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야기 1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 잠언 22:6
앨리의 집 근처에는 어린이 체험관이 있었다. 발판 위에 올라서면 지진을 체험할 수 있는 기구(강도가 0부터 10까지 있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연주할 수 있는 하프(줄이 아예 없었으므로 정말로 손을 댈 데가 없었다.), 속에서 전기가 소용돌이치는 유리 공(정말로 유리공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같은 것들이 체험관에 있었다. 루이스와 앨리는 난간 사이로 굴러다니는 작은 공들을 보기 위해 체험관에 가고는 했다. 아래에 서서 공이 난간 맨 윗부분부터 시작해서 빙글빙글 돌면서 굴러 내려오는 모습은 넋을 놓고 보기에 좋은 광경이었다. 공은 맨 마지막에 도착하면 기구에 의해 다시 위로 끌려 올라간 뒤, 꼭대기에서부터 굴러 떨어졌다. 루이스는 언젠가 한 번 올라가고 있는 공을 잡으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앨리가 루이스를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공을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다. 앨리는 공은 그렇게 계속 굴러 떨어지는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루이스도 앨리의 말에 동의했다. 공은 일단 한 번 꺼내지면 아마 다시 궤도에 올라가지 못할 것이었다.
체험관에는 커다란 거울도 있었다. 사람이 센서가 있는 발판에 올라가면 표면에 글자가 떠오르는 거울이었다. 거울은 매번 다른 문구를 표면에 비추었지만, 너무 낡아서 문장이 제대로 보이는 날이 없었다. 루이스는 늘 몇 가지의 단어 밖에는 읽을 수 없었다. 1986년, 루이스가 거울 앞에 섰을 때 나타난 문장은 이랬다.
「인류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쉬지 않고, 사랑에 의한 합일에 바탕을 둔 신의 나라의 건설에 다가가고 있다.」
루이스는 단어를 읽을 수 있었지만 어떤 뜻인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루이스가 생각하기에 거울은 체험관에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지루한 것이었다. 그러나 앨리는 거울을 좋아했다. 1986년, 앨리가 거울에서 본 문장은 다섯 가지였다.
「옳은 것을 알면서 실천하지 않은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어떠한 불행도 그것에 대한 공포보다 두렵지 않다.」
「자신의 행위를 나무라라. 그러나 절망은 하지 말라.」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 그러면 남을 쉽게 용서하게 될 것이다.」
「완전성은 신의 본능이며, 완전성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1988년이 지나고 루이스가 앨리의 집에 놀러가지 않게 된 이후에 어린이 체험관은 사라졌다. 체험관에 있는 물건들이 아이들에게조차 더는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루이스는 고등학생이 된 다음에 다시 체험관에 가 보았지만 체험관이 있던 자리에는 자동차 영화극장이 생겨 있었다. 거기서 루이스는 주파수를 맞추고 친구들과 같이 앉아 영화를 보았다. 세트장 속에서 살던 남자가 삶을 버리고 생을 찾아서 가는 내용의 영화였다. 루이스는 영화의 시작부터 졸기 시작해 드문드문 잠들면서 영화를 보았다. 루이스가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맨 마지막 장면뿐이었다. 주인공 남자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 이상한 인사와 인위적인 푸른색 벽을 오래 기억했다. 문만 넘어서면 생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탓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루이스가 돌아보자 친구들 중 반절은 여자들이 타고 있는 차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두 명은 자고 있었으며, 한 명은 눈을 문지르고 있었다. 눈을 문지르던 친구가 니콜라이였다. 루이스는 니콜라이에게 영화가 어땠냐고 물었다. 니콜라이는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루이스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운전해 가는 내내 니콜라이의 대답을 고민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는데도 모를 수 있는 게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루이스의 집에는 책이 많았다. 모든 방에는 책꽂이가 있었고 낮은 책장에는 동화책이, 높은 책장에는 소설책이, 가장 아래에는 백과사전이 꽂혀 있었다. 어릴 때 루이스는 식량을 찾아 달로 떠난 토끼의 이야기를 읽었다. 나이를 조금 먹고서는 유리 가가린과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읽었고,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에는 백과사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백과사전의 ㅇ항목에는 '우주'가 있었고 ㄷ에는 '달'이, ㅎ에는 '화성', ㅊ에는 '천체', ㅂ에는 '별'이 있었다. 루이스는 짧게 적힌 단어들을 읽으면서 동화책에서 본 것처럼 커다랗고 까만, 반짝이는 우주를 상상했다.
