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의 Autonomy 인수 사가의 불행한 결말
(Disclaimer: 저는 어떠한 종류의 스타트업에도 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투자 전문가가 아닙니다.)
2010년대에 크게 유행한 버즈 워드 중 하나는 아마 ‘빅데이터’ 일 것이다. 빅데이터라는 개념은 이미 그전부터 있었지만, 신기술로 포장되어 화려하게 미디어 상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라는 뜻이다.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 시점은 아마도 2008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컴퓨터 커뮤니티인 CCC(Computing Community Consortium)는 2008년 빅데이터를 주요 연구 테마로 채택하였고, 이것이 앞으로 혁신의 돌파구가 될 것임을 예견하는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백서 제목: Big-Data Computing: Creating Revolutionary Breakthroughs in Commerce, Science and Society (2008.12)).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Big Data, Big Impact’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고, 같은 해, 가트너 사는 빅데이터를 volume, velocity, variety의 세 차원(3V)으로 정의되는 정보 자산이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2010년대를 풍미한 ‘빅데이터’는 2020년대 들어와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이제 그 위력은 예전 같지는 않다. 실제로 빅데이터 자체는 개인이 다루기에 혹은 유의미한 수익을 만들기에 어려운 대상이기도 하려니와, 기업 입장에서도 빅데이터 자체로부터 제대로 된 이익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실 3V차원보다는, 다양한 비정형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그로부터 유의미한 데이터를 만드는, 이른바 '데이터 클리닝' 과정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2020년대 들어 기업들은 AI 도구를 이용하여 빅데이터에서 이러한 데이터 클리닝 작업을 하고 있고, 텍스트나 이미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정형-비정형 데이터의 관리나 결합, 그리고 그를 통한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는 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빅데이터 자체에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후처리와 실용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빅데이터의 활용과 처리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선 후, 혹은 트랜스포머 류의 AI가 등장한 이후에나 주목받았던 기술은 아니다. 이미 메인프레임이 기업에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이러한 작업은 본격화되었고, DB 관리의 중요성은 늘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 수행에 있어 중요한 요소였다. 특히 1980년대를 거쳐 PC가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1990년대부터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기업과 소비자 모두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데이터 생성 속도는 매년 급격하게 늘어났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만큼이나, 데이터를 저장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즉, 필요 없는 데이터의 삭제, 중요 데이터의 보안, 데이터 검색 등) 기술은 더욱 중요해졌다. 사실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애초부터 소프트웨어 기술의 본령이기도 하지만, 데이터 관리 기술부터는 소프트웨어가 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데이터 관리 중에서도 사실 쉽게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되거나, 표준화가 용이한 정형 데이터보다는 비정형 데이터가 더 관리에 많은 품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정보 기기의 종류가 다변화되고 저렴해지면서 비정형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즉 비정형 데이터를 기업의 경영 전략에 활용하지 않으면 뒤쳐지게 된 것이다. 이를 인식한 기업들은 다양한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기반의 지문 인식 혹은 홍채 인식 같은 잘 알려진 생체패턴 인식 기술은 물론, 목소리 인식이나 구분, 분류, 걸음걸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 심지어 기상이나 날씨 패턴 같은 다양한 패턴들도 기업은 데이터의 수집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패턴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1990년대 인터넷 시대, 그리고 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본격화된 닷컴버블 시대가 되자 급증하는 시장의 수요에 대해 수많은 패턴 인식 기술 회사, 그리고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런 회사들 중에서도 단순히 패턴 인식에만 치중하지 않고, 그것을 비정형 데이터 처리와 클리닝 소프트웨어로 확장시켜 발전하는 전략을 취한 회사들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기업용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 회사들의 주요 고객은 B2C, B2B 가릴 것 없이, 전통적으로 정보를 생성하고 그것으로 돈을 버는 거대한 기업들, 예를 들어 IBM, HP, MS 같은 기업들이었다. 