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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Oct 23. 2024

양의 상자 (2)

이튿날 오전 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희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정반대 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아주 멀었다가, 아주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희가 찾아온 용건은 뻔했다. 사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마침 기린의 원고를 읽고 있었다. 사마가 처음 우주 비행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장면을 읽던 참이었다.


사마의 아버지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은 청소부였다. 사마가 처음 우주 비행사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는 사마에게 계속하여 너만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마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우주 비행사로 뽑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의 확률로 잿더미가 되는 것보다는 매일 살아남아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소설의 초반부에서 사마의 아버지는 살해당한다. 새벽에 청소를 하러 나갔다가 강도와 마주친 것이다. 사마의 동네는 치안이 좋았다. 사마의 행성에서 그렇게 강도를 만나 죽을 확률은 5%가 채 되지 않았다. 이는 사실상 폭력 범죄가 거의 없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마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일주일 후 자수했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뉴스에 크게 보도가 된 사마의 어린 얼굴을 보고 매일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저렇게 어린 아이에게서 아버지를 뺏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 있었다고 말이다.

범인이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는 사마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온 행성 사람들이 사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범인을 용서하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범인에게 사형을 구형해달라는 편지를 쓸지 궁금해 했다. 


사마는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인터뷰에 나가는 것을 수락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 말을 했다.

“저는 우주 비행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복수할 겁니다.”

‘어떻게’ 복수 할지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마는 한동안 빗발치는 질문 공세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사마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키가 2m가 될 동안에, 우주 비행사 수업을 마치고도, 마침내 이누와 함께 별에서 쏘아져 나갈 때에도, 사마는 늘 일정 부분 침묵하며 살고 있었다.

사마가 자신의 복수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장면은 마침내 우주 비행선이 완전히 행성의 궤도 밖으로 벗어난 다음에 나온다.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누구도 내게 그런 것을 요구 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외계인이다.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물론 이누가 죽기 전까지 사마의 선언은 다소 과격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이누가 우주선에서 새카맣게 타 죽어버린 후, 사마는 정말로 한동안 온 세상의 외계인이었다. 사마의 결의를 아는 사람도, 사마의 가정사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마는 바로 이런 이유로 아버지가 우주 비행사를 꿈꾸었던 것인가 생각했다. 다른 생명체를 만날 기회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별다른 기약 없는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을까.


희는 사마의 캐릭터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린의 얄팍한 작가 정신에 대한 불평을 토로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실 나도 어제까지는 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희는 사마 이야기를 읽지조차 않은 상태였다.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 희에게 왜 사마 일대기를 읽어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희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양의 상자라니, 제목이 유치하잖아.”

그것은 기린을, 나를, 사마를 모욕하는 문장이었다. 사마는 결코 그런 식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내게서 비롯한 부분이 일부 있다면 더욱더 그랬다. 희는 사마가 자신을 본 따 만든 캐릭터임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문득 모든 것이 희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기린이 사마를 죽인 것은 사실 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물론 망상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길 때마다 툭하면 편집적인 망상이 들곤 했다.

“전혀 유치하지 않아.”

내가 변론했다. 

“사마의 시점으로 볼 때, 그건 완벽하게 잘 따 온 모티브야. 너 <제5도살장>은 읽어 본 거야? 사마의 이야기에서는 그 소설이 <어린 왕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희가 손을 내저었다.

“그만해, 그만. 전부 기린을 위한 변명이잖아. 누가 <제5도살장> 같은 걸 읽겠어?”

“너는 시를 쓴다는 사람이 문학에 너무 각박한 경향이 있어.”

“어쩔 수 없어.” 

희가 대꾸했다. 

“문학은 원래 각박해야 해. 그게 아니라면 내가 기린에게 화를 낼 이유가 뭐가 있겠어. '작가 정신' 운운하던 기린이 중요한 소설의 주인공을 그냥 주변인을 본 따 만들다니. 멍청한 실수야. 게다가 그 소설은 <제5도살장>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 사마가 도착한 곳이 지구인지 트랄파마도어 행성인지 헷갈릴 지경이라고.”


공교롭게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희는 나의 침묵이 동의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렸다. 희에게는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읽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희가 아직까지 데뷔하지 못한 것은 그 재주 탓이었다. 희의 시는 과하게 감정적이었다. 희의 문장은 하나 같이 불편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실의 길에 다다르는 건 불편한 일이기 마련이다.

