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고자의 독백
나에게 있어 가장 힘든 날은 마법의 날 시즌이다. 이 시즌에는 언제나 최소 한 번의 말다툼은 생긴다.
거의 매번 이때마다 다투지만, 과거에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그 상황을 회피하기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닌 부분을 지적받을 때는 내 감정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자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시가 되어 내 자존감에 고통체가 들어올 공간을 내주기 시작했다.
너는 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큼지막한 결정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이 한마디에 고통체가 슬며시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먹구름의 형체가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을 때 전화를 끊고 가만히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내 감정을 응시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너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해.
내 자아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채팅창을 열고 내 생각을 써 내려갔다.
"나는 네가 내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은 나에게 다 옳은 일들이었고, 앞으로도 나는 내가 선택하는 일들이 옳다고 생각하고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
내가 선택하는 모든 것이 옳지 않을지언정 옳은 길이 아니어도 그 길이 결국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거야."
"네가 화내는 걸 이해 못 한다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너의 그런 말을 받아들이고 무작정 미안해 잘못했어 내 탓이야 하면서 자존감 낮은 나의 모습을 너에게 보이기 싫어서야. 나는 내 자존감을 보호할 의무가 있어. 나를 내가 사랑해야 너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우리 둘 다 행복할 수 있어. 그러니 내 선택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고 나서 나 스스로도 내 자아가 많이 성장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내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내 생각을 전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내가 확실히 어느 정도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 친구를 예전보다 사랑하지 않는다기 보다 앞으로의 여자 친구와의 미래를 위해 솔직한 내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 서로의 자존감이 높아야 우리의 관계를 지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죄인이 맞다. 이렇게나 오랫동안 여자 친구를 기다리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왠지 지나온 시간들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