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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06. 2021

개구리들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5. 개구리들



 하루만 재워달라는 부탁에 문을 열고 나온 서혜는 잠시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이내 먼 길을 돌아온 나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야생동물을 치받은 일을 함께 겪었다는 묘한 동질감에 흔쾌히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신발을 벗는 내 앞에 선 그녀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샤워 소리가 새어 나오는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윤진이 오빠가 너무 늦어서 하루만 재워 달라는데 이 층에 작은 방 내어줘도 괜찮지?”

 잠시 물소리가 멈추더니 그러라는 대답이 들렸다. 서혜가 밝은 얼굴로 나와 이 층을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 겨우 한 사람만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계단을 오르니 베란다로 향하는 커다란 통유리와 좌우로 나뉜 작은 방 두 개가 보였다.

 “사진으로 볼 때는 예뻤는데 막상 와보니 안 쓸 공간이 많더라고요.”

 “여덟 명이 와도 괜찮겠는데.”

 “근데 얼마인지 알아요?”

 “얼만데?”

 “일박에 사만 이천 원.”

 “말도 안 돼.”

 “오빠는요?”

 “혼자니까 이만 얼마 정도? 너네가 돌아가면 내가 여기로 들어올 거야.”

 “예약이 다 찼을 텐데.”

 서혜가 웃으며 작은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커튼이 없는 창과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 하나, 작은 탁자와 그 위에 놓인 우산 모양의 조명등이 전부인 단출한 방이었다. 다행히 화장실은 방 한쪽에 붙어 있었다.

 “둘이 눕기에는 작네.”

 “누구랑 눕게요?”

 서혜가 당황한 듯 입을 가리고 물었다. 나는 멀뚱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덟 명이 이 펜션을 쓰려면 일 층 큰방에 두셋이 들어가고 이 층에 있는 작은 방에 두 명씩 들어가야 할 텐데, 그런 것 치고는 침대가 작네. 바닥에 깔 이부자리가 더 있나?”

 “그런 건 안 찾아봤어요.”

 그녀가 벽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네한테 칫솔이 한 개 더 있지는 않겠지?”

 “네.”

 “들어올 때 사 올 걸 그랬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어.”

 “큰길가에 편의점이 있어요.”

 거실에 놓인 오인용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는 서혜를 뒤로 하고 펜션을 나섰다. 결국에는 방문하게 될 편의점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라면이나 한 그릇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세워둔 차를 지나쳤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기분을 전환하고 잠시 몸도 움직일 겸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불이 켜진 몇 채의 펜션을 지나 앞서 차를 몰고 들어온 도로에 접어들자 개구리들의 음산한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휴대폰 라이트를 켜 바닥을 비추자 길 한가운데까지 뛰쳐나와 목울대를 부풀리는 수십 마리의 개구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얼핏 살폈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액셀을 밟았던 자리로 가보자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타이어에 짓눌린 개구리들의 사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몸 곳곳이 터져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짙은 자국들이 한때는 살아있었을 그들의 흔적을 대신했다. 불빛 아래 드러난 그들의 피는 나처럼 붉었다.

 재빨리 눈을 돌려 큰 길가로 향했다. 채 몇 걸음도 더 걷지 못하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방금 신발 아래 물컹한 걸 밟은 듯했다.

 바로 편의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몇 마리를 더 밟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밟았으리라.

 편의점 입구에 도착해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신발에 박힌 오톨도톨한 무언가가 느껴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니 족히 이삼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 듯했다. 펜션 입구에 늘어선 조명들이 멀리 점처럼 떠올라 있었다. 다시 저 길을 돌아갈 걸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까 본 것들이 떠올라 또 구역질이 올라왔다. 다급히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둘러볼 필요도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게 세면도구였다. 그 선반 가운데에는 콘돔이 있었다. 오카모토, 사가미, 바른 생각, 플레이보이, 듀렉스. 하지만 오늘은 그날이 아니었다.

 헤드에 뚜껑이 씌워진 것으로 하나를 골랐다. 계산대로 가려는 찰나 콘돔으로 눈이 돌아갔다.

 오늘은 그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능성을 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도 있었고 모레도 있었다. 둘은 이틀 뒤에나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니 돌아가 둘 중 한 사람에게 연락할 수도 있었다.

 오늘은 아니었고 반드시 오늘일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게 보이리라. 하지만.

 가장 얇은 제품을 골라 계산대로 가져갔다. 휴대폰을 보던 직원이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건네받았다. 칫솔은 왼손에 쥐고 콘돔은 보이지 않게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편의점 문이 닫히며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문득 라면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라면 사발에 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멀리 반짝이는 펜션의 조명이 보였다. 돌아가는 길에 널려 있을 개구리들을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손에 들린 칫솔 포장지를 구길 듯 움켜쥐고는 뛸 준비를 마쳤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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