희는 한참 악평을 늘어놓다가 침묵이 깨지지 않자 마침내 물었다. 

“그러면 너는 사마를 살리고 싶단 말이야?”

“응.” 

“사마는 존재 자체가 실수인 캐릭터인데도?”

“우리는 다 그래, 희. 인간은 누구나 그래. 실수로 태어나버린다고.”

“하지만 사마는 인간이 아니잖아. 문학 안에서 실수로 태어나는 인간은 있어서는 안 돼. 그건 3류 소설이야. 기린이 이 글로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이 소설을 편집부에 넘기는 데는 반대하고 싶어. 물론 나 혼자 반대해서는 의미가 없겠지. 기린도 내 말을 들을 리 없고. 그래서 너를 찾아온 건데.”

“기린은 이미 마음을 정했어. 자신이 완결에서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솔직하게 적은 후 결말부를 쓰기로 했다고. 기린에게 조금 더 시간을 줘 봐. 뭔가, 정말 의외로 뭔가 대단한 걸 써올 수도 있잖아?”


사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기린이나 희나 나나 3류 작가들이었다. 모두 실수로 사람을 만들고 만회하기 위해 우주선에 태우고 끝내 실패하여 지구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 바깥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다가 결국에는 문제의 해결법은 지구에 있다는 것,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클리셰를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기린을 우리 둘보다는 조금 더 높게 쳐주고 싶었다. 기린은 우리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사람이었고 그나마 '작가'였다. 희는 자신이 원하는 시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예 투고를 할 생각이 없었고 나는 쓰는 족족 떨어지는 중이었다.

사실, 진심으로는, 기린을 응원하고 싶다기보다 사마를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희의 어떤 부분이 사마와 닮아있는지 알고 싶었다. 기린이 사마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모두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사마가 한 그 말, 나는 아무것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사마의 일대기가 가진 유일한 메시지였다고 해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마도 타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사마는 우주를, 행성과 행성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아주 많은 말을 했다. 처음에는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우주 비행선 안에는 오로지 사마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지구를 발견하기 직전에 가서는, 말을 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우주 비행선 안에는 오로지 사마 혼자였기 때문이다. 혼잣말마저 하지 않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사마는 정성들여 편지를 썼다.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였다. 어차피 부치지 못할 편지였다. 이 편지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떠올리지 않겠습니다. 행여 어느 지성체가 살아 숨 쉬는 행성에 도착하게 되거든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꼭 널리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마는 매일 혼자서 인사를 하는 버릇을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공에 대고 잘 잤습니다, 하고 말했다. 밥을 먹기 전에는 항상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말했고 샤워하면서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사마는 자꾸만 뱉어내고 싶었다. 뭔가 길고 구불구불한 것이 뱃속에 있는 것 같았다. 뱀을 통째로 삼켜버린 기분이었다. 사람은 그저 혼자여서 미칠 수도 있는 거구나. 사마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제5도살장>에서도 동물원이 나올 때 두 명의 인간을 넣은 것이 분명하다. 

인정 할 건 인정해야겠다. 사마의 일대기에는 <제5도살장>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이 나온다. 기린이 그 소설을 읽고 감명 받아 쓴 이야기가 사마의 일대기이기 때문이다. 기린의 말랑말랑한 뇌는 쉽게 다른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그걸 고스란히 내뱉는 버릇이 있었다. 나나 희가 기린의 '작가 정신'에 대해 삐뚤어진 생각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린은 좀체 스스로 뭔가 만들어 내지 못했다. 계속 자신이 본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되풀이 하여 이야기 할 뿐이었다. 하지만 기린은 등단에 성공했다. 기린이 아름답다고 말한 아름다운 것들 덕분이었다. 기린이 모티브를 가져온 것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기린의 글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쨌든 희는 내 의견에 반대하고 있었다.

“나는 기린이 이 이상 뭔가를 써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희가 말했다. 

“그냥 여기서 끝인 것만 같아.”

“하지만 기회는 줘볼 수 있잖아.”

“때로는 직언을 해주는 게 친구의 역할이기도 해.”

