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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l 03. 2023

아들이 좋아하는 건

하얀색 바나나 우유(사랑)

 아들은 감각이 예민하다. 저 예민한 감각으로 소믈리에를 하면 되나? 미식가 체질이니 요리사를 하면 될까나? 조향사는 어떨까? 혼자 이것저것 온갖 직업을 떠올리지만 꿈일 뿐. 지금 아들은 꼼짝을 않는다. 오직 게임 말고 세상의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먹는 것에 무던한 나는 예민한 아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밥에 김치가 안 들어가면 먹지 않는다. 현미 한 톨, 보리쌀 한 톨이 들어간 밥도 거부한다. 밥 색깔이 조금만 누래도 거슬려한다. 우리 집에선 평생 잡곡밥은 먹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갈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무던하다. 대단한 요리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것들로 매일 아침 메뉴를 돌려 막기 해도 본인 입맛에 맞으면 크게 군소리 없이 먹는 편이다. 감사할 일이다. 이런 점에 치중해야 되는데 후자보다 까다롭게 구는 전자에 내 온 신경이 곤두서는 거 보면 나도 어지간히 예민한 엄마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키우는 대로 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무던한 내가 무던하게 먹이려고 차린 밥상을 그리도 까다롭게 까다로운 시선으로 대하는 걸 보면. 이럴 땐 또 한 번 생각한다. 교육과 환경의 힘이 사람을 과연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 건지?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할 때 가문을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 클 나이의 남자아이를 먹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배고파를 외쳐대는 아들 때문에 뭘 할까 늘 고민에 빠져야 된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김밥, 만둣국, 떡볶이, 비빔밥, 제육덮밥, 김치볶음밥, 닭볶음탕, 각종 고기구이. 이 정도가 끝. 한식 메뉴의 다채로움과 풍요로움은 나와는 거리가 멀고 내 밑천은 한계다. 과자를 사놓고 빵을 사놓고 토스트를 해 주고 중간중간 먹을 게 있어야 된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나나 우유다.

 냉동시킨 노란 바나나를 우유와 함께 갈아준다.

 그 고소함과 시원함은 웬만한 커피숍 메뉴 저리 가라다. 거기다 미숫가루까지 넣으면 한 끼 간식으로 금상첨화다. 단 얼린 바나나라야 된다. 그것도 생바나나를  얼려선 안된다. 단물이  나오는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얼려야 한다. 생바나나로 갈아준 바나나 우유는 먹지 않는다.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오늘도 얼린 바나나로 바나나 우유를 갈아준다. 진짜 바나나 우유는 하얗다.



점심으로 짬뽕을 먹은 아들에게 하얀색 바나나 우유를 갈아준다

'이제 또 슬슬 배고플 때지? 흰색 바나나우유. 엄마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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