니콜라이에게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이 달로 간 토끼가 나오는 동화책이었다고 하자, 니콜라이는 자기도 우주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자세히 이야기하다 보니 니콜라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우주가 아니라 유리 가가린이었다. 루이스는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가 푸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아온 사람이었으므로 괜찮았다. 루이스가 니콜라이에게 그렇게 얘기하자, 니콜라이는 사실 지구는 아무런 색도 없을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빛나지 않는 별이니까 아무런 색도 없을 것 같았어. 달은 노랗고 해는 빨갛잖아. 루이스와 니콜라이는 배를 깔고 누워서 백과사전을 펴고 ㅇ항목에서 '유리 가가린'을 찾아 사진을 보았다. 헬멧을 쓰고 씩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간 최초의 인류라고 쓰여 있었다. 유리 가가린 전에 우주에 먼저 간 것은 개였어. 제일 먼저 우주로 쏘아 보내진 생명체가 개였단 말이지. 좁은 곳에서도 지낼 수 있게 훈련시키고 관에 태운 채로 쏘아 보낸 거야. 루이스는 그게 몹시 잔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숨을 쉴 수 없어 죽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니콜라이는 그렇지만 라이카는 좋았을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제일 처음 우주로 갔고, 지구가 푸르다는 사실을 알았잖아. 우주는 예뻤을 거야. 루이스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라이카가 행복했다면 루이스도 ㄹ의 '라이카' 항목을 읽을 때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 되자 니콜라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루이스는 혼자 침대에 누워서 백과사전을 펼치고 아무 항목이나 훑었다. ㅇ과 ㄷ과 ㅎ과 ㅊ과 ㅂ과 ㄹ을 훑고 다시 ㅇ으로 돌아와 '우주비행사' 항목을 펼쳤다. 밤이어서 글자가 침침하게 보였지만 루이스는 한 글자도 남김없이 모두 읽을 수 있었다. 그 밤은 문을 열고 나간 남자의 생만큼이나 충만한 밤이었다. 그 때 루이스는 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확신하기 위해서는 백과사전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 가지로도 루이스는 자신을 확정할 수 있었다.
니콜라이와 루이스는 공통점이 없었지만, 루이스는 그래서 니콜라이를 좋아했다. 루이스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이 자동차 극장이었기 때문에 루이스는 종종 친구들과 극장에 갔다. 가끔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갈 때도 있었다. 니콜라이도 종종 그들을 따라서 왔다. 자동차 극장은 매번 다른 영화를 틀어 주었지만 가끔은 이미 본 것을 또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루이스는 잠을 자거나 친구들을 따라 여자들이 탄 차를 찾거나, 체험관이 서 있던 흔적을 찾아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니콜라이는 그 자리에 체험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루이스가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저 멀리서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안에 무엇이 있을지 계속 상상만 했다는 것이다. 루이스는 그 안에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앨리는 체험관에서 나는 냄새부터가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체험관에서는 병원에서 나는 냄새와 갓 바른 벽에서 나는 냄새를 합친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바닥은 초록색 말랑말랑한 타일을 써서 만들었다. 맨발로 마구 달릴 수 있었고, 넘어져도 무릎이 까지는 것 이상의 부상은 없었다. 니콜라이는 스크린을 보면서 루이스의 이야기를 듣다가, 너 거길 정말로 좋아했구나, 하고 지나가듯이 말했다. 루이스는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자리를 비집고 자동차 라디오에서 영화의 대사가 들렸다. 토완다! 니콜라이는 여전히 스크린을 보고 있었지만 졸린 표정이었다. 아마도 반절쯤 자고 있었을 것이다. 루이스는 고개를 돌려 영화를 보았다. 여자들이 잔뜩 나왔지만 가장 예쁜 여자는 일찍 죽고, 나머지는 레즈비언과 아줌마와 할머니들로 꽉 채워진 영화였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였다. 그녀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죽어가는 순간에 주인공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마을 앞에 호수가 있었어. 