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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01. 2021

서로를 기억할 일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3. 서로를 기억할 일



 서혜와 성현이는 어릴 때부터 구로구에서 함께 자란 친구 사이였다. 다행히 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간을 이용해 구로구에 있는 한 대형 아웃렛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야부리를 털 수 있었다.

 “골목 하나만 지나도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것 같은 거예요.”

 “그 동네가 다 그렇죠. 어차피 매장 안에만 있었으면서.”

 “옆 가게 사장님이랑 친해서 가끔 셋이 술을 마시러 다녔거든요. 평일에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마감하니까요.”

 대학에 가면서부터 자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두 사람은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같은 곳으로 나온 가까운 사이였다. 첫 일 년은 각자의 대학 생활에 빠져 연락이 뜸했지만, 이 년째가 되고 나니 그네들을 탐색하는 선배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더 어린 여자애들에게로 넘어가고 동기 녀석들은 군대로 떠나버려 결국 남은 건 서로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 오빠가 이제 일 학년 여자애한테 연락을 하고 있던 거예요. 성현아, 내가 말했지 어제.”

 “여우 같은 년.”

 “아니 걔 말고. 얘는 사람은 착해.”

 “여우는 또 누구예요?”

 “그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

 “예쁜 애가 있어요. 정말 예쁜데, 사진 한번 볼래요?”

 본능적으로 함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성현이가 몸을 틀어 뒷자리에 앉은 서혜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걔 사진 줘봐.”

 “유진이? 예쁘긴 하지. 어, 근데 꼭 보여줘야 해?”

 엉겁결에 사진첩을 열던 서혜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숨기는 듯한 몸짓을 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함정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얼마나 예쁜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말없이 운전에만 열중하는 척했다. 성현이는 묵묵히 손을 내민 채 기다렸고 서혜도 결국 사진첩을 열어 휴대폰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화면을 보던 성현이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피식하고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미리 할 말을 정해두었다.

 “어때요?”

 “귀엽게 생겼네. 내 스타일은 아닌데.”

 예뻤다. 억지로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려 애를 쓰며 전방을 주시했다. 살면서 이렇게 예쁜 여자는 처음 보았다. 나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며 두 사람 사이의 어느 공허한 공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보정한 거 아냐?”

 “마음에 드나 보네.”

 성현이가 내 뒷자리의 빈 곳을 향해 대답하며 휴대폰을 서혜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공개처형을 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서혜가 나를 도와주기를 기대했지만 역시 그녀는 성현이의 소꿉친구였다.

 “얘가 그렇게 예쁜가?”

 “오빠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하긴 학교 선배들이랑 동기들도 다 좋아하니까. 남자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타입은 다들 비슷한가 봐요. 그렇지 않나요?”

 “혹시 방금 말한 오빠가 나니?”

 서혜가 소리 내어 웃었지만 성현이는 예의 그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린 은은한 미소만 지으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비위를 맞추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예쁘긴 한데.”

 “아까는 귀엽다면서요.”

 서혜는 숨이 막힌 듯했다.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헉하는 소리를 무시하며 성현이에게 내놓을 대답을 생각해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은 있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잖아? 염색하지 않은 긴 머리, 헐렁한 옷보다는 몸을 감싸 쥔 얇은 화이트톤의 상의, 하의는 복숭아뼈 위에서 아슬하게 끝나는 타이트한 청바지.”

 사진 속 그녀는 내가 상상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그 학교 학생이라도 한 번쯤 달려들어 보고 싶은 꿈속의 이상형이었다. 한 달 아르바이트비를 다 털어서라도 그녀의 품에 무언가를 안겨주고 싶다. 나를 향한 그녀의 미소를 단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

 “보통은 그런 타입을 좋아하는데, 나는 조금 다르지.”

 알록달록한 색상의 케이크를 파는 대학로 뒷골목의 베이커리 한가운데 그녀가 앉아 있다. 내가 들어가기 전 그녀는 가벼운 수필집을 한 장씩 넘기며 책을 읽는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쯤 그녀가 긴 생머리를 왼쪽 귀 뒤로 넘기며 부드러운 볼과 굴곡진 턱선을 내어 보인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출입문이 열리며 울리는 종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그녀의 두 눈이 나를 향해 쏘아내는 어둠 속의 광채.

