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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Sep 27. 2021

쏟아지는 물줄기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1. 쏟아지는 물줄기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기울어진 우산 끝으로 흐른 물줄기가 왼 어깨를 적신 뒤였다. 혼자 쓰고 온 우산인데도 옷이 젖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운동화 속으로 조금씩 빗물이 배여 발가락 사이로 축축한 기운이 전해 왔다. 초여름의 비 냄새는 차고 시큼하기만 하다.

 접은 우산을 복도에 펼치고 문을 열었다. 실수로 끄고 나간 에어컨 때문에 방안은 습기로 가득했다. 제습으로 모드를 바꾸고 목표 습도를 오십 퍼센트로 맞추자 바닥으로 전해지는 얇은 떨림이 실외기의 움직임을 알려주었다.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어질러진 방은 나올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방안 가득히 차오른 습기에 눅눅해진 옷들을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세탁기 손잡이에 낀 먼지가 다가가던 손끝을 멈칫거리게 한다.

 땀에 젖은 와이셔츠는 조금의 틈도 없이 내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오래 붙인 파스를 떼는 것처럼 간신히 벗겨낸 셔츠는 살갗에 얼얼한 통증을 남겼다. 흠뻑 젖은 수영복을 억지로 벗는 듯한 느낌. 어디선가 느껴본 감각이었다.

 반투명 테이프가 붙은 샤워 부스는 방안보다도 습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침처럼 밝지는 않았다. 이미 한 달 전에 예고한 퇴사일이었지만 막상 그날이 되자 마음은 기대하던 것처럼 즐겁지 않았다. 곧 들어올 퇴직금 몇백만 원과 그동안 모아둔 얼마 안 되는 돈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회사를 나와버렸다는 불안감이 그제야 나를 덮쳤다.

 살며시 책상 위에 올려둔 사직서를 보고 부장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종이로 사직하나. 차라리 메신저로 알려주지 그랬어.”

 “돌아가서 메신저로 보내드릴까요?”

 평소 나를 아끼던 부장은 피식 웃으며 사직서를 한끝으로 밀어두었다.

 “고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거야.”

 “쉬고 싶었어요.”

 “일이 너무 편했나?”

 아쉬운 기색을 보이며 그가 농담을 건넸다. 나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서 할 일은 있어?”

 “쉬면서 찾아보려고요.”

 “조금 더 일하다 갈 곳이 생기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보는 게 어때?”

 그의 제안이 고마웠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뒤였다. 업무 인수자와 인계 일정을 알려주겠다며 그가 나를 돌려보냈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쥔 내게 그가 마지막 말을 건넸다.

 “윤진아, 너를 아끼니까 하는 말인데 너무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일부터 벌이는 건 그리 좋지 않아.”

 그의 말이 맞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를 나조차도 알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그와의 친분을 이유로 이 년을 채웠지만 그것이 내 한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친숙해지고 일은 손에 익었다. 일 년 정도 일을 배우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기만 해도 이곳에 남을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두 눈에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그려지고 나면 내 안에 있던 열정과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일 년, 육 개월, 다시 일 년, 그리고 이곳에서의 이 년. 그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마다 흩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나를 믿고 이곳으로 데려와 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도 반년이 지난 때부터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두 번째 직장에서 육 개월만 일하고 나오는 바람에 퇴직금을 받지 못한 걸 교훈 삼아 어디에 가든 일 년은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육 개월은 새로운 일을 배운다는 즐거움으로 지냈고 다음 육 개월은 적어도 퇴직금은 받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버텼다. 그 뒤의 일 년을 더 지켜본 것은 잦은 이직이 어쩌면 내 문제로 인한 게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결론은 내 문제가 맞는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삶을 산다는 건 굉장한 용기였다. 내년에 내가 담당할 업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내후년에 침대에서 일어날 시간과 잠들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오 년 뒤에 어울릴 사람들이 저 파티션 뒤에 있는 사람들이고 십 년 뒤에 시무식을 할 고깃집이 회사 건물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이 마치 내게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졌다. 네 곳을 옮겨 다니며 같은 감정이 들었으니 회사의 문제는 아니었다. 어디에 가든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좋은 사람이 드물 듯 나쁜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니 사람의 문제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닐까.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내년에는 새로운 일이 시작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 말이다. 그런 것 없이 살아가는 삶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더 나은 삶, 새로운 삶을 꿈꾸며 샤워기를 틀었다.

 “앗, 차가워.”

 은빛 샤워기 헤드로 쏟아지는 찬물이 몽롱한 정신을 깨워주었다. 바로 뜨거운 물로 수도꼭지를 돌렸지만 보일러가 움직이는 소리는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냄새나는 샤워 커튼 속으로 차오르는 증기는 내 몸에서 나온 걸까 샤워기를 빠져나온 걸까.

 뺨을 적시는 물기는 몸을 떠난 땀방울일까 쏟아진 물방울일까.

 언젠가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습한 날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습관을 들인 게 언제부터인지를 가늠해보며 쏟아지는 물줄기 속으로 나는 숨어들었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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