사람들이 거기서 낚시를 하고 수영을 했지. 어느 추운 겨울이었어. 오리 떼들이 날아와서 호수에 앉았는데 갑자기, 순식간에 기온이 뚝 떨어진 거야. 오리들은 얼어붙은 호수를 발에 달고 날아올라 조지아로 갔어. 그 호수는 지금 조지아의 어딘가에 있대. 루이스는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정말로 물이 움직였다. 예전에 루이스의 방에는 유리로 덮은 책상이 있었다. 유리가 원래 무거운 데다가 책상 위에 물건들을 잔뜩 어질러 놓아서 더러워져도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책상이었다. 한 번은 루이스가 책상 위에다가 물을 엎질렀다. 닦을 수 있는 데까지 닦았지만 이미 유리와 책상 틈에 물이 고여 있었다. 물은 루이스가 닦아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번져서 마침내 유리 아래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책상과 유리 틈에 고인 물은 마르지도 않았다. 엄지로 유리를 꾹 누르면 물이 이상한 모양으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루이스는 물이 마르기를 기대하며 매일 손가락으로 유리를 꾹 눌렀다. 그러나 물은 결코 마르지 않았다. 오래 머물러 있다가 마침내는 화석으로 변했을 뿐이었다. 책상을 버릴 때까지 루이스는 그 물을 빼내지 못했다. 책상을 버릴 때가 되어서 유리를 들어 올리자, 물은 거기에 있었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흘러내리거나 검게 굳거나 하다못해 곰팡이가 슬지도 않았다. 루이스는 유리가 물을 들고 간 것이라고 믿었다. 오리들 발에 붙어 조지아로 날아간 호수처럼, 컵의 물도 유리에 붙어 어딘가 먼 곳으로 날아간 것이다.
다음 날, 루이스는 텔레비전에서 열여섯 살짜리 애들 둘이 살해당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루이스와 니콜라이가 자동차 극장에 있던 날 밤이었다. 산에 놀러갔던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 두 명이 시체로 발견 되었다. 물어뜯긴 자국이 있었고, 살아남은 아이들 세 명은 산에서 괴물이 내려와 친구를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산에 사는 들개나 야생동물의 짓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죽은 두 아이는 세 치구들이 말리는 데도 불구하고 산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비춰졌다. 머리를 땋고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으나, 루이스는 죽기에 어린 나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앨리는 8살에 죽은 것이다.
니콜라이도 그 뉴스를 보았다. 루이스와 니콜라이는 학교 근처 가게의 모퉁이에 앉아 병에 든 콜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왜 그 동굴에 들어갔을까? 거기 가봤어?
이 근처 애들은 어릴 때 한 번은 전부 거기에 가 봤을 거야.
루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앨리가 그럴 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보지 않았어. 무서웠거든.
나는 가봤어. 니키, 그럼 안에 뭐가 있었는지 너는 몰라?
몰라. 그 안에 뭐가 있긴 있어?
아무 것도 없어. 그냥 벽하고 돌멩이뿐이야. 그렇게 깊지도 않아. 거기에 살 수 있는 게 있다면 곤충들뿐일 걸. 박쥐가 살기에도 빛이 너무 잘 드는 동굴이었어.
니콜라이는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루이스도 말을 멈추고 땀을 닦았다.
루이스, 거기 가서 뭘 했어?
벽에 돌을 던지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지르고, 여자애들한테 안쪽에 박쥐가 엄청 많고 마실 수 있을 만큼 맑은 샘이 있다고 거짓말했지. 학교 애들이 거기를 단체로 탐사하기 전까진 그럴싸하게 먹히던 거짓말이었는데.
그리고 루이스는 거기에 앨리를 위한 꽃을 가져다 놓았다. 앨리가 발견된 연못은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루이스는 연못에는 갈 수 없었다. 그러나 꼭 앨리에게 꽃을 주고 싶었다.
그럼 그 동굴에 뭐가 있어서 애들을 죽였을까? 경찰은 텔레비전에서 아주 큰 짐승이 걔들을 죽였을 거라고 말했잖아.
글쎄. 늘 그렇듯 별 거 아닌 거였겠지, 뭐.
며칠 후에 산에서 죽은 아이들이 또 발견 되었다. 먼저 발견된 두 명의 친구들이었다. 동굴에 꽃을 놓으러 갔다가 죽은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번에도 아이들에게 물어뜯긴 자국이 있었다고 했다. 루이스와 니콜라이 말고도 관심을 가지는 애들이 생겼다. 반 애들 사이에서는 온갖 판타지가 떠돌았다. 루이스는 죽은 아이들은 모두 야생 동물에게 물렸다고 생각했지만, 니콜라이는 정말로 괴물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루이스는 크게 웃어 주었다.
