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고유한 내가 있지만, 어디에 속할 때마다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개구쟁이가 되고, 대학교 친구를 볼 때는 의젓한 동기가 된다.
직장 동료 모임에서는 구성원에 따라 색이 조금씩 변한다.
누군가가 나를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
물론 이해하기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억울하고 슬픈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닌데’,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모두가 다른 자리에서 서로를 특별하게 바라보기에 그렇다.
직장에서 악마로 불리는 분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동네에서는 이웃으로 만나면 나눔도 많이 하고 이웃 간에 좋은 평이 자자하다.
이건 그에 맞는 역할과 모습이 분명 존재하기에 괴리가 발생한다.
내 고집만 부리는 건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가끔 내가 누구일까?
라는 정체성에 흔들리면 계절마다 바뀌는 야생화라고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야생화는 누군가에게는 사정없이 짓밟히고,
누군가에게는 집에 한가운데 꽃병에 놓여 온가족에 사랑을 받는다.
꼭 당신이 흔들릴 때 기억해두어라.!
그건 당신의 본모습을 찾아주는 만능키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고
국민으로서 책임감이 있기에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매번 다른 안경을 써야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