인터넷 초기 시절, 그러한 방향으로 재미를 보기 시작한 기업 중에 영국의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인 마이크 린치(Michael Lynch, 1965-2024(현재 실종 상태))가 설립한 기업인 Autonomy가 있다. 마이크 린치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990년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주 전공은 패턴 인식을 위한 인공지능, 특히 인공신경망(ANN) 기반의 인공지능 알고리듬이었다. 하지만 그가 전공한 인공신경망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딥러닝 류의 인공신경망과는 조금 달랐다. 당시 그가 사용한 방식은 심층신경망 대신, 이미지 처리 알고리듬에서 흔히 사용하는 행렬 형태의 filter (혹은 kernel)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다만 그가 개발한 방법은 계산 효율은 꽤 좋았는데, 이른바 적응 필터(adaptive filter) 방식을 취하면서 n-by-n 행렬을 처리하기 위한 메모리 공간을 n^2가 아닌, n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1980년대의 열악한 컴퓨터 하드웨어 수준을 생각해 보면 이는 어쩔 수 없는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린치는 케임브리지 대학 박사 학위 취득 후, 대기업으로 가지 않고 스타트업을 차렸다. 그는 겨우 2,000파운드의 자본금으로 Cambridge Neurodynamics라는 기업을 세우고, 주력 분야를 지문 인식 소프트웨어로 정했다. 다만 이미 당시 시장을 꽉 잡고 있던 경쟁사들에 비해 린치의 지문 인식 기술은 딱히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린치는 첫 실패를 교훈 삼아, 단순히 지문 인식 같은 좁은 분야가 아닌, 보다 일반적인, 그리고 비정형 데이터도 처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의 패턴 인식 기술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6년 후인 1996년, 린치는 Autonomy를 세웠고, 이 회사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일종의 검색 엔진부터 시작하여 기본적인 이메일 데이터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여 팔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소프트웨어가 당시에는 딱히 대기업 B2B 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노린 것은 아니었고, 마치 MS office 같은 일종의 suite로 쓰이길 원했던 것 같은데, 소매시장에서 반응은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든 상당히 빠른 시점인 1998년 (설립한 지 불과 2년 후), Autonomy는 영국 EASDAQ 시장에 1.65억 달러 규모로 IPO 되었다.
IPO 후 현금이 두둑해진 Autonomy의 행보는 기술 개발이자 새로운 시장 개척 방향보다는, 불타오르는 당시의 닷컴버블을 발판 삼아 외형을 확장하는 것에 치중되었다. 2003년 9월에는 비디오 파일 관리 소프트웨어 회사인 Virage를 인수하였는데, 이 시점부터 Autonomy는 이른바 기업용 데이터 운영 소프트웨어인 IDOL (intelligent data operating layer) 시장을 노리기 시작했다. IDOL은 잘 알려진 것처럼 기업 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특히 IDOL은 기업의 '빅데이터' 처리에 특화되어 있는데, 기업의 사업 분야가 다양할수록 수집되는 데이터 종류도 그만큼 더 다양해지기 때문에, 대기업 전용 IDOL은 광범위한 정형-비정형 데이터 처리 기능도 탑재되어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음성 녹음 파일을 단순히 검색하거나 압축하는 등의 처리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시각화하거나 합성하거나 분리하는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 IDOL에서 강조되는 기능은 검색 기능이기도 한데, 단순히 개인이 구글링 등으로 웹에서 필요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찾아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IDOL은 자연어처리 기반으로 맥락을 몇 단계 더 찾아내고 분석하고 비교할 수도 있다. 구글 검색은 적절한 우선순위로 검색 사용자에게 웹문서를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IDOL은 특정 기업의 비즈니스에 맞게 기업 내부 데이터 혹은 유료 데이터 베이스에서 추출한 검색 결과를 취합하고 정리할 수 있다.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IDOL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한 회사는 IT 기업뿐만 아니라, 대형 로펌들이었다. 로펌에서는 IDOL을 활용하여 e-Discovery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바꿨는데, 대형 송사에서 검토해야 하는 문서와 데이터가 수백만 종에 달하고, 그러한 문서나 데이터가 때로는 이메일, 때로는 영수증 뒷면에 갈겨쓴 메모를 찍은 이미지 파일, 때로는 고객과의 통화녹음 파일, 때로는 고객의 행동 패턴에 이르기까지 불규칙하다는 특징을 감안한다면 로펌이 왜 다른 업종보다 우선적으로 IDOL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납득이 된다.