 잽싸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조수석에 앉은 성현이가 잠시 허공으로 떠올랐다 몸에 매인 벨트에 갇혀 이내 떨어졌다. 서혜가 벨트를 안 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다행히 그녀도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뭐예요?”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멍하니 있던 서혜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고라니 맞죠.”

 옆에 앉은 성현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보고 있었다.

 “제주도에 고라니가 있나?”

 내려서 확인해보니 왼쪽 범퍼의 중간 부분이 아예 떨어져 나가 버렸다. 센서 부분이 부서져 주차할 때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 정도가 불편할 듯했다. 돌아가 도로에 누운 녀석을 살폈지만 이 녀석이 고라니인지 노루인지 확인할 안목이 없었다. 몸에 점이 없으니 사슴은 아니라는 정도가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렌터카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전화를 받는 직원이 있었다.

 “멸종위기 종인데 용케도 박으셨네요. 요즘은 그런 일도 잘 없는데.”

 “저도 살면서 처음 겪어요.”

 “교통 방해가 되지 않게 큰 파편만 치워주세요. 위치가 어디라고 하셨죠?”

 지도 어플을 띄워 위치를 캡처한 다음 그에게 보내주었다. 트렁크를 열고 부서진 범퍼 조각을 옮겼다. 큰 조각 몇 개를 옮기고 나자 길에 남은 건 자잘한 플라스틱 부스러기와 노루인지 고라니인지 모를 녀석의 몸뚱어리였다. 도로 한가운데에 놓인 녀석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나중에 올 누군가가 또 녀석을 피하려다 사고를 낼지도 몰랐다. 뒷좌석 문을 열자 사슴 눈으로 뒤처리를 하는 내 모습을 살피던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물티슈 있는 사람?”

 앞자리에 앉은 성현이가 핸드백에서 얇은 물티슈 백을 꺼냈다.

 “어떡하게요?”

 “길옆에 치워놓아야 할 것 같아. 이대로 두면 다른 차들이 오가다 또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오래는 안 걸리겠죠?”

 성현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돌아가 물티슈 네 장을 꺼내 녀석의 양 앞다리에 두 장씩 겹쳐 올렸다. 스치는 손끝마다 느껴지는 온기가 녀석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녀석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시멘트 포대를 끄는 기분으로 간신히 녀석을 풀밭까지 옮겼다. 앞다리에 말린 물티슈를 벗기려는 순간 녀석의 검은 눈꺼풀이 끔뻑거렸다.

 문득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억할 일이 없고 오늘의 사고는 나나 녀석의 잘못도 아니었다.

 헐떡이는 숨통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에 동화된 검은 눈동자 때문인지 녀석이 나를 보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언제 갈 거예요?”

 어느새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이 멀찍이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녀석을 이대로 두고 가면 안 되는데. 마지막까지 남아서 곁을 지켜줘야 하는데. 한참을 머뭇거리던 내 뒤로 다가오는 조그만 발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성현이였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얘가 아직 살아있네.”

 “어머, 그러네요.”

 “두고 가기가 그래서.”

 “계속 보고 있게요?”

 “그럴 시간은 없겠지?”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그들을 숙소로 데려다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작은 손이 다가와 내 옷깃을 쥐었다.

 “가요.”

 녀석을 그곳에 남겨놓고 그녀가 잡아끄는 손을 따라 차로 돌아왔다. 나를 데려온 성현이를 본 서혜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뒷좌석 문을 열었다. 트렁크 앞에서 그녀는 손을 놓았고 나는 돌아가 운전석에 앉았다. 잠시나마 시동이 걸리지 않을 듯한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내 차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듯 힘찬 엔진 소리를 내어주었다.

 그녀의 손이 남긴 온기와 어둠 속에서 나를 보던 녀석의 검은 눈동자가 오감을 지배하고 있었다. 멍한 얼굴로 앞을 보던 중 조수석에 앉은 성현이가 일부러 시끄럽게 핸드백을 뒤지며 내 정신을 깨웠다.

 “갈까?”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뒷좌석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겨우 차를 몰아 그들의 숙소로 향했다. 이미 시간은 밤 아홉 시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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