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친절한 화자씨에
감동하는 독자씨(1)

시가 뭐 별건가? 별거 없이 시 쓰는 법

by 임하경

“친절한 화자씨에 감동하는 독자씨”



-독자의 공감 포인트

사람들이 시를 읽는 이유는 공감되기 때문이다. 시를 공감할 수 없다면 그 시는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없는 그저 그런 문장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자를 공감하게 만들 수 있을까?


공감은 경험과 이해에서부터 온다. 때문에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독자가 문장을 이해하고, 상상을 통해 간접경험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해와 상상을 도와 독자를 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배우의 연기, 무대와 소품의 연출 등으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장면에 몰입시킨다. 단 한 장면조차 수많은 연출로 시각 정보를 제공한다. 소설에서는 상세한 상황 설명과 묘사를 통해 독자를 이해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하지만 시는 눈으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소설처럼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시를 읽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고, 시어들만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뒤엉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원인은 문장들이 이해되지 않고 상황이 상상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엔 시가 가리키는 방향을 놓쳐버리게 된다.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마다 보니 시를 다 읽고서도 '뭔 소리야?'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이다.


시는 독자들에게 더욱 친절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시를 읽다가 길을 잃게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독자가 시의 상황을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자신의 시를 보고 공감하길 원한다면 말이다.

: 이해와 상상에서 오는 감정이입




- 친절한 연출

그렇다고 정보를 있는 그대로 나열하는 것 시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어느 정도 아리송한 표현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떡밥을 던져야 한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의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결책은 '친절한 연출'에 있다.


'친절한 연출'은 독자의 시선을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길을 잃지 않도록 표지판을 만들어두는 샘이다. 만약 독자를 한 곳만을 보고 따라오게 할 수 있다면, 지나온 길이 어딘지 몰라도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고 난 후 '거기가 거기였구나!'하며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독자는 화자의 시선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상상한다. 때문에 화자의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다면 독자의 시선도 그 '한 곳'에 머물게 된다. 다시 말해 '친절한 연출'은 화자의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곳’이란 특정한 ‘사물’ 혹은 ‘공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 1 시점 1 이야기,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연출




- 사물에 집중하기

사과 하나를 들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만을 보고 있고 사과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사과의 외형은 둥그렇고 빨갛다. 좀 더 자세히 보니 아래쪽은 좁아지다 안쪽으로 홈이 파이고 위로는 봉긋이 솟아있고 중앙에는 나무 꼭지가 삐져나와 있다. 표면은 매끄럽고 하얀 반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향을 맡아보니 달콤한 형이 은은하다. 한 입 깨물어 보니 달콤하면서 시큼한 맛이 난다. 배어 물은 단면을 보니 살짝 노란빛이 돈다. 그런데 한쪽 구석으로 꿈틀거리는 애벌레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사과를 떨어뜨린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새하얀 과즙이 새어 나왔다. 시간이 지나간다. 사과의 단면은 갈색으로 변해가고 표면은 주름이 잡힌다. 좀 더 있으니 한쪽이 검게 멍이 생긴다.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누런 애벌레들이 주변을 사과 여기저기에서 꿈틀거린다. 초파리들이 주위를 윙윙거린다. 사과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치워버리고 결국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사과’ 하나의 대상에 시점을 맞추었을 뿐인데 이미 충분히 많은 표현이 쏟아져 나온다. 결코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단순한 관찰이다. 단지 조금 더 자세히 보았을 뿐이다.

1. 사물에 대한 자세한 관찰: 시선이 따라갈 대상 만들기


이제 위에서 나온 표현들을 이용해 시 한 편을 만들어 보자. 나는 ‘사과’를 ‘어머니’와 엮어보기로 했다. 사과에 대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이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_사과를 염하고


가지런히 올려진 사과 몇 알

죄 많은 무릎들이 두어 번 오가니

사과가 싫다던 아이도 오늘은 붉다.


단단히 영근 봉긋한 과육

점점이 피운 반점이 싱그럽고

단내가 생기롭던 빨간 알맹이


어머니가 내어주셨던 사과 한 알


이 맛난 것을 왜 아니 먹냐

어디 맛이나 한번 보라고

분명 입술을 크게 한입 품었을 테다


입 짧은 아이는 그만하면 되었다

속 패인 알맹이를 저만치 굴렸을 테고


맥없이 추락하는 몸뚱이

파열음에 허연 과즙을 토하고

배 까뒤집어 노란 속살을 보이고

색 바래는 얼룩에 곰팡이가 스미고

쭈글한 주름 따라 검버섯이 번졌겠지


정갈한 궤짝에 풀어진 살을 뉘여

날파리 꼬이지 마라 염을 해두고서야


아이는 사과를 한입 물고 싶은 게다


애써 떠올린 봉긋한 살결의 단내

그중 시뻘건 놈을 하나 들어 크게 문다.


시의 전반적인 내용은 화자가 ‘어머니의 삶’을 되뇌고, 죄송스러움과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다. 첫 연부터 표현의 중심인 ‘사과’가 등장하는데, ‘염하고’라는 제목과 ‘가지런히 올려진 사과’라는 설정, 절하는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독자들이 ‘장례식’을 떠올리게끔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아이’라는 표현을 통해 죽음의 대상이 ‘어머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3연과 4연의 '어머니'라는 직접적인 언급, '어머니와의 대화'로 독자에게 더욱 확신을 가져다준다. ‘입술을 ~ 품었을 테다’라는 문장에서는 사과가 '단순히 먹는 과일'이 아닌, '화자를 품어주는 대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머니의 속성을 더욱 오버랩시킨다.

2. 이해를 위한 친절한 연출: 화자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힌트 주기


'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를 상상해냈다면 이어지는 표현들은 더 이상 사과에 대한 단순한 묘사로 한정되지 않는다. 2연의 '곱고 탐스러운 사과'로부터 '젊은 시절 여자로서의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고, 5연부터 이어지는 '아이의 거절', '사과의 부패'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거절'과 '어머니의 노화'로 비춰지게 된다. 뒷부분의 ‘사과를 한입 물고 싶은 게다’에서부터 마지막 연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슬픔과 그리움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시는 ‘사과’를 지켜보는 화자의 시선만을 통해 전개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이나 죄송스러움, 그리움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가 시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사과에 대한 '일반적인 경험'에 연출로 '의도된 상상'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사과를 보면서 어머니 예기만 하고 있으니, 독자는 사과의 묘사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3. 이해에서 상상으로의 확장: 독자의 경험에 의도된 상상 더하기





이처럼 하나의 사물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독자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막고, 보다 쉽게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대상만을 묘사하다 보니 전개가 단순하고 표현이 식상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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