니키, 동굴에는 아무 것도 없다니까.
동굴에 가보지 않을래?
뭐 하러?
꽃을 가져다 두게. 아니면 뭐가 있는지 보게.
루이스는 망설이지 않고 그러자고 대답했다. 니콜라이가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밤에 동굴에 가는 것이 무서웠으므로(니콜라이와 루이스 둘 다 서로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둘은 일요일 낮에 동굴에 갔다. 동굴은 막혀 있었다. 경찰들이 판자와 노란 테이프를 써서 입구를 완전히 막아 두었다. 니콜라이는 테이프를 자르고 들어가면 된다고 말했지만, 루이스는 경찰에 책이 잡힐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루이스가 테이프를 끊고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므로 둘은 그냥 동굴 근처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커다란 동물 발자국을 찾을 수도 있을지 몰랐다. 혹은 또 다른 죽은 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루이스와 니콜라이는 동굴을 따라 반원 모양을 그리며 걸었다.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괴물이나 시체를 찾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흥분해 있었다. 산 중턱을 따라 내려가면 동굴의 뒤편이라고 할 만한 데가 나왔다. 돌을 좀 들어내고 흙을 파내면 동굴의 끝이 보일 수 있는 자리였다. 니콜라이가 걸음을 멈추더니 루이스의 팔을 잡았다. 루이스, 저기 뭔가 있어. 루이스도 니콜라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것을 보았다. 괴물도 시체도 아니었다. 그것은 커다란 기구들이었다. 루이스는 그 기구들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아보았다. 어린이 체험관에 있던 기구들이었다. 지진 체험기, 공을 들어 올리는 기구, 줄이 없는 하프, 속에서 전기가 나던 유리 공, 그리고 거울이 있었다. 모두 낡아서 녹이 슬었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거울의 표면에는 문장이 여러 개 겹쳐서 나타나 있었다. 기구에 묻은 녹을 손가락으로 닦아보던 니콜라이가 거울을 보고 읽었다. 1999년, 니콜라이가 읽은 문장은 이랬다.
「결국, 악의 근원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얻는 법이다. 그러므로, 오직 네 안에만, 변화이다, 삼아야 한다.」
그것은 사실 세 가지 문장이 중첩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루이스는 그 거울은 원래 어린이 체험관 안에 있을 때부터 문장이 엉터리였다고 알려주었다. 니콜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 문장을 완벽히 이해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루이스는 1998년 12월, 빈 자동차를 털고 다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차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모른 채 창문을 깼는데, 하필 쇠지렛대가 안에서 자던 차 주인의 무릎을 세게 찔렀다. 루이스는 실형을 선고 받았다. 1999년이 지나고 루이스가 교도소에 들어간 뒤에도 아이들의 왜 죽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계속해서 야생동물의 짓이라는 발표만 반복하다가 잠잠해졌다. 텔레비전에서는 새로운 아이들의 죽음이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산에서 있던 일을 잊었다. 루이스와 니콜라이도 산에서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니콜라이는 정말로 꽃을 가져왔었다. 둘은 꽃을 체험관 기구들이 있는 자리에 두고 산에서 내려왔다.
나중에 이라크의 기지에서 루이스는 미스터리 기사를 읽었다. 1999년 외진 마을의 산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기사였다. 아이들 다섯 명이 죽었다. (두 명은 먼저 죽었고, 세 명은 꽃을 바치러 갔다가 살해당했다.) 기사에서는 그것이 야생동물의 짓이 아니라 외계인의 짓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죽을 때 산에서 몇 km 떨어진 농장에서는 소 두 마리가 갑자기 없어졌고(그리고 물론 며칠 후에 뼈와 가죽만 남은 채로 발견이 되었고), 소가 사라진 당일에 하늘에서 심상치 않은 불빛의 움직임을 보았다는 사람이 세 명이나 되었다. 루이스가 빅풋에게 기사에 나온 게 자신의 마을이라고 하자, 빅풋이 소름끼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외계인이냐? 루이스는 기사를 둘둘 말아 빅풋의 머리를 때려 주었다.
이라크 파병에서의 유일한 장점이 있다고 한다면 루이스는 빅풋을 꼽을 것이었다. 빅풋은 늘 여유 있는 태도로 농담을 던져댔다. 빅풋과 이야기 하면 늘 기분이 좋아지고는 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야. 이때 우리 학교에서 완전 난리였는데. 나는 친구랑 둘이 동굴까지 가봤었어.
