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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l 03. 2023

3월에 잘못 꿴 단추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구나.

남색 피구공(부끄러움+절망)

  10년마다 반복되는 삶의 흔들림.

  2002년, 첫사랑을 만나고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겪은 해였다.

  2012년, 교사를 관둬야 된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자존심이 무너지는 절망적인 해였다.

  2022년, 아들의 학교에 불려가 울며 사죄를 해야 했지만 동시에 교육청, 인권위 온갖 곳에 문의를 하며 선생님이 아닌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해였다. 아들만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십년 주기로 반복되는 큰 사건. 올해는 2023년이니 우선 평안하길, 남은 반 년은 정말 평안하길 기원해본다. 인생엔 항상 뜻하지 않은 일들이 닥치지만 그렇더라도 잘 버티고 견뎌내길. 지혜롭게 대처하길. 남은 반 년은 어떻게든 정말 평안하길.


  2012년 그 해는 나에게 처음 겪어보는 일들 투성이인 한해였다.

  고향의 소위 강남 8학군 학교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학생회 업무를 하면서 생긴 자그마한 실수가 자존심 강한 학모를 흔든 사건이었고, 그 학모가 교장선생님을 흔들었고, 교장선생님은 나를 흔들며 철저히 무시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그 실수 하나로 교장부터 교무까지 무시하는 선생이 되어버렸다. 이전도 이후로 겪어보지 못했던 대우. 나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괜찮은 선생이라고 생각했던 자존감은 무너져버렸고 칭찬받으며 성실하게 생활해 왔던 이전의 내 경력들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한해였다. 내 인생을 처음부터 리셋해야겠다는 느낌. 학교를 관둬야 되나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07화 JS 그 두려운 존재에 대하여 1 (brunch.co.kr)


  이 사건이 내 자존심의 붕괴로만 끝났다면 한 사람 괴롭고 끝날 일이었겠지만 그 해 우리반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전근가기 전에 6학년 부장을 했었기에 새로운 학교에서 6학년을 하게 된 것이 그리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 있었다. 착각이었다.

  사람은 정말 너무나도 달라서 이전 6학년 아이들과 우리 반 아이들이 같을 수 없었고, 이 학군의 가정 환경과 아이들의 가치관, 학부모의 의식도 또한 같지 않았다. 너무나도 똑똑한 아이들. 너무나도 똑똑한 부모들. 진정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바뀐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인식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기엔 3월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교장선생님한테 혼나고 무시당하고 업무에서 배제당하는 사이, 내 마음 추스리느라 바쁜 사이, 우리 반 아이들은 모래알처럼 내 손을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격변의 사춘기를 겪는 몇 몇 남학생들. 강남 8학군에 비견할 정도니 학업 스트레스가 만만찮은 아이들. 학교에 와서 온갖 스트레스를 다 푸는 아이들이었다.


  3월은 교사들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이젠 절대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늘 교사들은 이야기한다. 3월에 잘 잡아야 된다고. 속된 말이지만 저 말의 의미는 3월에 생활습관을 잘 형성시키고 새로운 선생님한테 적응시키고 규칙을 함께 세우고 잘 지킬 수 있도록 교사가 아이들을 야무지게 끌어줘야 된다는 말이다.

  2012년 3월의 나는 나 자신도 야무지게 끌고 가기 힘든 처지였다. 그 전에 5,6학년을 많이 했다. 교사로서  5,6학년 아이들과 래포를 잘 형성하고 항상 잘 지내왔던 나였다. 수업 시수도 많고 준비해야 될 것도 많고 한창 예민한 아이들 싸움도 중재해야 되고 힘든 일 투성이지만 말이 통하는 5,6학년 아이들이 좋았었다.

  2012년은 그렇지 못했다. 래포 형성은 할 수 없었고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 아이들은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부회장 선거에 나온 남학생은 회장을 도와 선생님을 힘들게 하겠습니다라는 공약을 말했고 그걸 듣는 남학생들은 키득거렸다. 똘똘한 학생이었던 H는 사사건건 내 말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면 H는 혼이 났고 혼난 H는 독기를 품은 듯 또 나를 걸고 넘어지는 악순환이었다. 심지어 애들을 엎드리게 하고 울기까지 했다. 그 해 교원평가에는 선생님이 울기나 하고 어쩌고 안 좋은 말들도 많았다. 그냥 받아들여야 될 현실이었다.


  어느날 다른 반과 피구를 했다. 남색 피구공이 내 얼굴에 정통으로 날아왔다. 정말 공 한 개가 정확히 내 얼굴을 덮어버렸다. 아픈 것도 느낄 겨를 없는 그 민망함. 그 와중에 남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화장실에서 선생님 얼굴 맞는 거 봤냐고 박수치는 남학생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여학생들을 통해 들었다.

  2012년의 나,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긴 하다. 이후 내 교직생활에 6학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친정에 들르면 반드시 그 학교를 지나가야 된다. 그렇게 마음을 콕콕 찔러대던, 아린 곳을 기억나게 하는 그 학교.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00초등학교네, 그 똑똑한 아이들 다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잊히진 않지만 무뎌지게는 만드는 시간의 힘. 고마울 따름이다.

  (그 해 아이들 중엔 서울대 법대, 의대를 비롯 다수의 아이들이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똑똑한 아이들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나에게 반항했던 그 몇몇 아이들. 그 격변의 사춘기를 지나 지금은 마음이 편안한 청년들이 되어 있기를 빌어본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들이 되거라.)



 

  남색 피구공이 얼굴에 정통으로 날아왔다.

  "아얏."

   부끄럽다. 너무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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