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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Jan 18. 2020

왜, 상사 앞에서는 표정관리가 안될까?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한다.

첫 사회생활에서의 나의 일은 영업이었다. 고객사를 만나러 갈 때, 매번 고객은 클레임을 제기했다. 고객사에서 오는 전화받는 것이 너무 고역이었고, 실제로 만날 땐 무리한 부탁을 했다. 하지만 나는 표정관리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영업업무를 얼마 하지 않고, 직무를 영업에서 인사/노무 업무로 변경했다. 바뀌고 나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영업할 때 고객사 담당자가 나의 고객이었다면, 인사/노무 업무에서는 직원들이 나의 고객이니까. 직무에 따라 고객의 모습은 바뀌었지만, 나는 그들이 무리한 부탁을 할 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위의 신문기사는 무려 2007년 신문기사이다.

헤드라인은 보시다시피 직장인 95%의 사람들은 표정관리를 잘해야 회사생활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무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이 내용은 불변의 진리이다. 주 52시간이 도입되고, 남성 육아휴직이 조금 보편화되는 등 노동법이 노동자에게 더 편리한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생활이란 본인 일만 잘해서는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우리 회사는 아닌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 사실 어떤 직종, 직무에서 일하냐에 따라서 2020년의 회사생활은 극과 극일 수 있다.

더 불변의 진리는 "본인이 있는 곳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지만.


"너 왜 이렇게 표정 관리를 못하냐?"

"싫은 티를 그렇게 내면 내가 뭐가 되니?"

"표정관리 안 할래? 진짜?"


고객에게도 힘들지 않던 표정관리가 왜 상사에게는 하기 힘든 것일까?


4년 전 신입사원이던 나는 감정에 충실한 아이였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었다. 그게 솔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고, 그런 기준들이 나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솔직함을 보여주고, 나는 바보처럼 스스로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무표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때론 그런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이 오히려 내가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내에서 친한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회사 다니는 것이 매 순간 지옥 같지는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들과 정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가족 같은 회사는 정말 가족같이 나중에 원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관계를 맺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다가, 나중에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나는 주변 사람들과 너무 정이 들어버렸다.


상대방은 나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상사를 가족처럼 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사는 나에게 여느 때와 같이 회식 중간중간 장난을 쳤다.


"야. 회식자리에 아주 놀러 왔네. 나는 힘들게 술 먹고 있는데, 옆에 빠져있어? (웃으면서) 이럴 거면 이 업무 하지 마. 내가 윗분한테 말해서 팀 옮겨 달라고 할까?"

"옆팀 막내랑 너 바꿔야겠다. 다른 신입사원을 뽑았어야 하는데..."


사실 이 날은 너무 많은 업무로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표정관리와 말투가 나 또한 퉁명스럽게 나왔다. 아차 하는 사이 상사를 가족으로 대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스스로를 자괴하며 반성했다. 난 아직 멀었구나... 아직 난 아마추어구나...


때론 내가 내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에 내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까먹을 때가 다반사다. 가끔은 요새같이 얼굴 인식이 발달되고 있는 시기에, 내 얼굴을 인식해서 0~100까지 표정관리 지수를 자동 알람으로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이 생긴다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8할 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표정관리에 좀 더 능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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