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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지 Oct 26. 2019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ㅡ  과학자의 눈으로 예술적 감성을 그리다

■다음 글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의 일부내용입니다.

열 번째 이야기 



과학사와 미술사에서 사라진 놀라운 여성


메리안의 초상화


여기 미술사에서 사라진 놀라운 여성이 있다. 그녀는 17세기 중반에 태어나 18세기 초반까지 살다 간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Maria Sibylla Merian 1647-1717이다. 그녀의 삶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세계사의 여자 영웅 female hero의 반열에 있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메리안은 최초의 곤충학자 중 한 사람이었고, 용감한 탐험가였으며, 동식물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수채화와 동판화로 제작한 뛰어난 예술가로서, 17, 18세기의 여성의 삶을 생각해볼 때 시대를 앞선 가치관과 행동력을 보여준 경이로운 여성이었다. 그런데 왜 메리안은 과학사에서도, 미술사에서도 사라졌을까? 당시의 미술계나 과학계 모두 철저하게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정식으로 아카데믹한 과학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당대, 그리고 이후의 곤충학계는 그녀의 업적을 평가절하해 곤충학사에서 제외했고, 동판화나 수채화를 유화나 역사화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미술계에서도 그 이름이 누락되었던 것이다.   

  


열대로 떠나다


ㅡ 과학자의 눈으로 예술적 감성을 그린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  

 

1705년판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


1699년은 메리안의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해일뿐 아니라, 그녀를 후에 유명한 과학자이자 예술가로 만들어준 기념비적인 해이다. 52세 되던 해, 이야기로만 듣고 표본으로만 보았던 열대 생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연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북동부에 있는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을 향해 위험한 항해길에 오른다. 17세기 후반의 52세란 지금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70세쯤 되지 않을까?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그녀는 여행비용을 위해, 255개의 작품을 팔고 네덜란드 당국에 탐사 지원 신청서까지 낸다. 처음에는 나이가 많은 데다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거절당하지만, 탐사 경비를 갚겠다는 각서를 쓰고, 마침내 그녀의 둘째 딸과 함께 2개월간의 험난하고 위험한 뱃길을 떠나게 된다.


1701년, 높은 온도와 습한 기후에 지쳐 결국 말라리아에 감염된 메리안은 수백 점의 표본과 스케치를 가지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1705년, 60여 장의 동판화 작품을 수록한 그녀의 역작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 Metamorphosis Insectorum Sueinamensium>을 출판한다.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당시 유럽의 귀족들과 상류층은 열광했고, 작가이자 식물학자이기도 했던 괴테의 찬사를 받았으며, 조지 3세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까지 왕실 소장품으로 메리안의 동판화들을 사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동판화들은 곧 각국의 궁전, 도서관, 박물관, 상류층의 거실에 걸리게 되었고, 한동안 과학계와 미술계 양쪽에서도 인정을 받는 등 메리안은 큰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출판 수입을 거둬들이기도 전에 1717년, 69세로 뇌졸중으로 사망하게 되며, 이 놀라운 책과 메리안의 이름도 역사에서 사라진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 자체가 불꽃같은 인생이었다. 세 권의 중요한 책을 통해, 메리안은 186종의 나비, 나방을 비롯해 개구리,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와 파충류의 알에서 성체까지의 생활사를 꼼꼼히 기록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과학적인 자연발생설을 뒤엎었다. 또한, 직접 자신이 기른 유기체들을 실험 관찰했고, 다윈이나 헤켈, 월리스 등과 마찬가지로 열대지역을 탐험한 현장연구자였다. 이러한 업적들로 볼 때, 메리안은 최초의 생물학자, 생태학의 선구자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동시에 그녀는 탁월한 미술적 재능으로 역사상 최고의 과학 삽화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사회적 편견에 의해 ‘숙녀답지 않은’, ‘지나치게 설쳐대는 거친 독립성’으로 비난받았던 그 불굴의 탐험가 정신은 현대 여성들에게도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메리안 자신이 그녀가 평생 열정을 바쳐 연구한, 작은 애벌레에서 환골탈태한 나비처럼 화려한 삶을 살다 간 한 마리 나비가 아니었을까.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의 삽화들>


호랑이 나방의 변태

가든 호랑이 나방의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의 변태 과정을 보여주며, 그것의 숙주 식물, 말벌 등을 함께 묘사하고 있다.


벌새를 삼키는 타란툴라 거미

 왼쪽 구석 아래에서 타란툴라 거미가 벌새를 먹고 있다.


남미산 산호뱀을 물고 있는 수리남 카이만(아메리카산 악어)


애벌레들 멀버리 나무 열매와 잎, 그리고 실크 나방의 알과 애벌레를 묘사하고 있다.


애벌레, 나비, 그리고 꽃들


물쇠비름과 수리남 두꺼비


산호뱀과 줄무늬 고양이눈뱀, 그리고 개구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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