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발작, 그리고 무너진 일상
17살, 3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전교생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
낯선 교실, 어색한 친구들, 정해진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옆 침대에 같은 학년 친구가 자고 있었고,
하루의 끝에는 모두 같은 시간에 불을 껐다.
처음으로 집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생활.
솔직히 말하면 모든 순간이 낯설고, 모든 순간이 긴장됐다.
나는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고, 필요한 말은 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이 생활이 익숙해질까.’
그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쩐지 약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방 안에는 웃음과 수다가 가득했다.
친구들은 서로의 중학교 이야기, 선생님 흉, 그리고 새로 생긴 규칙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대화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 평범한 하루. 평범한 저녁.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내 인생이 몇 초 만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무 예고도 없이, 그 순간이 왔다.
처음엔 그냥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줄 알았다.
‘긴장했나?’ ‘내가 웃다가 숨이 찼나?’
그런데 심장이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빠르다 못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요동치는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쿵, 쿵, 쿵.
내 심장이 내 몸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려 했는데 공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폐가 절반밖에 움직이지 않는 느낌.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리고 숨을 더 크게 들이쉬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숨이 막혔다.
손끝과 발끝이 서서히 차가워졌다.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주변의 목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누군가의 장난 섞인 말도 갑자기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귀 안에서는 ‘웅—’ 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마치 누군가 세상의 소리를 끄고 나를 깊은 물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공포는 생각이 아니라 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맴돌았다.
‘이대로 죽을지도 몰라.’
사람들의 시선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려고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도망쳐야 했다.
본능처럼.
나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빠져나와 기숙사 복도를 걸었다.
복도는 길고 환했다.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바닥에 내려앉아 있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멀어지고 내 심장 소리만 커졌다.
발이 이끄는 대로 도착한 곳은 불이 꺼진 공용 세탁실이었다.
문을 닫는 순간 철문이 ‘쾅’ 하고 울렸다.
나는 세탁기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차가운 바닥이 그대로 피부에 닿았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았다.
손은 계속 떨렸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숨을 쉬려고 애썼다.
한 번, 두 번.
하지만 숨은 여전히 얕고 가빴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를 누르는 손끝이 힘없이 떨렸다.
연결음이 울리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 순간 나는 무너졌다.
“엄마… 나 숨이 잘 안 쉬어져… 어떡해…”
엄마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어디야? 무슨 일이야?”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몰라… 그냥… 숨이 이상해…”
그 말만 반복했다.
그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불 꺼진 세탁실, 차가운 바닥, 그리고 휴대폰 너머 엄마의 목소리만이 나를 붙잡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게 공황발작이라는 걸.
그날 이후 불안은 내 삶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수업 중에도 밥을 먹다가도 심지어 웃고 있는 순간에도 언제든 불쑥 찾아올 수 있는 존재.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오늘은 괜찮을까?”
밤이 가장 힘들었다. 소등 후, 모두가 잠든 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감으면 내일의 불안이 먼저 와 있었다.
‘또 오면 어떡하지.’ 그 질문은 끝없이 이어졌다.
전교생 기숙사 학교였지만 학교의 배려로 나는 며칠 동안 집에서 통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휴식’이라고 불렀지만 내게는 숨을 고르는 시간에 가까웠다.
나는 조금 살 것 같다가도 다시 무너졌다.
그리고 조용히 결론에 다다르고 있었다.
‘더는 안 되겠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한계에 와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