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부엌의 식탁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뜨거운 우동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후루룩 먹기도 하였고,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보다 엄마가 더 감동받아 눈물을 짓기도 하였다. 아이의 받아쓰기를 불러주고 수학 문제를 풀리며 울그락 푸르락 오르내리는 화를 다스렸던 그곳. 아이들은 먹이를 빨리 달라고 보채는 아기 제비새처럼 온종일 짹짹짹, 서로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삐약삐약 울어대며 복닥거렸던 식탁에서 우리는 무럭무럭 자랐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우리가 성장한 만큼 우리의 공간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년이었다. 부엌 식탁에서 공부하는 것이 집중이 어렵다는 아들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 맘 같아선 '절대 안 됨! 너 방문 닫고 딴짓하려고 하지? 엄마랑 같이 식탁에서 공부해~!'라고 붙잡아 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의 뜻을 존중하여 '방으로'를 허락했다. '난 쿨한 엄마니깐...' 라며 들여보냈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방문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워~워~'내 마음을 다스리며 '엄마가 아들을 믿어야지'라며 다짐했다. (지금도 방문 닫고 있는 아들의 방에 몰래 cctv라도 달아두고 싶지만... 음... 참자 참어!)
나 역시도 자연스레 부엌에서 딸아이 책상으로 자리가 이동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할아버지가 사주신 책상은 놀고 있었고 매일 쓰고 읽고, 줌 수업까지 있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딸의 방이 곧 내 방이 되었고 딸의 책상이 내 책상이 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이곳에서 매일을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그토록 애정하던 부엌을 버리고 나 역시도 방으로 이동. 놀랍게도 환경의 자그마한 변화 만으로 내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졌다. 가장 큰 수확은 집안일과도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후다닥 집안일을 마치고 혹은 정신없이 널브러진 곳을 내팽겨 치고 탈출하듯 조용한 내 방으로 들어오면 왠지 숨이 쉬어지는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쌓여있는 설거지와 어수선한 거실을 금세 잊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도서관으로 출근하듯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달콤한 커피 한 잔이 나의 최고의 사치였고 행복이었다. 그랬던 내가 '나의 방'이 생기자 밖을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덩달아 커피값도 아끼게 되었다는^^
딸아이의 방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하다. 집안 곳곳에 흩어져있던 책들을 이번 새해를 맞이하여 내 공간으로 끌어 모았다. 책 향기로 가득한 내 방, 안온하다.
그럼 딸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 년 동안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 아닌 방치를 하게 되었다. 문득 우리 딸, 잘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이제 이 아이도 고학년이 되고 공부라는 것도 해야 되는데... 라면서 말이다. 이번 새해를 맞이하면서 자그마한 책상을 새로 샀다. 쉴 새 없이 엄마를 귀찮게 하는 딸아이가 살짝 걱정은 되지만 왠지 엄마가 딸의 방과 책상을 뺏어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합방을 시작했다.
부엌 식탁을 홀로 지키던 딸아이가 이젠 엄마랑 같이 공부하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지금도 들락날락거리며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갑자기 책상정리한다고 덜그렁 거리는 아이가 아주, 아주 약간은 성가시지만.... 음.... 이 엄마는 참을 수 있다. 엄마니깐! 서로의 등짝을 마주하며 우리 지금처럼 행복하게 끝까지 잘해보자구 오늘의 글을 쓰며 굳건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