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그녀(든든함)
93학번인 나와 93년생인 그녀.
그녀와의 인연은 2017년. 그녀는 신규교사로 첫 발령. 나는 이 지역으로 타시도 발령. 둘 다 발령동기, 93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녀는 똘똘하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발랄하다. MZ세대 특유의 당당함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어른들과의 대화에도 스스럼이 없다. 아직도 교장, 교감 앞에 서면 작아지는 나와는 달리 교장, 교감님과 농담 따먹기도 잘한다. 그녀는 MZ세대임에도 살짝 보수적이다. 그래서 93학번인 나와도 이야기가 통한다.
그녀는 이제 겨우 7년 차 교사이다. 27년 차 교사인 나는 그녀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학부모를 대하는 태도와 말이 노련하다. 언제나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서 잘 이야기해 준다. 일단 보호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난 후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00가 이러면 제가 너무 걱정돼서요. 저는 00을 너무 사랑하는데 0학년 올라가서 계속 이럴까 봐 너무 걱정되어요."
언제나 아이(I) 메시지로 상대방의 감정선을 풀어버리고 대화를 풀어간다.
스르륵 그녀의 말에 몰입되는 보호자들.
배우고 싶은 노련함이지만 변명하자면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내가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다.
교사는 때로 배우가 되어야 된다고 가르쳐 준 그녀. 인생의 지혜를 알려준 그녀다.
그녀는 듣기 좋은 말도 잘한다.
"부장님 오늘도 너무 예뻐요. 예쁜데, 살 빠지셨죠?"
"나이 드니까 일 속도가 느려져. 큰일이다."
"부장님. 일 잘하세요. 저보다 엑셀도 잘하시는데. 능력자."
살짝 거짓말이 들어간 걸 알면서도 기분은 좋다.
그녀의 교실은 항상 깔끔하다. 미련 없이 필요 없는 걸 버릴 줄도 안다. 옛 추억이라고 뭘 버리는 걸 두려워하는 나에게 버림의 미학이 없으면 주변 환경이 깔끔할 수 없다는 걸 몸소 알려준다. 마음 속 찌꺼기도 잘 버릴 줄 아는 그녀다. 힘들고 기분 나빴던 일은 그냥 잊어버린다. 아직도 질척 질척 과거에서 못 헤어나는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
그녀는 아이들을 혼낼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잘하고 하교시킨다.
"얘들아, 오늘 행복했니?"
저학년 아이들은 저 말에 단순하게 행복했다고 답한다. 행복은 단순하게 하루 웃으며 보내는 거라는 걸 알려주는 고민 없는 단순한 저학년 아이들. 행복하다고 대답하고 나면 본인들이 정말 행복하게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며 마무리하는 저학년 아이들의 마음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안다.
보라색 음식의 안토시아닌 성분은 항암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지, 콜라비, 블루베리, 자색고구마, 자색 양파 모두 몸에 좋다고 한다.
나에게 마치 항암제 같은 그녀의 이름은 보라.
보랏빛 그녀 보라. 든든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