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山 최순자(2024). 못 먹을 것 같다던 옥수수 단상. 국제아동발달교육연구원 공명재학당. 7. 29.
텃밭 농사로 옥수수는 올해 처음 심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얻은 씨앗을 수확 시기를 고려해 간격을 두고 네 번 나눠 심고 가꿨다. 어느 날 옆집에서 우리 옥수수를 보고는 “저건 못 먹을 것 같아요.”라며 옥수수를 가져왔다. 내 눈에는 옆집에서 잘 보이는 우리 옥수수는 쑥쑥 잘 자라고 있다.
옆집에서 옥수수를 가져온 뒤, 2주 후쯤 옥수수수염이 진한 갈색으로 변한 10여 개를 땄다. 껍질 한 겹만 남기고 수염도 같이 넣어 삶았다. 간은 소금만 조금 넣었다. 음식 단 것은 좋아하지 않아, 파는 옥수수를 삶을 때 넣는다는 설탕이나 뉴슈가는 넣지 않았다. 배운 대로 센불에 10여 분, 중불에 40여 분, 뜸 들이기 5분 정도를 했다.
맛있게 삶아진 옥수수 중 큰 것 세 개를 골라 옆집에 가지고 갔다. 그 집에서 씨앗을 줘서 심은 옥수수이기에 첫 수확물을 나눴다. “아니, 못 먹을 것 같더니. 이렇게 커요. 잘 먹을게요.”라며 받는다. 초여름에 마늘쫑을 받은 적이 있는 어르신네도 실한 것 세 개를 가져다드렸다. 이웃에 좋은 것 먼저 드리고 내가 먹는 옥수수도 내 눈에는 크고 실하다.
‘못 먹을 것 같아’ 보였다는 옥수수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왜일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이경자 소설가는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고유해서 다르고, 그래서 평등하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나쁜 사람이 되나요? (불안감이 제 영혼을 좀먹습니다, 한겨레 2024. 7. 26)”라고 했다. 식물은 실함과 실하지 않음이 눈에 들어 오기는 한다. 그러나 사람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잘 모른다.”라는 말처럼 알아보기 쉽지 않다. 여하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 옥수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