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사랑은 어려워

2025.04.17 (목)

by JSJ

햇살이 저물어가는 벚꽃 사이로 부서지는 오후 1시,


반짝이는 눈으로 돌담 위에 서 있던 그녀를 쳐다보던 남자는 이윽고 한 발, 두 발 그녀를 향해 내딛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뒤에서 느닷없이 빨라지는 발걸음 소리에 놀란 그녀는 황급히 돌담 밑으로 뛰어내려서는, 정확히 처음 그 남자와 유지하던 거리만큼 도망가버린다.



그녀가 서 있던 돌담 위에서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철길 위를 걷는 아이처럼 부푼 발걸음을 조심스레 내딛어서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경계하는 그녀의 앞까지 돌담을 따라 걷다가,

이윽고 나란히 멈춰 서서 그녀의 눈을 마주 본다.


두 영혼이 맞닿은 것도 잠시, 곧 시선을 거두고는 등을 돌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급해진 남자는 서둘러 돌담에서 뛰어내려서는, 아까보다 더 빠른 종종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 소리에 놀란 그녀는 종종걸음을 넘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손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마음을 지나간 자리에 흘리며 남자도 달려가기 시작한다.

마치 ‘나 잡아봐라~’하듯 사랑놀이를 하는 두 러닝크루의 현실은 서로 간 한 뼘 남짓한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다.



적어도 아직은 곁을 내어주기 싫은 자와 그저 한 걸음 옆에서라도 있고 싶은 자.

하지만 결국 체급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고, 종종걸음의 그녀와 성큼성큼의 남자. 둘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이윽고 남자가 그녀를 붙잡고 멈춰 세울 수 있는 거리까지 쫓아왔을 때였다.



영화의 추격 씬에서 부서지기 일보직전인 다리를 건너고는 이내 무너져버린 강 건너편에 안착한 뒤, 자신을 쫓아왔지만 강을 사이에 두고 어쩔 줄 모르는 상대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녀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서는 강의 너비만큼을 날아 방금 전까지 자신의 뒤에 있던 남자를 멀리 지나쳐서는, 이제는 그녀가 남자의 뒤를 바라보는 아파트 출입구 처마에 내려앉는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라면, 더 이상 쫓아갈 방법이 없어 돌아서는 영화와는 달리 현실은 남자에게도 강을 건너 그녀의 옆에 내려앉을 수 있는 튼튼한 두 팔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자존심일지, 지나온 길에 모두 흘려버려 이제는 그녀의 손에 쥐어 줄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일지, 남자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게 돌아선 모습을 보인 채로, 멍하니 방금 전까지 그녀의 뒷모습이 남아있었던, 이제는 자신의 그림자만 남은 코앞의 무언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회식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막 내려 터벅터벅 귀가하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그녀가 있던 자리에 남은 부서진 마음을 주워 담으려 마지못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제 막 돋아난 연두색 새순이 거리를 뒤덮고, 따스한 햇살 사이사이로 서늘함이 진 그늘들이 늘어선 거리를 초등학생 아이들이 목청을 남기며 하교하는 영원할 것 같이 평화로운 오후,

대강 걸쳐 입은 바람막이와 한 손에는 텀블러를 들고서 오후 업무를 대비한 수혈을 하러 동네 스타벅스를 향해 이제 막 집을 나서면서 본,


멧비둘기 한 쌍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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