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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Dec 06. 2023

지나간 일이, 다가올 작은 일이 일상을 흔들지 않기를

별 것 없는 일상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있고 난방이 잘되는 집이 있고 냉장고엔 먹을거리가 차 있다. 불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는 일상이다.

밋밋하지만 잔잔하고 무심한 일상에 아들이 돌 하나를 던진다.

작은 돌이 던진 에너지에 온 마음이 휩쓸린다. 그깟 돌이 던진 파문이 뭐라고. 이건 엄청난 위력을 가지지 않아라고 외면하면 될 것을, 잠시 후면 끝날 파동이야 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 될 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이 던진 진동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누가 돌을 던졌구나 하고, 쓱 지나가지를 못한다. 파동으로 일어나는 물결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헤아릴 심산이다. 마치 큰 파도를 맞고 있는 것처럼 확대 해석한다.


해일 뒤에 해변가는 온통 쓰레기들로 가득 찬다. 그 쓰레기들을 무심히 기계적으로 치우면 되는데 하나하나 헤집고 있다. 이 쓰레기는 나한테 이런 상처를 줬어. 저 쓰레기는 앞으로 내 일상을 뒤흔들 거야. 요 쓰레기를 처리 못해서 내 삶이 엉망이야. 요건 썩지도 않는 쓰레기네. 평생 나를 따라다니겠어. 나는 뭐 하다 이런 쓰레기를 만들어 낸 거지, 왜 쓰레기들을 청소하기를 미룬 거야 나를 원망한다.


새벽 다섯 시부터 울려대는 알람에 신경을 곤두 세우지만 겨울 이불이 주는 따뜻함과 안온함을 물리치기가 어렵다. 이불 속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다.

이불속 따뜻함이 차가운 마음까지는 데워주지 못함에도 이불만 끌어안고 있다.


마음이 거부한다. 일상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고.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 주면 좋겠다고, 내 앞에 펼쳐질 오늘의 삶을 직시하고 싶지 않다고. 결근을 해야 될 것만 같다. 이 마음으로 아이들과 동료들을 만날 자신이 없다. 점점 이불속으로 웅크려 든다.


안돼, 힘을 내야 돼, 일상을 시작해야 돼. 가라앉는 마음을 붙들어 줄 다른 마음이 아직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무거운 생각 앞에, 참을 수 없는 묵직함 앞에, 참 가벼운 생각이 스친다.

'결근을 하려면 교장님까지 통화해야 되는데, 그분과 통화하기 싫다.'

유치하고 가벼운 생각이 괴로움과 무기력으로 묵직해진 내 마음에 살포시 스친다.

'출근해야 돼. 내 세상에 머물러야 돼.'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떠들지 말고 곧바로 일기를 쓰라고 하지만 아랑곳 않는 간 큰 아이들 몇몇은 노래를 부르고 친구 옆에 가서 재잘거린다. 


"선생님,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혼났어요."

"오늘 아침에 시리얼이랑 우유 먹고 왔어요."

"선생님 내일 엄마 생일이라 언니랑 케이크 사주기로 했어요."

"선생님 일기 쓰고 종이 접어도 돼요?"


이불속 고요함은 삶이 아니다. 정지된 영상이다. 교실 속 아이들의 모습은 움직이는 영화다. 때론 소음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오늘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퇴직을 하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스스로에게 한마디 해 준다.

'일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오늘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듯이 생각의 끈을 놓았다면 너의 내일도 모레도 정지된 영상일 거야. 햇살도 비치지 않겠지? 출근하길 잘했어. 나 밥 먹고 살게 해 주는 너희들에게 고맙다.'


아들이 돌을 던진 것도 1초만 지나도 과거 일이 된다. 지나갈 일이 내 일상을 흔들지 않기를. 또 언제고 던져질 돌이 일으킬 파문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현재에 살고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란 말을 다시 한번 새겨 본다.

한 줄 요약 : 과거가 내 미래에 참고는 될지언정,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다고 현재의 내 일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에 집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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