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제 동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순자 Mar 03. 2024

쓰임 받는 사람이 주는 기쁨

운산 최순자(2024). 쓰임 받는 사람이 주는 기쁨.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2024. 3. 2. 


    


22년 전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대학에 아동학 공부를 하러 온 늦깎이 성인 학습자가 있었다. 학생 대표로 맡은 바 책임도 열정적으로 했다. 내 늦은 결혼 때 곡명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축가도 불러주고 집들이, 경조사도 챙겼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박사 논문 쓸 때는 어린이집 교사 대상 설문지 조사 의뢰를 해오기에 지인들을 통해 도움을 줬고 “힘내라.”라며 식사로 응원했다. 그는 학위 수여 때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연구원 세미나 때 학위 수여를 축하해 줬다. 이후 본업에 재직하면서 대학 강의 등도 했다. 어느 날 “건강에 문제가 생겨 치료 후 요양 중”이라는 연락이 왔다. 가족과 병문안을 갔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졌다. “아들이 결혼한다.”라고 해서 다녀왔다. 시간이 지나 “손녀를 돌보며 신앙생활과 약간의 강의를 하며 지낸다.”라며 들뜬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세월이 꽤 지나 봄이 오는 길목에서 후대에 1979년까지의 근대문화자료 남겨주기를 위해 하는 내 일과 관련해서 서울 한복판에서 만났다.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특별히 어디로 정하지는 않고 생각만으로 정한 곳 쪽으로 걸었다. 길을 걷다 그가 “여기가 괜찮을 것 같다.”라며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곳이었다. 이심전심이었다. 오리버섯한방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네 시간 동안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실타래 풀듯 술술 풀었다. 그는 화장품, 노트, 목도리를 건네줬다. 준비한 목도리 말고도 “많이 있고 추우니 하고 가라.”고 극구 사양했는데도 색상이 “교수님과 더 어울릴 것 같다.”라며, 자신이 하고 온 회색 목도리까지 주고 갔다. "다음에는 이런 것 준비하지 말고 편하게 만나자."라고 진심으로 말했다.      


받은 자료를 정리하다 설명을 들어야 할 사진이 있었다. 문자로 연락했다. “오늘 밤 8시에서 10시 사이, 아니면 내일 오전 11시 이전에 줌으로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오후 4시 이후부터 주말도 좋고요. 사진 보면서 잠깐만 설명 싶고, 의견 여쭐 것도 있어서요.” “네, 교수님 내일 4시요.”라고 답이 왔다. 약속 시간이 되어 교회에 있던 그가 “학생상담이 길어져서 죄송해요. 오늘따라 두 사례가 급하게 상담이 잡혀서 시간이 길어지네요.”라고 문자가 왔다. “좋은 일로 수고가 많습니다. 편한 시간 문자 주세요.”라고 했더니, “내일 오전에 연락할게요.”라고 했다.     


그가 즐겁게 쓰임 받는 일로 어렵게 주말 오전에 줌으로 만났다. 그는 거실, 침대, 서재 등 집안을 보여주고 나서 사진 설명을 해줬다. 30여 분 얼굴을 보고 얘기 나눈 게 좋았다. 그도 좋았는지 “이렇게 종종 만나요.”라고 한다. “그럽시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소식 주고받읍시다.”라고 답했다. 나중에 한 달에 한 번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계절이 바뀔 때 마다로 할 것’ 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더 좋겠지만.     


짧지 않은 세월 만나오면서, 사람을 성의껏 대하고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로 기억된다. 무엇보다 신앙 안에서 힘듦에 놓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몸소 체험한 몸과 마음 건강 얘기로 쓰임을 받고 있어 바라보는 나도 기쁘다. 귀한 그 일을 글로 남겨 볼 것을 권했다. 서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다 종종 소식 전하고 얼굴 보며 남은 세월 건너갈 수 있으면 좋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이 아이가 이렇게 커서, 오늘도 세월은 흐르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