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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Jun 28. 2020

30살이 동물원에 갔다와서 느낀 2가지

토요일 오후가 되고 나른하게 집에 누워있었다. 너무 심심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하냐? 카페나 갈래? 아니면 산책이나 할래?"


그렇게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동물원에 가기로 하고 '대공원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이 대공원이 진짜 대공원이 있는 역인줄 오늘 처음 알았다.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대공원역이 아직도 뭐하는 곳인지 모를뻔 했다. 남녀간의 데이트 장소로 여겨지는 동물원에 30살 넘은 남자 2명이 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뭐 그런거에 전혀 신경쓰지 않기에 그냥 우리의 목적은 오늘 20,000보를 걸어서 살을 빼자는 거였다. 그렇게 우리는 오전 1시~3시(무더운 날씨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피하는 날씨)에 동물원으로 발길을 향했다. 역시나, 성인 남자(믿기는 싫지만 뭐 아저씨) 2명이 온 경우는 우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물원에 입장을 했다. 제로페이로 결재를 하니 꽤나 할인이 많이 되서 그냥 아메리카노 한잔 값이면 동물원 출입이 가능했다. 나중에 와이프랑 산책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와서 그런지, 동물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구성비에 나는 적잖이 놀랬다.

나는 한국이 저출산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내 눈 앞에는 엄청난 인원의 아기, 아이들이 유모차에 누워있거나 미친듯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유모차에 있기도 뛰어다니기도 어중간한 아이들은 아빠의 어깨위나 팔 위에 있었다. 순간적으로 와이프와 출산계획을 가지고 있던 마음을 잠시 저 뒷편에 던져놓았다.


아직 동물 한 마리도 보지 못했는데, 벌써 지치는 기분은 뭘까?

나는 왜 쓸데없는 짐을 이렇게도 많이 가지고 온 걸까. 내가 가져온 짐을 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은 마음이 1분에 한번씩 내 머리속을 지배했다. 들어오는 길에 사물함을 고려하지 못한 30살 두 모지란 머리 덕에 팔, 다리, 어깨가 매우 고생함을 느꼈다. 생각을 하고 살자.


원숭이를 시작으로 팬더, 곰 등 여러 동물들을 어릴 때 이후로 오랜만에 보니 나도 동심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연신 아이들은 "귀여워!", "만져보고 싶어~!" 등 리얼한 리액션을 뿜어내며 동물을 관람하고 있었다. 사실 동물들은 내가 봐도 귀여웠다.


어릴 적 마냥 귀엽게만 보였던 동물원 속 동물이 한 마리 씩 보이지 않았다. 한 무리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무리는 흡사 우리 회사와 똑같아 보였다. 특히 개코원숭이를 볼 때, 그들의 삶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개코원숭이는 서열싸움으로 인해 상처가 난 원숭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잘 치료중이오니 너무 걱정마세요"

개코원숭이는 서열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 과정 중에 한 원숭이는 살점이 아해 뜯겨 나갔다. 걸을 때 마다 피 발자국을 남기고, 상처가 난 부분은 분수처럼 피가 나고 있었다. 이런 개코원숭이 사회를 보면서 누군가 밟고 올라가야 살아남는 우리 회사 조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겉으로 상대방을 때려 피를 흘리게 하지 않지만,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동료, 선배, 후배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으며, 상대방에 지울 수 없는 치욕을 안기기도 한다. 개코원숭이들과 우리가 다를게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한 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동물원에는 아이가 정말 많았다. 아이들에게 동물원은 얼마나 흥미롭고 신기한 공간일까? 매일 동화책으로 보던 동물들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얼마나 짜릿할까? 그런 그들의 마음을 나는 그들의 샤우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너무 많은 아이들의 샤우팅을 듣다보니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갈 뻔했다)


내 눈에는 2가지 유형의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1. 전자에서 말한 것과 같이 1~10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

  2. 장애를 가진 성인 아이


그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서 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애를 가진 성인 아이들이 엄마와 손을 꼭 잡고 동물원을 온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1번과 같이 아이들의 덩치가 작아서 통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2번의 보호자들은 아이의 손을 꼭 잡은채 어깨가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이가 본인도 모르게 돌발행동을 하려고 하면 보호자들은 미리 그런 부분들 캐치해서 아이를 안아주거나,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는 모습을 보았다.


2번의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띄면서 나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동물원에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이벤트는 많은데, 장애를 가진 성인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원수를 볼 때 상대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케이스기에 크게 그런 프로그램을 해야할 유인요소가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10개의 이벤트 중 1~2개 정도 만이라도 2번 케이스를 대상으로 실시한다면 크게 수요공급 이슈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가진 성인 아이들에게도 1번 아이들과 동물원을 대하는 마음은 같지 않을까?

그들에게도 자신의 욕구와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공식적인 프로그램과 이벤트가 있다면 더 풍성하고 의미있는 동물원이 되지 않을까?

 



오랜만의 동물원 나들이는 나에게 어릴적 기억을 상기시켜줌을 물론, 현재 회사를 다니는 나의 직장생활까지 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산책이었다. 가끔씩 과거와 현실을 두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다면, 나는 강력하게 동물원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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