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제철

제철과일

by 오순

단골 슈퍼 앞을 지나다 보니 성주참외를 세일하고 있다. 오래간만에 푸짐하게 참외 한 보따리를 안고 들어왔다. 산책 마치고 도서관에 다시 가는 중이라 집으로 가지 않고 도서관 책상 위 가방 옆에 숨기듯 올려놓았다. 책 읽는 도중 향내가 스멀스멀 밀려온다.


가게에서 고를 때는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철과일이 아니라서 그러는가 맛이 없을 수도 있겠다. 세일이니 그냥 씹는 맛으로 먹지 뭐 하고 나름 싱싱한 것으로 골랐다. 그런데 실내에서 솔솔 풍기는 단내가 다른 이들의 코를 자극할까 신경이 쓰일 정도이다.


그래도 맛은 있겠군 하는 생각에 흡족하여 집에 가서 깎아 아삭아삭 먹고 싶어진다. 이전에 제철과일이 대부분이어서 때가 되면 제철 과일들이 그때그때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때 풍성하게 향내를 자극하는 과일들을 마음껏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가격이 좀 차이가 있다 뿐이지 사시사철 거의 모든 과일이 나온다. 제철에 먹는 맛은 느껴지지 않고 신통한 맛만 느껴지는 것 같다. 참외만 해도 성주참외라는 메이커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으나 밭에서 참외를 따먹던 시절이 그립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소쿠리에 한가득 참외를 따와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마루에 올려놓으면 알아서 와그작와그작 먹었었다. 어렸을 적 맛이 평생을 간다 하는데 지금의 맛은 무늬만 참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싱싱하고 달콤한 맛을 느끼지 못하겠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공부도 제때 해야 효과가 있지 나이 들어 공부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놀 때도 때가 있나 보다. 젊어서 놀아야 신명이 나지 나이 들어 놀면 쉬어가야 한다. 먹는 것도 때가 있다. 아무 때나 먹으면 탈이 난다. 한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과 한여름에 먹는 아이스바는 달달함이 비슷하지만 시원함은 천지차이이다.


때라는 것은 기다려야 온다. 기다리지 않아도 시간이 알아서 데려오긴 한다. 기다려서 먹는 맛이 최고이다. 뜸 들이기를 기다리지 않은 밥은 설익어 밥맛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 그냥 편리 위주의 기술이 지나치다 보니 과잉상태로 넘어가 겉보기에만 풍성하지 맛의 풍성함은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맛이 제대로 나지 않으니 자극적인 것만 찾게 되고 그 자극이 더한 자극을 부른다.


맛을 모르는 풍성함만 가득한 부를 누리고 있다. 진정한 맛을 보면 다시는 가짜 맛을 즐기지 못하게 된다.

제철과일이라는 말도 이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다리지 않아도 나오는 과일들이 맛은 삭감되고 무늬만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어 맛의 풍미를 잃어가고 있다.


각종 자극적인 감미료와 시각적 화려함 때문에 우리의 오묘한 미각이 퇴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옛날 맛이 아니네 맛이 변했네 하고 투정을 부리면 나이 든 네가 변한 것이지 맛은 그대로라고 한다. 하지만 예전 맛은 정확히 저장되어 있는데 진짜 맛이 변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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