어쨌든 기업용 IDOL 시장에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던 Autonomy는 이 방식이 급성장하던 IT 산업계와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빅데이터 처리 전문 기업으로서의 외형 불리기에 집중한다. 2004년에는 NativeMinds와 Cardiff software를, 2005년에는 검색엔진 개발사였던 Verity, 그리고 비정형 데이터 처리 전문 회사였던 NCorp, etalk 등을, 2007년에는 Zantaz 자산 인수와 데이터 처리 전문 기업 Meridio를, 2009년에는 기업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 회사인 Interwoven을, 그리고 2010년에는 정보 관리 구조 설계 전문 기업인 CA Technologies 등을 연이어 인수하면서 광폭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Autonomy가 다루는 IDOL의 범위도 넓어졌고, Autonomy의 고객은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확장되었다. 그중에는 HP도 포함되어 있었다.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 전통적인 PC 시장은 그에 반비례하여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큰 위기를 느낀 IT 기업 중 하나가 HP였다. 당시 HP 이사진은 전통적인 컴퓨터 하드웨어에 치중된 HP의 비즈니스 전략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그 방향은 다름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의 변신이었다. 2010년 10월, 독일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이자 산업용 소프트웨어, 그리고 기업용 ERP 등의 전문 기업이었던 SAP의 CEO를 역임했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57세의 Leo Apotheker가 신임 CEO로 선임되었다. Apotheker에게 맡겨진 미션은 단순했다. 당시 HP의 악성 컴퓨터 하드웨어 자산을 최대한 처분하고, 실탄을 확보하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게 유망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매물을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인수하라는 것. Apotheker는 취임하자마자 인수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전임 HP CEO인 Mark Hurd가 성추문 사건으로 불미스럽게 물러난 공석에 앉은 Apotheker는 내외 여러 채널을 통해 HP와 이사진이 그에게 준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HP는 사실 이전에 행한 M&A, 예를 들어 Compaq이나 Palm의 인수에서 별로 재미를 못 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Apotheker에게 반도체 회사나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 인수는 애초부터 선택 옵션이 아니었고, B2C 소프트웨어 시장 역시 MS 등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옵션에서 제외되었다. 남은 것은 결국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
SAP CEO 출신이던 Apotheker는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Comverse Tech 같은 통신 소프트웨어 기업부터, Tibco Software나 Amdocs 같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등에 대한 인수 타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HP 이사진은 이러한 인수 대상들에 대해 회계 장부의 불투명성이나 인수가의 부적절성 등을 이유로 관심을 적극 보이지 않았다. 여러 회사들 리스트를 들고 갔지만 딱히 좋은 반응을 못 얻었던 Apotheker는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마침 그 시점에 눈에 들어온 회사가 바로 Autonomy였다. Autonomy는 2000년대의 광폭 인수 행보를 2011년에도 이어갔는데, 온라인 데이터 백업 전문 기업인 Iron Mountain Digital 사를 무려 3.8억 달러에 2011년 5월 인수한 것이다. 이 소식은 Apotheker 곧바로 귀에도 들어갔고, Apotheker는 불과 며칠 후인 2011년 5월, Autonomy CEO인 Lynch와의 미팅을 요청했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2010년대 초반, 빅데이터가 기업의 혁신에서 가지게 될 밝은 미래는 엄청나게 부풀려져 포장되고 있었고, 빅데이터를 누가 지배하느냐가 IT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인 양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을 때, 기업용 빅데이터 전문 처리 IDOL 라인업을 고루 갖춘 Autonomy는 HP 입장에서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 대상으로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Apotheker는 이 기업을 반드시 인수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Autonomy 인수 딜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이 딜이 성사되지 않으면 옷을 벗겠다는 각오로, 사실은 절망과 간절함에 밀려서 HP 이사진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신임 CEO의 인수 딜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HP 이사진들은 신중했다. HP는 자신들의 투자자문 은행인 영국의 Barclays는 물론, Perella Weinberg Partners, KPMG, Deloitte 같은 호화 회계법인, 투자은행, 대형 로펌, 투자 자문사 등으로 구성된 due diligence 팀을 꾸려 Autonomy의 내부를 샅샅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 HP의 CFO이자, 전임 임시 CEO였던 Cathie Lesjak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HP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여했거나 전문성이 있는 경영팀, 엔지니어, 심지어 인사팀 직원들로 이루어진 수백 명 단위의 due diligence 팀을 구성하여 따로 기업 실사를 한 달여간 집중적으로 벌였다. 