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마음속에 무언가 하나마저 놓으면 마지막 선을 넘어가버릴 것 같다.
그 선을 넘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겠다.
넘으면 진정한 자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삶을 놓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 가장 두려운 것은 살아는 있는데 자신의 정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려운 것이다. 치매처럼 정신줄을 놓는 것도 같은 급으로 두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처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기에 아웃사이더가 아닌 제대로 된 삶이 아니지 않은가.
외줄 타기를 하고 있다. 제대로 된 동아줄도 아닌 짚으로 만든 새끼줄 같은 곳에서 타는 재주이니 간당간당하다. 그냥 줄타기를 하면 되는데 불안과 타인의 시선들을 당차게 맞서지 못하고 짐처럼 짊어지고 간신히 버티는 중이다.
며칠을 몸으로 앎아누워 있다 겨우 일어났다. 그냥 그대로 삶을 마감해도 아무도 모를 것 같고 억울할 것 없을 것 같다. 조용히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동물적 삶을 살아낸 것 같다.
왜 이 세상에 온 것일까.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그냥 그렇게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사람으로 살다 가는 것인가. 삶이 무엇인가. 살아오는 내내 두려움은 항상 있어 왔다. 행복도 있었을까.
두려움이 더 커서 내 삶을 주도해 온 것은 아닐까. 두려움은 무엇인가. 살기 위한 두려움인가. 죽기 싫은 두려움인가. 내가 삶을 마감하면 두려움도 마감되는 것인가. 두려움은 어디에서 생겨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두려움은 나와 상관없는 독자적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만든 또 다른 나의 분신인가. 나의 분신이라면 어찌 나를 돕지 않고 방해만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나의 삶일까.
숨쉬기도 어려운 압박감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짓눌려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 탓인가 그 누구의 탓인가. 삶이 본래 이러한 것인가. 사람들이 내 신경줄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싫다. 나 자신 내 신경줄에 허우적대고 있어 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삶을 어디 내가 못 보는 곳에 떠다 버리고 싶다. 왜 이렇게 삶은 무거운 것인가. 왜 이렇게 삶은 즐겁지가 않은 것인가.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은데 왜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인가.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차피 선택을 못한다면 사이사이 생활이라도 즐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사는 게 어디 있단 말인가. 그냥은 살기 싫다.
늘어진 가죽만 남은 늙음이 싫어서 열심히 먹었다. 아파도 열심히 먹었더니 오히려 살이 쪘다. 몇백 그램 차이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되는 것 보니 웃긴다.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왜 이다지도 더디고 퇴보하는 느낌인지 살찌는 것과 정반대이니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앓아누운 며칠 사이에 꽃이 만발하였다.
시샘하듯 봄기운을 몰아내던 찬바람 속을 뚫고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봄은 하루이틀 사이로 풍경이 완연히 달라진다.
짧은 만큼 할 도리 다 하려는 듯 활짝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병을 이겨내고 나오니 꽃들이 반긴다.
살아있음을 축하해 주는 것 같다.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꽃샘추위마저 이겨내고 피워낸 꽃들이 찬연하고 기특하다.
꽃들과 내가 한마음처럼 함께 하니 기쁘다.
사람의 욕심은 한량이 없는 듯 또다시 밀려드는 허무를 햇빛 속에 녹여낸다.
잘하고 싶고 잘 쓰고 싶고 뭐든 잘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댄다.
욕망이 열정으로 시작되지만 열병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는 시간이 다가옴을 알기에 변하기 전에 성급히 말려본다.
때가 되면 어차피 되살아나겠지만 무성한 잡풀 속에 내팽개쳐 두기 싫어 열심히 낫질을 해대는 농부처럼 열심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