거기에 뭐가 있었는데?
아무 것도.
당연하지. 쏴 죽일 새끼들은 전부 여기에 있잖아. 동굴 속에 괴물이 있다 치면 미국에 살겠냐, 이라크에 살겠냐? 이라크지.
그리고 빅풋이 짖는 시늉을 해보였기 때문에 루이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기지에서 루이스는 사소한 것들로도 금방 웃고는 했다. 이라크에 있던 루이스의 동료들은 모두 그랬다. 빅풋은 농담으로 루이스의 말을 넘겼지만, 나중에 UFO가 소를 잡아가는 그림을 그려서 루이스에게 주었다. UFO에서 광선이 쏘아지는 것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이었다. 빅풋은 그림을 잘 그렸다. 이라크에서는 그릴 것이 별로 없었다. 빅풋은 보통은 염소와 사막을 그렸다. 루이스도 종종 자기 수첩에 사막을 그리고는 했다. 루이스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서 루이스가 그린 사막은 그냥 선과 점들로 이루어진 추상화 같았다. 루이스의 사막을 사막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빅풋뿐이었다. 빅풋은 루이스의 수첩 속에 든 코끼리도 알고 있었다. 코끼리는 앨리의 유일한 유품이었다.
처음에 루이스는 그것을 그린 게 자신이라고 거짓말했지만, 사막 그림을 보여준 다음에는 거짓말이라는 게 금방 들통 났다. 이봐, 루이스, 네가 이렇게 코끼리 같은 코끼리를 그릴 리가 없지. 이게 네가 그린 코끼리면 나는 피카소다, 새끼야. 루이스는 앨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빅풋도 더 묻지 않았으므로 비밀을 지키기는 쉬웠다. 빅풋에게 들킨 다음부터 루이스는 그림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았다.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이라크의 사막에서는 부끄러울 일이 별로 없었다. 이라크에서 많은 것은 허무한 일들이었다. 올슨은 염소를 훔치다가 총을 맞고 죽었다. 올슨이 훔치려던 염소도 주민이 쏜 총에 맞아서 죽었다. 루이스가 올슨을 쏜 범인을 잡았을 때 그는 엉엉 울고 있었다. 올슨이 아니라 염소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올슨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농담을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마을에서 염소를 보면 루이스와 동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올슨의 이야기를 꺼냈다. 빅 풋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온 사람들은 농담을 들으면서 올슨이 누구인지 배웠다. 루이스는 종종 총에 맞아 죽고 나면 동료들이 어떤 농담을 해줄지를 생각 했다. 미스터리 기사를 읽던 놈, 사막을 점과 선으로 그리던 녀석, 학교 가고 싶어서 차를 털다가 잡힌 멍청이, 무서운 게 많은 겁쟁이, 그렇지만 이라크의 사막에 왔으니 루이스도 그들의 친구였다.
루이스가 동굴의 기사를 본 미스터리 잡지에 이번에는 공룡 박물관이 나왔다. 자동차 극장이 있던 자리를 허물고 박물관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이제 자동차 극장이 아이들에게조차 더는 신비로워 보이지 않은 시대가 온 것이다. 새로 생긴 공룡 박물관은 센서로 움직이는 공룡들이 있었고, 입체 영화를 한다고 했다. 미스터리 잡지는 거기에 공룡 박물관을 세운 것은 자동차 극장 근처의 야산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쓰여 있었다. 루이스는 움직이는 공룡으로 꽉 찬 박물관을 상상하느라 기사의 나머지를 읽지 못했다.
빅풋이 루이스에게 돌아가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을 때 루이스는 파란 벽이 나오던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주인공이 우스꽝스러운 인사로 마지막을 끝내는 영화였다고 하자 빅풋은 금방 알아들었다. 아니다. 빅풋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은 루이스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만든 문장이었다. 그래도 빅풋은 개의치 않았다.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에 빅풋에게 편지가 왔다. 여동생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빅풋은 편지를 받고서 하루는 화를 내더니, 다음 날은 종일 울었다. 이라크에 있는 건 난데 죽은 건 여동생인 게 말이 돼? 총도 안 맞고 사람이 죽을 수 있단 말이야? 이라크에 있는 건 난데 죽은 건 여동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빅풋의 여동생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3일은 살아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눈도 뜰 수 없었다. 빅풋은 나중에 여동생의 얼굴을 그려 루이스에게 보여 주었다. 앨리를 닮은 얼굴이었다. 아니면 죽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빅풋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도 보았다. 편지는 고작 다섯줄이었고 맨 마지막 줄은 인용구였다. 2002년, 루이스가 편지 아래에서 본 문장은 이랬다.