사실 비공식적 소식통에 따르면 CFO Lesjak은 더 긴 시간의 DD가 필요하다고 요구하였으나, CEO가 빨리 이 deal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시를 이길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DD은 전투적으로 빠르게 벌어졌다. 사실 HP는 이미 그 당시에도 인텔 버금가는 거대한 관료 조직에 가까운 보수적인 집단이었고, 외부 기업, 그것도 자신들이 원래 하던 컴퓨터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에 대한 인수 딜에 대해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던 집단이었지만, 시대의 상황, 그리고 타이밍은 HP에게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본적인 DD가 끝난 2011년 7월 초, HP 이사진은 인수 딜을 마무리하기 전 이틀에 걸친 최종 리뷰 회의를 했다. 이 회의에서는 인수를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얼마에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인수를 할 것인지만 결정하는 것이 주요 안건이었다. 즉, 2011년 7월 초에는 이미 HP의 Autonomy 인수 방향은 확정된 상황이었던 것이다. Apotheker는 이 인수 딜에 자신이 있었지만, 조금 더 힘이 필요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HP의 회장이자 전직 Oracle CEO이기도 했던 업계의 거물 Ray Lane은 이 인수 딜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Apotheker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이틀 동안의 회의에서 최대한 HP에 유리한 인수 조건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Apotheker 가 보기에 적절한 인수 조건이 갖춰지자 그는 Lynch를 만나 인수 최종 국면에 돌입했다. 그렇지만 당시 CFO였던 Cathie Lesjak은 여전히 이 인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인수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Autonomy가 내건 인수가가 너무 비싸다고 판단했던 것. 또한 Lesjak은 이러한 인수가가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왜냐하면 Autonomy의 수익 구조와 현금 흐름을 비추어볼 때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수 협상 파트너이자 당시 Autonomy의 CFO였던 Sushovan Hussain은 이러한 의심을 주식쟁이들의 악의적인 소문일 뿐이라고 일축했고, 영국의 여러 투자은행과 로펌이 보증한 회계장부와 데이터를 다 보여주면서 Autonomy의 현금 흐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변했다. 그렇지만 이미 2009년 당시, 미국의 유명한 숏셀러 Jim Chanos는 Autonomy의 수익 구조와 현금 흐름이 논리적으로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했으며, 특히 Autonomy의 IDOL 라이선스가 당시 기록한 최근 몇 년 간의 급격한 두 자릿수 규모의 매출 성장률 역시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특히 매출 대부분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매출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보았을 때, 그 당시의 시장 성장률이 애초에 두 자릿수는커녕 1%가 될까 말까 한 수준이었는데, 업계의 마이너 위치였던 Autonomy의 라이선스 매출 성장률이 압도적으로 시장 평균보다 높은 것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숏 포지션을 고수했다. 이러한 시장의 경고와 CFO의 거듭된 우려에도 불구하고, CEO Apotheker는 이 인수 딜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특히 CFO Lesjak은 애초에 HP가 이러한 고가의 인수 딜을 감내할 현금이 충분치 않음과, HP와 Autonomy의 병합은 두 기업 간의 문화 차이로 인해 매우 어려울 것임도 지적했지만 HP의 CEO와 이사진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2011년 8월에 비공식적으로 한 번 더 DD 한 과정에서도 Autonomy의 회계 장부를 둘러싼 소문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질적인 두 기업 간의 결합은 애초에 HP의 혁신을 위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사진 대다수의 의견 방향을 뒤집기는 어려웠다. 결국 2011년 8월 18일, HP와 Autonomy는 주당 무려 42.11달러라는 조건으로 인수 기본 조건에 합의했다. 이는 단순한 계산으로도 대략 80억 달러를 남는 규모였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충격과 공포였고, 많은 전문가들은 너무나 과한 인수 가격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실제로 인수 소식이 발표된 직후, HP의 주가는 무려 20%나 급락했다. 이 인수가 과한 조건인 데다가, 이 인수를 위해 HP가 자산을 처분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할 정도로 무리한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가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HP 역시 이 정도 딜을 완성시킬 현금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런 HP 사정을 고려하여, Apotheker는 스스로도 과할 정도로 높은 가격으로 매겨졌다고 인정한 Autonomy 인수 딜을 하루빨리 마무리하기 위해 HP의 컴퓨터 혹은 주변 기기 사업부까지 처분할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처분이 어려우면 아예 컴퓨터 사업부 인력 구조조정을 수만 명 단위까지 추진할 계획을 내비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당시 HP 내부에서는 수많은 직원들이 해고의 공포에 떨기도 했다. 하지만 Apotheker의 시도는 대부분 좌절되었고, 이미 내부에서 이상 기류가 생기고 있음을 눈치챈 HP 이사진은 주주들을 달래고 시장에 확신을 주기 위해 2011년 9월 Apotheker를 CEO 자리에서 해고했다. Autonomy 인수 딜이 다 완료되기도 전에 말이다. 하지만 Apotheker의 해임과는 상관없이, 신임 CEO이자 전직 eBay CEO였던 Meg Whitman이 자리에 오른 후, 이 인수 딜은 이사진 11명 중 10명의 찬성을 통해 최종 완료되었다. 반대했던 인물은 당시 CFO였던 Cathie Lesjak이었다. 결국 2011년 10월, HP는 Autonomy의 지분 87.34%를 무려 117억 달러에 최종 인수하는 대형 딜을 완료했다.