“알아, 하지만 기린은 받아들이지 못할 걸. 그냥 내버려 둬보자고. 독자들이 과연 기린이 말한 바를 읽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기린의 오만함 때문에 또 글이 오염되었을 지는 봐야 하는 거니까.”

희는 끝내 못마땅해 했지만 나의 말에 동의하기는 했다.

희는 아침으로 바게트 빵을 사기 위해 동네 빵집에 가야 했다. 그곳은 까닭 없이 늘 붐비는 곳이어서 빨리 가지 않으면 바게트가 떨어지곤 했다. 특별히 맛있는 곳이 아니었지만, 희도 나도 기린도, 그리고 동네 사람들 전부가 그 가게에서 빵을 샀다. 희는 바게트 때문에 이만 가본다고 하면서도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희가 떠나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커피를 내리고 침대에 대충 누워 기린이 쓴 사마의 일대기를 마저 읽었다. 기린이 그 안에 분명히 메시지를 넣어두었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나는 기린이 전할 메시지를 수용할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기린을 응원하고 지지할 자신도 있었다. 특히 사마를 지켜보며 결말까지 기대감에 차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마의 반쪽짜리 모티브인 희가 화를 내자 역으로 내가 사마의 편이 되어주고 싶어졌다. 사마는 그렇게 쓸쓸하게 묻힐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마의 일대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구에 떨어진 사마가 처음 도착한 곳은 B시였다. 그곳은 인구밀도가 꽤 높고 번잡한 지역이었다. 사마는 강에서 걸어 나와 자신과 말이 통하는 지성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사마의 행성에서 우주 비행사들에게 지급한 공용어 번역기가 도움이 되었다. 사마는 사람들에게 그 위대한 말, 여기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소?, 를 한 후에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먼저 지구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사마가 외계 행성에 와서 한 첫 일이 환복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단 넘어간다. 다른 것보다 사마의 이야기를 빠르게 읽어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밑줄을 긋고 책장을 넘겼다.


사마가 떨어진 자리에는 '정성 국밥'이라는 이름의 국밥집이 있었는데, 사마는 그곳에서 화장실을 가고 환복을 했다. 사마의 성별은 앞서 말했듯이 애매하기 그지없어서 지구인의 시선으로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했으므로 국밥집 아주머니의 티셔츠를 입을 수도 없었다. 누군가 남성용 티셔츠를 빌려줘서 사마는 불에 탄 우주 비행복을 드디어 벗을 수 있게 된다. 

사마는 변기에 일단 쪼그려 앉았다. 사용법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스티커가 보였다. 그것은 상조를 광고하는 스티커였다. 사마는 스티커의 내용을 번역기에 스캔한다.


가족 상조 : 직원 구함. 정년 없는 평생 직장.


사마의 번역기는 '상조'가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사마는 이 특이한 직업에 조금 감동 받았다. 사마의 행성에서는 죽은 이들을 모두 공용 화장장에서 불태웠다. 인구수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사마의 아버지도 물론 그곳으로 갔다. 불태워졌다. 재가 되어 뿌려졌다. 사마만이 남았다.

사마는 스티커를 떼서 가지고 나왔다. 국밥집 주인에게 이곳으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국밥집 주인은 아니라고, 그곳은 사마가 갈만한 데가 못 된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 내가 어딜 가야한단 말이오? 사마가 묻자 거기에 있는 사람들 반절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

그들에게는 사마의 구불구불한 어투가 영어처럼 들렸던 것이다.


사마는 지구의 왕이라는(번역기가 바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들이 보내준 비행기에 타면서 상조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 날은 하필이면 상조 직원들의 야유회 날이었다. 통화음은 성우의 목소리로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당신의 마음을 위한 상조, 가족 상조.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집니다. 사마는 그 문장을 혀끝에서 굴려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집니다.


나도 보았다. 사마가 보았다던 그 스티커는 내가 자주 가는 대패삽겹살 집에도 있었다. 기린도 나와 함께 그곳에 종종 가고는 했다. 기린은 그곳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분명했다. 희라면 이것 역시 오염된 오브제일 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마가 그 스티커를 떼어오는 장면이 좋았다. 그것은 바로 나 같은 행동이었다. 희라면 몰라도 나는 정말로 사마와 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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