 썼냐고 하더라고.”
풀이 죽은 기린은 조금 가엽게 보였다. 그러나 나도 사마의 죽음에 반대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애써 기린을 위로하지 않았다. 그냥 기린이 희의 말에 놀라 결국 의견을 번복하고 사마를 살려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원고를 넘기지 않았으므로 사마를 살릴 기회가 남아있었다.
“사마의 모티브가 된 사람 둘 다 죽음을 반대하는데 너는 강행하려는 이유가 뭐야?”
기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꾸도 없이 방바닥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서 있었다. 기린이 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더 자야하므로 기린에게 적당히 집에 있다가 가라고 이야기하고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사마가 꿈에 나왔다. 용맹한 사마는 이번에도 다른 행성에 가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마가 간 곳은 하필이면 트랄파마도어 행성이었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새로 알게 된 B612의 어린 왕자를 관찰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사마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단번에 사마와 어린 왕자 사이의 공통점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긴 손(혹은 촉수)을 내밀어 사마를 잡았다. 사마에게 대답했다. 우리가 듣고 있소, 사마 선생.
푹 자고 일어나니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부재중 통화가 8건이나 찍혀 있었다. 기린으로부터 6통, 희로부터 2통이 왔다. 나는 머뭇거리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기린 : 기막힌 소식을 알려줄까. 편집부에서 사마를 살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어. 너와 희는 좋겠지, 그렇지? 나는 이제 완전 한물 간 작가나 다름없어. 내가 사마를 죽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이야? 비록 너희에게서 따왔다지만 내가 직접 만든 내 캐릭터고, 내 작품인데, 내가 그저 심술이 나서 사마를 죽였겠어? 그럴 사람으로 보인다 이거야?
기린의 메시지에는 점점 오타가 생기기 시작했다. 분명 6시에 내 집에 방문한 그 이후로 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기린 : 당장 작업실로 가서 그 작품을 지워버릴 거야. 플롯 노트도 태워버리겠어. 사마를 도로 살릴 바에야 없는 글로 만들어버리는 게 나아.
나는 급히 기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린은 통화음이 꽤 길어질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음이 끊기고 안내 메시지가 나오기 직전에서야 기린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목이 잠긴 것 같았다.
“네가 남긴 메시지를 봤어. 정말로 글을 지웠어? 노트도 태우고? 사마 이야기에 결말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야?”
“나는 최선의 결말을 만들었어. 사마가 죽는다. 이 외의 결말은 생각할 필요도, 가치도 없어.”
기린은 완고했고 나는 이럴 때는 물러서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희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보냈어?”
“그래.”
“희는 뭐라고 했는데?”
기린이 목을 가다듬고 희 흉내를 냈다.
“차라리 잘 됐네. 이제 작가 정신이라느니 하는 얘기는 그만두고 주변 평도 좀 들어 봐. 너 말고 모두가 사마를 살리고 싶어 하잖아.”
“저런.”
달리 나오는 말이 없었다. 나도 여전히 사마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설득해 봐. 네가 사마를 죽인 데에 진짜 이유가 있다면 희도 받아들이겠지. 그런데 희나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편집자가 반대한다고 해서 네가 결말을 바꿀 건 아니잖아?”
기린이 조금 진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희에게, 아니지, 우리에게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조금만 알려줘. 힌트를 달라 이 말이야. 그러면 우리도 이해하고 사마를 죽일 수 있겠지.”
그 말을 하는데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사마를, 죽일 수, 있겠지. 마치 사마가 어디선가 진짜 태어난 사람인 마냥.
“좋아.”
한참 고민하더니 기린이 마침내 대답했다.
“사마를 왜 죽여야만 하는지 이유까지 적고 완결을 내겠어. 그리고 나머지 반응은 독자들에게 넘길 거야. ‘뭔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어.”
“그래.”
대답하면서 나는 꿈을 떠올리고 있었다.
트랄파마도어에서 사마는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