그런데 시장의 우려보다 더 큰 폭탄이 HP를 기다리고 있었다. HP는 Autonomy 인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기업용 소프트웨어, 특히 빅데이터에 특화된 전문 IDOL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나려 했지만, 인수 후 확인된 Autonomy의 수익 구조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인수 후에도 Autonomy 직원들과 전임 CEO Lynch는 HP에 별로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회의를 진행하고 업무 계획을 공유하는가 하면, HP가 요구한 실적 보고서 등도 여러 버전으로 나눠서 제출하기도 했다. HP 회계 담당자가 요구한 내부 자료에 대해 Lynch는 공유를 거부했으며, CEO의 거듭된 미팅 요청도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기 일쑤였다. 인수 후 HP의 Autonomy 회계 담당자는 그간의 Autonomy 회계 장부에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었고, 2012년 5월, HP는 다시 PWC에게 정식으로 회계감사를 의뢰했다. PWC가 회계감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Lynch는 기다렸다는 듯, HP에 사표를 내고 HP를 떠났다. 회계감사 소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고, HP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었으며, 결국 신임 CEO Whitman은 무려 2만 7천 명에 달하는 HP 직원을 해고하는 초강력 수단을 시행했다.
Autonomy 인수 완료 1년이 지난 2012년 11월, HP는 비참한 소식을 발표했다. 인수 후, HP는 Autonomy 사업으로 인해 무려 88억 달러의 손실(감가상각)을 입었으며, 그중 50억 달러 이상이 회계 부정, 즉, 이중장부 같은 심각한 비리와 부패 혹은 사기 행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며 발표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지표들이 사실 인수 과정에서 있었던 DD에서 일부 발견되기도 했으려니와, CFO Lesjak이 표한 우려의 근거 속에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Autonomy는 2000년대 시행한 수많은 기업들의 인수 합병 과정에서, 각 기업들을 자사의 사업부로 융합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자전거래를 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A라는 회사를 인수 후, 그 회사가 제조하던 저사양의 하드웨어를 지나치게 손해를 감내하면서 원가 이하의 저가로 판매하게 한 후, 이를 Autonomy의 IDOL 판매 실적으로 둔갑시켜 장부에 기록했다 (IDOL 매출의 15%에 해당). 이는 하드웨어 매출을 소프트웨어 매출로 왜곡한 비리이기도 하거니와, 인수한 회사의 매출 구조를 왜곡시켜 인수한 회사의 수익으로 둔갑시키는 다중 회계부정이기도 했다. 이는 Autonomy가 왜 기업용 IDOL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경쟁사와는 확연히 구분될 정도의 두 자릿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는지를 설명하는 자료이기도 했다.
결국 2012년 12월, HP는 미국 법무부, 영국 증권거래소, 영국 금융 당국에 Autonomy를 회계부정 및 고의적 사기 건으로 형사 고소하였다. 고소와는 별개로, 밑천이 드러난 Autonomy의 IDOL 소프트웨어 사업부는 결국 사업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아, 2014년 2월 HP는 IDOL 사업을 두 파트로 분리하여 따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1월, 영국 사법 당국은 Autonomy가 고의적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HP는 형사 소송과 별개로 Lynch에 대한 민사 소송 (즉, 손해배상청구)을 영국 법원에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HP가 요구한 청구액은 무려 51억 달러로서, 2012년에 기록한 88억 달러의 손실 중, 회계부정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 차지하는 규모와 정확히 일치하는 액수였다.
