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제 슬픔이 풀렸어요.

by 초록해

12월 마지막주가 다가오니 하늘도 벌써 2025년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슬펐는지, 살을 에는 듯이 날씨가 추워졌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자연스럽게 놀이터로 향했던 아들의 발걸음도 오늘은 그럴 날씨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주말이고, 다음주가 되면 나도 모르게 2026년을 맞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 들기 전, 끊임없는 연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하는 공연,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교회에서 전야예배를 드렸다. 4살이 된 아들은 2025년에 두 차례나 큰 무대에 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뮤지컬 같은 공연을 보러 갈 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큰 오디오 소리와 암전이 되면 아들은 울곤 했다. 그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아들에게는 이 두 번의 경험이 다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기에 옆에서 조용히 응원을 했다.



11월과 12월은 밤에 잠이 들기 전 매번 공연에서 할 노래와 춤을 연습했다. 사실 실제로 공연을 한 것보다 아들과 함께 침대 옆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이 더 행복했다. 누워만 있던 아들이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더니 이제는 노래과 춤을 외워 부모인 우리 앞에서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눈물이 났다. 사실 공연장에서의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들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 아닐까.




슬픔이 풀리고 나니,

이제 괜찮아졌어요.


어린이집에서 했던 공연은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너무나도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추어 오히려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 하지만 본인의 공연 이후에 본인의 자리에서 계속된 암전과 큰 소리에 놀라 많이 울었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많이 컸지만 "아직 어둠이 무서운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에 교회에서 했던 공연은 더 소리가 크고 암전이 자주 되는 곳에 있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울음파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계속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변명을 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다. 그런 울음과 자리이탈을 반복하다 본인의 차례가 되어 무대 위에 섰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 아들. 두 번째 노래가 시작할 때 즈음, 눈물을 멈추고 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난 뒤 그때의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아들과 이야기했다.


"아들! 이때 어떤 부분이 많이 무서웠어?"

"소리가 크고 갑자기 불이 꺼져서 너무 무서웠어요!"

"중간 이후부터는 춤도 너무 잘 추던데?"

"슬픔이 풀리고 나니, 괜찮아졌어요."


사실 개인에게 있어 슬픔은 각자 주관적이다 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고, 때로는 본인도 왜 이렇게 슬픈지 말로 표현이 안될 때도 많을 거다. 아마 아이가 커가면서 그런 슬픔을 마주할 날이 더 많을 거고, 그때마다 그 슬픔을 지켜보는 부모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타인의 기준에 맞추고, 세상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기를. 그럴 때마다 본인의 감정을 아직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아이에게 타인과 비교하지 않기를.


부모가 처음인 나에게도 그런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터라 그 슬픔을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한 것 같았다.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슬픔이 풀리는 것은 한순간일 거다. 그 한순간이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다음번에 그 슬픔이 다가오더라도 묵묵히 그 실타래가 풀어질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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