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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18. 2021

밀어내는 물소리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10. 밀어내는 물소리



 “전기차 주차 칸에 몰래 세우면 안 되나.”

 “뭘 그렇게까지 해요.”

 조수석에 앉은 성현이가 나를 타박했다. 이미 약점이 잡힌 터라 뭐라 반발하기가 어려웠다.

 “오케이.”

 그녀의 눈에 잘 보이도록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주차장을 계속 돌았다. 결국 나오는 차 하나를 발견해 그 앞에 비상등을 켜고 기다렸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돌아 나온 검은색 그랜저 한 대가 냉큼 그곳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화가 치솟아 경적을 울렸다. 욕지거리가 한 사발 나오는 걸 간신히 집어삼켰다. 어느새 성현이는 형편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뒷자리에 앉은 서혜는 휴대폰 만지기에도 여념이 없는 듯했다.

 “여기 세워도 괜찮아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성현이가 질문을 가장한 명령을 내렸다.

 ‘당장 차를 빼 저 주차장을 빙글빙글 도세요.’

 “괜찮을 거야. 얼른 다녀오면 되겠지.”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폭포의 입구로 향했다.

 ‘성인 2,000원. 어린이, 군인 1,000원.’

 “군인이 여기 올 이유가 있나.”

 “그러게요.”

 “그러니까 할인해주나 보다. 어차피 안 오니까.”

 “올.”

 서혜의 영리한 대답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는 우리 사이로 성현이가 사뿐히 걸어 나와 매표소에 카드를 내밀었다.

 “나중에 현금으로 보내줘요.”

 자연히 그녀의 번호도 얻게 될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왼쪽에, 성현이가 가운데, 서혜는 오른쪽에 서서 우리는 폭포를 향해 걸었다. 둘의 옷차림은 어제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서혜는 어제 입은 스커트와 비슷한 느낌의 회색 컬러에 큼지막한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원피스 차림이었다. 신발은 벗기 편하게 생긴 하얀색 쪼리 슬리퍼였는데, 쪼리 밖으로 나온 발톱에 칠해진 초록빛의 페디큐어가 몸 어디라도 있는 그대로는 보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나타내 주었다.

 성현이의 옷차림은 어제와 비슷했다.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서 끝나는 짧은 청반바지와 굴곡진 새하얀 나시 티, 그 위를 가린 연한 빨강의 여름용 셔츠. 걸쳐 놓기만 한 걸로 봐서는 언제든 덥다 싶으면 벗어던질 옷처럼 보였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의 가지가 오전의 햇살을 받쳐 들고 있었다. 나뭇가지는 구름처럼 고요히 움직이고 잎사귀는 올올이 말린 양탄자의 실처럼 가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누구도 저들의 평화를 해칠 수 없을 것처럼 폭포로 향하는 길 위의 가지들은 원래 사람들이 감당했어야 할 따가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폭포에 다다랐을 때는 일찍 도착한 관광객들이 목 좋은 곳마다 자리를 잡은 뒤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대포 카메라를 든 아저씨 몇몇이 개인에 오천 원 가족에 이만 원으로 멋들어지게 한 장 해주겠다며 주변을 기웃거렸다.

 하늘과 땅을 잇는다기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럭저럭 볼만은 했다. 아무래도 팸플릿에 인쇄되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들은 망원렌즈를 사용하거나 관리소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 촬영한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느낌이 다를 리가 없었다.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왜 이렇게 크게 말해.”

 놀란 표정의 서혜가 투덜거리는 성현이를 다독였다. 어쩌면 솔직하다는 데서 성현이의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걸지도 몰랐다. 서혜는 그런 면에서 다소 예의를 차리는 편에 속했다. 무슨 저런 게 폭포냐며 툴툴대는 성현이를 향해 서혜는 들리지 좀 않게만 말하라며 투닥질을 하고 있었다.

 예의가 없는 것과 솔직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녀는 예의가 없는 걸까 솔직한 걸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마음을 읽었다. 얼굴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했다.

 “미안해. 나도 오늘 처음 온 곳이라 사진이랑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네.”

 생각보다 공손한 말투에 그녀는 머뭇거렸다. 사실 자기가 투정을 부린 것이니 그렇게까지 사과받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도권을 내어주지 않았다.

 “다음은 어디로 간다고 했죠?”

 “쇠소깍이라는 곳에 가면 나룻배를 탈 수 있대.”

 “이 햇살 아래?”

 이제는 해탈한 듯한 서혜가 멍하니 서서 폭포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이곳에 어울리는 관광객이었다.

 “날이 너무 덥기는 하지. 쇠소깍은 다음에도 갈 수 있으니 오늘은 주변에 있는 괜찮은 카페에 들러 더위나 식히고 나올까?”

 그녀는 마음으로 동의했지만 일부러 한 번 더 시비를 걸었다.

 “근처에 아는 데는 있어요?”

 “주변에 식물원을 개조한 카페가 하나 있대. 그런 데 가본 적 있지?”

 “아뇨.”

 그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다행이었다.

 “가보자. 괜찮을 거야.”

 ‘나도 처음이긴 한데.’

 마치 두고두고 다녀온 손님처럼 행세하며 두 사람과 함께 폭포를 벗어났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아득하니 멀게만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폭포가 아니라 수십 미터는 더 떨어진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우리를 어딘가로 밀어내는 물소리. 어느 정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느새 폭포는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떼로 몰려가는 사람들의 소음에 물소리마저 가리고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내 옆에, 서혜는 뒤에 앉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자리가 정해질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차를 세운 가게는 망한 듯했다. 이렇게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문을 열지 않는다면 이유는 뻔했다. 이곳은 유행이 빨랐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가게는 성수기에는 관광객이 비수기에는 지역 주민이 먹여 살렸지만 젊은 층을 노린 한 철 장사들은 여지없이 두세 달 반짝이었다.

 “이런 곳들은 금방 망하는 것 같아요.”

 서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러게. 지금까지 안 열면 아예 닫은 거겠지?”

 “이래도 남는 게 있나.”

 “치고 빠지는 거지. 어차피 잠깐인데. 처음부터 오래 할 생각도 없었을 거야.”

 성현이는 우리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그녀는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만 보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서혜가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적당히 추임새를 넣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척만 했다.

 나는 그녀의 주목을 끌고 싶었다. 나시티 가운데로 움푹 파인 가슴골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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