그러나 소송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2015년 11월, 재무 악화에 몰린 HP는 두 회사, 즉, HP Enterprise(HPE)와 HP Inc.(HPI)로 쪼개졌다. 이 과정에서 Autonomy의 자산은 대부분 HPE로 귀속되었다. 그래서 그 시점부터의 소송 주체는 HPE가 되었다. HPE는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Autonomy가 가지고 있던 자산을 하나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에는 Interwoven 자산을 처분한 것, 2017년 9월에는 나머지 자산을 처분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루한 소송 전은 지속되었고, 2016년 11월, 영국 연방 대배심은 전 Autonomy CFO인 Sushovan Hussain에게 사기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으며, 마침내 2018년 4월, 연방 대배심은 Hussain의 유죄를 판단하였다. Hussain은 곧바로 항소했지만, 결국 Hussain은 2020년 8월 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Autonomy의 전 CEO Lynch에 대해서도 연방 대배심은 심리를 재개하였다. 2018년 11월 연방 대법원은 Lynch에게 사기 의도가 있다는 증거를 인정하였고, 2019년 11월에는 최대 25년형에 처할 수 있는 혐의도 추가하였다. 2019년 12월, 미국 정부는 영국에게 Lynch 신병 인도를 요청하였다. 2020년 9월, 영국 금융위원회는 2011년 당시 HP의 Autonomy 인수딜에 관여했던 Deloitte사에 1,500만 파운드의 벌금을 물렸으며, 주된 근거는 Autonomy가 기업 실적을 부풀리게 위해 사용했던 회계부정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2022년 1월, 영국 고등법원은 HP의 Lynch에 대한 민사 소송에서 Lynch의 사기 의도를 인정했고 (후에 2024년 2월, 손해배상 청구 규모는 40억 달러로 확정), 또한 Lynch의 미국으로의 신병 인도도 확정 지었다. 2023년 5월, Lynch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정에 서게 되었고, 일단 1억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Lynch는 풀려났다. 2024년 3월, 미국 법정에서 재개된 Lynch에 대한 기업 사기 혐의에 대한 형사 소송이 시작되었고, 미국 연방검찰은 Lynch에 대해 25년형을 구형하였다. 그러나 2024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Lynch의 혐의 대부분 (16개 중 15개)에 대해 무죄임을 판단하였고, 결국 10년을 끌어 온 소송 전은 민사 소송에서의 배상액 지불 정도로 끝나는, 그러니까 Lynch 입장에서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다.
지루한 송사를 어쨌든 승리로 마친 전직 Autonomy CEO Lynch와 Autonomy의 재무 담당 부사장이었던 Stephene Chamberlain은 각각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Lynch는 이탈리아 시실리 인근 바다에서 자신의 슈퍼 요트에서 파티를 벌이다가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우에 휘말려서, 그리고 Chamberlain은 영국에서 조깅 중에 교통사고로 실종되거나 사망한 것. 공교롭게도 둘의 사망 혹은 실종은 이틀 간격으로 일어났다. Chamberlain은 지난 8월 17일에, 그리고 Lynch는 지난 8월 19일에 각각 사고를 당한 것이다. Chamberlain은 사고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고, 풍랑에 휩싸여 실종된 Lynch는 결국 8/22일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이 둘의 연이은 사망 사건은 공교롭게도 둘의 승소 이후 발생한 일이고, 이틀 간격으로 벌어진 일이기도 해서 일각에서는 음모론, 즉, 누군가의 사주로 벌어진 일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러한 추측은 실제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Lynch의 Autonomy 케이스는 그야말로 사필귀정이라는 고사성어가 적용될법한 케이스로 생각될 수도 있다. 한 때 촉망받던 인공지능 컴퓨터 과학자이자 재능 있는 사업가였던 사람이 어떻게 욕심을 자제하지 못해 결국 큰 기업 사기 행각을 주도하는 수순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 속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HP 같은 거대 기업이라고 해도 결국 기업 인수나 투자 과정에서 본사의 운명이 흔들릴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기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HP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인수 합병 과정이나 스타트업들의 IPO 혹은 투자 모집 과정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다. 다만 HP의 경우에는 그룹 전체의 비즈니스 방향을 바꿔야 하는 시점에서, 주변 여건은 녹록지 않고 시간은 별로 없다는 불리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전략적 판단을 급하게 추진했다는, 그래서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과오도 있다. 1년 정도가 아니라, 3-4년에 걸쳐서 Autonomy 인수 건을 충분히 검토했다면 이러한 사기성 회계부정은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Deloitte나 KPMG, 바클레이 같은 대형 회계법인이나 투자은행에서 내놓으라 하는 기업 금융 및 회계 전문가들도 이러한 회계부정을 잡아내지 못한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하드웨어 매출을 소프트웨어 매출로 둔갑시키는 등의 행위는 그 분야를 조금만 안다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었을만한 부분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서류상으로만 기업의 체질과 비즈니스 영역을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실수하기 좋은 작업인지 잘 보여준다. 그 분야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하드웨어 제품의 이름만으로는 이것이 하드웨어 제품인지 소프트웨어 제품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소프트웨어라도 이것이 게임용인지 기업용인지 DB용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DB 용이라도 이것이 IDOL 패키지인지, ERP인지, 단순한 서칭엔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즉, 최종적인 판단은 최대한 깊고 상세한 레벨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품의 매출 연결 구조가 어떤 것과 연계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 제품의 고객이 전혀 그러한 사업을 할 것 같지 않은 고객이라면 당연히 의심해야 하고, 그러한 사업을 하는 고객이라고 해도 그 고객의 판매 제품에 그 제품이 기여할만한 부분이 별로 없어 보인다면 당연히 의심해야 한다.
