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납되는 소음은 소음이 아니다
휘이잉 휘이잉 크휘잉~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조용한 실내를 가득 채운다.
오픈한 지 이십여 분이 지나지 않아 도서관 실내에는 나밖에 없다.
인기척이 없어서인지 기계 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처음 와 본 곳이라 낯설어 편하지 않아 소음이 많이 거슬린다.
이곳이 익숙해지면 저 기계 소리도 들릴 듯 들리지 않을 것이다.
개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이 도서관은 쾌적하고 아담하다.
시설들도 있을 것 다 있고 깔끔해서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졌다.
실내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좋아하고 있는 나를 크로키해서 사진 찍어 묶음으로 카톡 단톡방에 올렸다.
모두들 좋다고 반응해 준다.
심 봤다고 응답을 했다.
참 좋은 나라에 산다는 좋은 지역에 있어서 좋다는 생각에 흠뻑 취했다.
오랜만에 스케치를 하였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나 같은데 나 같지 않은 낯섦이 여전히 느껴진다.
처음에는 그 강도가 너무 심해서 그리다 만 적이 있다.
지금은 남이려니 생각하면서 그리니 재미가 있다.
분명 나의 모습인데 내가 아닌 낯선 이가 거기에 있는 것 같은 이 느낌은 왜 그러는 것일까.
나를 내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눈은 총명함으로 반짝거렸으면
몸은 둔하지 않고 민첩했으면
머리는 끊임없이 사색하는 모습으로
입술은 까칠하지 않게 색과 윤기가 있었으면
코는 벌렁대지 않고 다소곳했으면 좋겠다.
허리는 반듯하게 가슴은 활짝 펴고 발은 단정하게 걸었으면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드러내 보니 너무 추상적이다.
현실의 나는 그냥 그것들을 담는 그릇일 뿐 지속적이지 않은데
막상 그리려 하면 굳은 표정으로 자연스럽지 못해 미소도 없고 시니컬한 모습이다.
달릴 수도 있고 팔자로 걸을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찡그릴 수도 있다.
수시로 변하는 나를 다 담아내는 내가 어찌 하나로 뭉퉁그려 한 번에 나올 수 있겠는가.
두어 시간이 흐르니 휘이잉 기계 소리가 위이잉 하며 좀 더 부드럽고 약하게 들린다.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면 들으려 애쓰지 않는 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이잉 이이잉 ~
더 작아지고 있다.
그냥 서가에 책처럼 조용히 존재한다.
소음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것인가 보다.
시끄러움 속에서도 정적을 느낄 수 있으니.
따뜻함을 선사하는 온풍기는 필요한 소음이니 소음이 아닌 것처럼.
도서관에 사람들이 있으나 그들의 웬만한 소리는 소음처럼 들리지 않는다.
책장 넘기는 소리, 잔기침 소리, 노트북 자판 두들기는 소리, 글 쓰는 소리, 물 마시는 소리 등
도서관 내에서 용납되는 소음은 그냥 존재이지 소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