「임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멸이 아니라 변화이다.」
편지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잊지 말아라, 하는 문장으로 끝났다. 루이스는 빅 풋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국에 돌아와서 루이스는 이라크에서 지키고자 마음먹었던 것들을 모두 지켰다.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 동물을 죽이지 않을 것, 식물을 죽이지 않을 것, 그리고 공룡 박물관에 갈 것. 공룡 박물관은 잡지에서 본 것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센서로 작동 된다는 공룡들은 벌써 망가져서 가끔씩 고개를 흔들거나 꼬리를 약하게 들어 올렸다. 입체 영화도 형편없었다. 루이스는 공룡들이 어째서 멸망했는지 설명하는 장면에서 입체 영화관을 나왔다. 박물관에는 아이스크림과 주스를 파는 작은 매점이 있었다. 루이스가 아이스크림을 사고 매점 의자에 앉았을 때, 밖으로 거울이 보였다. 어린이 체험관에 있었던 거울이었다. 니콜라이와 루이스가 산에서 보았을 때 있었던 글귀는 사라지고 없었다. 루이스는 의자에서 일어서서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은 맨 처음 루이스가 어린이 체험관에서 보았을 때처럼 센서로 작동하고 있었다. 거울에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진실의 거울 : 이 거울은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거울 앞의 발판에 올라서서 마음을 집중해 보세요. 거울이 당신의 마음을 읽어 필요한 글귀를 보여줍니다. 마음을 집중하지 않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 거울의 글귀가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루이스는 앨리와, 이라크와, 빅풋과, 니콜라이와, 마루와, 푸른 벽의 남자와, 우주를 생각하다가 곧 멈추었다. 루이스가 거울에 한 발을 올릴 때 하고 있었던 생각은 그런데 이 거울이 도대체 어디서 났는가 하는 것이었다. 거울의 센서는 한 발로도 쉽게 작동했다. 루이스가 거울 앞에 완전히 서자 어깨가 있는 자리에 글귀가 나타났다. 2003년, 루이스가 거울에서 본 글귀는 이런 것이었다.
「너는 악의 근원을 찾고 있으나, 그것은 오직 네 안에 있을 뿐이다.」
루이스는 글귀를 주의 깊게 읽고 발판 아래로 내려왔다.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루이스는 녹은 아이스크림을 모조리 핥아먹고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더워서 목덜미에 금방 땀이 났다.
미국에서도 루이스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루이스의 삶은 앨리와 우주를 그릴 때만큼, 백과서전 속에서 ㅇ항목의 '우주'를 볼 때만큼, 벽이 푸른 영화에 나오는 남자의 삶만큼 생생했다. 이라크에서 루이스는 매일 사람을 쏘고, 폭격으로 여자와 아이들과 닭과 염소를 죽이고, 나무를 불태웠지만, 동시에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서 팸플릿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팸플릿에는 루이스가 예전에 미스터리 잡지에서 읽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센서로 움직이는 공룡들, 입체 영화관, 그리고 넓은 매점과 진실의 거울이 있습니다. 진실의 거울 사진 아래에는 어떤 문구들이 떠오르는지 적힌 설명이 있었다. 루이스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글씨를 읽었다. 마지막에, 루이스가 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인류는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쉬지 않고, 사랑에 의한 합일에 바탕을 둔 신의 나라의 건설에 다가가고 있다.」
¹ 나오는 문장들은 인용구 입니다. 가려진 문장은 긁으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순서에 따라 톨스토이, 공자, 호케, 에픽토테스, 탈무드, 괴테, 키케로, 루소, 톨스토이.
² 「결국, 악의 근원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얻는 법이다. 그러므로, 오직 네 안에만, 변화이다, 삼아야 한다.」의 세 가지 문장 : 결국 인간은 자신이 목적한 것만을 얻는 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소로), 임종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멸이 아니라 변화이다. (키케로), 너는 악의 근원을 찾고 있으나, 그것은 오직 네 안에 있을 뿐이다. (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