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등단을 하거나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 아닐 뿐더러 시를 잘 쓰지도 못한다. 그저 ‘시 쓰기’를 취미로 가지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딱히 시인이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이런 내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아마도 ‘중2병’에서 시작된게 아닐까 싶다.
고교시절의 나는 속마음과 감정을 남들에게 표현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슬프다거나, 감동적이라거나,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럽다 하는 말들이 꼴사나웠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묵묵히 삭히며 쿨하게 넘길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그 휘몰아치는 질풍노도의 감정을 노트, 싸이월드에 싸질렀다. (당시 90년대생에겐 싸이월드는 감정분출 최대의 장이었다.) 그런데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쓰자니 남들이 알아챌 것이 아닌가? 그건 또 그것대로 굉장히 싫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중2병스러운 고민을 하던 중 나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시’였다.
문장을 비틀고 비유를 사용해 의미를 숨긴다. 그리고 그 완전한 의미는 지은이만이 알고 있다. 시는 속뜻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애매모호 알듯말듯한 비밀'에 꽂혀버린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시의 형태를 가진 글을 쓰지는 않았다. 별생각이 없는 날은 단 한 문장으로, 또 어떤 날은 서너 줄로 나의 속마음, 감정, 생각 따위를 적었다. 나만이 알고 남들은 알듯 말듯 할 비유를 써가며. 일종의 암호 일기였다. 그렇게 글쓰기로 내 안의 '중2병'을 억누르며 고교생활을 무사히 보낼수있었다. 그러다 20살 즈음 꽤나 글이 쌓인 싸이월드에 댓글이 달렸다.
‘표현이 참 예쁘다’
‘뭔가 공감 가네..ㅋㅋㅋ’
나에게 있어 대단한 충격이었다. 내 글을 좋아해 주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구나! 더 이상은 나만의 암호 일기가 아니었다. 내 글을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고, 10명 중에 단 1명이라도 좋아해 주고 공감해준다면 그것으로 뿌듯했다. 점차 나는 공감을 얻고 싶은 욕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중2병 처방약: ‘시’
(*주의: 병맛에 대한 진정효과는 있지만, 중독과 공감갈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
-시를 쓰기까지의 과정
취미로 시를 쓰는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시’와 ‘#글귀’를 보면 그러한 추측에 확신이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생각은 ‘내가 그러했듯, 시라는 모양새를 갖추는 데까지의 어떠한 과정이 있지 않을까’이다. 나의 경험을 되짚어보았을 때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내 생각, 내 마음 써보기.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되는 단계. 온전히 자신의 감정, 생각, 느낌에 충실한 글. 비유라거나 행/연구분 없이 일상적인 말투로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적게는 한두 문장에서 많게는 몇 줄에 이르는 질문 혹은 독백을 남긴다.
2단계: 사물이나 현상으로 문장 꾸미기.
일상적인 말투에서 조금은 벗어나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한다. ‘달빛처럼 따라온다’ 혹은 ‘너는 한 송이 백합’과 같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려낸다. 단어 자체에 의도를 숨기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단어를 대신 할 사물 및 현상으로 의미를 표현한다.
3단계: 비유하고 문장 비틀어 쓰기.
사물과 현상을 활용하는 것이 단순한 묘사를 벗어나 의미를 함축한다. 문장을 자르거나 도치시키거나, 단어나 조사를 생략하는 등 일상적인 말투에서 벗어나 행과 연을 나눈다. 예를 들어 ‘19층 난간의 그림자,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처럼 상식적인 문장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문장의 구조와 사물 또는 현상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의도에 따라 의미를 숨기기 시작한다.
-시를 쓰는 방법
우리는 알게 모르게 위와 비슷한 수순을 거쳤을테고, 이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시를 창작하는데 있어 이러한 과정을 따르면 보다 쉽게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먼저 써두고 표현하기에 어울리는 사물이나 현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비유와 문장 비틀기로 문장을 글의 재미를 더해간다. 나는 이러한 방법이 시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썩 좋은 글이 아니라도 좋다. 제멋대로 써 내려가는 글을 환영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달래는 글을 응원한다. 분명 그 시작이 ‘좋은 시’를 만들어 낼 것이라 믿는다. 그저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한 줄 적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 자신의 마음/생각 일단 적기 - 어울리는 사물이나 현상 구상하기 - 비유와 문장 비틀기로 문장 다듬기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에 글을 쓰고 싶어졌고 의식의 흐름을 써내려간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 산타도 있고 선물도 있고, 연인들의 날이기도 하지. 아, 그런데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렇게 임신을 많이 한다던데??'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막 적어본다.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날에 임신률이 높다니 재미있는 사실이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듯 임신을 축복하는 글을 써보자!' 이렇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정했다. 다음은 어울리는 사물이나 현상을 떠올려봤다. 트리, 십자가, 양초, 눈, 산타 등 구상적인 사물들 줄줄이 나열해본다. 의식의 흐름을 쫓다보니 '메시지'와 '비유의 소재'들이 갖추어졌다. 이제 비유와 문장을 비틀기로 그럴싸한 연출과 구미가 당기는 떡밥을 만들어 두면 나름의 시가 만들어진다.(예시의 결과물은 '미처 하지 못한 말' 매거진 #001에서, 연출과 떡밥에 대한 설명은 이전 회차에서 확인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