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과 살기
남편분은 셋째입니다. 상담소장님 말씀.
부부상담을 10주 정도 다녔다. 요즘은 국가에서 돈을 지원해 주는 곳이 꽤 많다. 우리가 간 곳도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들 문제가 아들 때문이란 생각을 몇 년 동안 해 오던 우리가 드디어 우리 때문에 아들한테 일정 부분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하면서 시작된 상담이었다.
남편도 나도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랐고 남편은 엄한 엄마 밑, 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둘 다 기 펴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도 비슷,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다른 사람과의 논쟁을 피하는 것도 비슷, 그냥 사람들한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했다.
그런 비슷한 둘이 만났는데 유독 남편 앞에서만 자기주장을 열심히 펴는 나는 참 내가 생각해도 못땠다. 기 펼 때가 그리도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게 대해줘야 될 남편한테 바락 바락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을 무슨 큰 승리인양 생각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런 싸움 속에 큰아들은 좋은 걸 배웠을 리가 없다. 문제 부모 밑에 문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을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냥 기 죽이고 내 말 들어주던 남편도 어느 날 반격의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아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만큼 우리 남편님도 그만큼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나에게서 받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이 힘들게 하면 불똥이 남편에게 튀고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어하고. 반복된 전쟁 같은 삶을 벗어나야 했다. 쓸데없는 소모전만 계속될 뿐 아무런 해결책도 없었던 삶에서 벗어나야 했다. 수년 전 부부상담을 받자고 했을 때는 남편이 거부했는데 작년에는 남편도 도저히 이런 삶을 버티기 힘들었는지 수용을 했다.
남편은 상담사님에게 말한다.
"제가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내가 자꾸 저를 큰아들쯤으로 취급하는데요."
상담사님은 3,4번 상담 후 남편에게 말했다.
"000님은요, 큰아들은 커녕 셋째예요. 셋째."
아 정말 통쾌했다. 남편의 얼굴은 벌게지진 않았지만 그 당황하는 눈빛과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웃는 호탕한 웃음 앞에 미안하지만 통쾌했다. 16년 결혼 생활 동안 쌓인 울분이 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난 묵은 체증을 가라앉혔지만 남편은 자신이 셋째 아들이란 사실에 너무 당황해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내가 정말? 내가 진짜?라는 계속된 물음을 던졌다.
역시 브런치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신력은 중요한 요소이다.
부인이 당신은 철이 없어 부르짖을 때는 그렇게도 인정 않더니 상담소장님 말씀 앞에 한 순간 허물어지는 모습은 썰물에 쓸려나가는 모래 위 정성 들여 쓴 글자만큼이나 허무해 보였다.
그래도 남편은 자신이 셋째 아들인 걸 알고 나더니 많이 달라졌다.
밥도 지어주고, 같이 걸어주고, 출장 가서 전화도 않던 사람이 여기 도착했음, 비행기 도착함, 경과도 자주자주 알려준다. 남편과 사이가 좋아지니 아들한테 가는 화도 줄어들었다.
결혼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어떻게 내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편은 사실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건 확실하다.
이제라도 애쓰는 남편을 보며 측은지심이 인다. 다른 사람한테는 관대하면서 유독 남편한테 철없는 응석받이로 할 말 못 할 말 다 풀었던 내 모습도 되돌아본다.
남편도 내 영역에 들이며 남편의 부족한 부분도 보듬고, 넘치는 부분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답임을 너무 뒤늦게 깨달아버린 듯하다.
느리지만 느림 속에 여유가 있는 남편. 자기 계발만 중시하지만 그 또한 가족을 위한 고민임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남편도 나도 좀 더 편안한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오늘도 아들 셋과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아들 셋의 훌륭한 엄마는 아님을 알기에, 조금은 훌륭한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됨을 알기에, 앞으로 주어진 날들 아들 셋 사랑하는 마음 듬뿍 내며 편안한 마음으로 남자 셋과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