사실 HP 같은 대기업이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이나 내부의 전문가를 수백 명 동원하거나 하면서 꼼꼼하게 DD를 한다고 해도, 위에서 보듯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빠져나가는 틈은 생긴다. 마음먹고 정교하게 장부를 조작하고, 숫자를 고치면서, 앞뒤를 맞추면 쉽게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도 감사하는 입장이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라면, 혹은 충분히 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주변에서 위험 신호를 계속 이야기하고 내부의 끊임없는 반대에 직면해도, 여유가 별로 없는 CEO가 전권을 발휘하여 추진하는 딜이라면 더더욱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IT 기업에게는 회계장부의 내역과 숫자에 대한 DD도 중요하지만, 기술에 대한 DD가 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말 빅데이터에서 Autonomy의 IDOL이 핵심적인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면, Autonomy IDOL의 주요 구성 요소를 먼저 살펴보고 그것의 사용자 경험을 내부에서 충분히 축적해 놓았어야 했다. 실제로 HP는 Autonomy 인수 전, Autonomy 제품의 주요 고객이기도 했기 때문에, 내부에 축적된 데이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에서 그 데이터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이미 거래가 수년간 지속된 기업들 간의 관계에서도 이렇게 기술적 내용을 눈앞에 뻔히 두고도 판단이 어려운데, 하물며 업력이 거의 없거나 상장 전, 심지어 Series A, B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하고 DD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기술 상장을 노리는 스타트업들의 기술 아이템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조금 과장되어 알려지는 경우가 꽤 있다. 물론 그것이 사기라는 뜻은 아니나, 기존의 기술과 차별점이 딱히 뚜렷하지 않거나, 유리한 면만 체리피킹하는 경우가 대다수고, 이는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사실상 기술 사기나 크게 다를 바 없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수많은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칩의 FLOPS 숫자만 놓고 레퍼런스 제품과 비교하면서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강조하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의 파라미터들을 모두 공개하며 포괄적으로 비교하지는 않는다.
내게도 가끔 여러 채널에서 어떤 기업들 혹은 창업자들에 대한 DD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시된 기술의 진위 여부, 혹은 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여부, 스케일업 가능성 등의 평가나 판단을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평가는 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중 90% 이상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꽤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반도체 영역보다는 에너지 관련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업체들이 상당히 그런 축에 속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뻔히 알려진 기술을 포장지만 바꿔서 새것인 양 이야기하는 것들, 열역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효율로 무장한 것들, 실험 데이터는 하나도 없고 시뮬레이션 데이터만 잔뜩 있는 그러나 그 시뮬레이션의 전제 조건이 실현되기 어려운 경우들, 전혀 다른 층위의 기술을 겉으로만 연결시켜 놓은 것들 등, 정말 다양하게 창의적으로 자신의 아이템이 새로운 혁신이라고 주장하는 기술들, 그것을 앞세워 큰 규모의 투자를 받겠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는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많은 줄은 잘 몰랐다. 그렇지만 DD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에, 이미 그 기술의 맥락과 실현 가능성 단계에서부터 의문문이 떠오른다면 사실 그 아이템은 이미 부정적 스위치가 눌린 상태에서 세상에 나오게 되는 셈이다.
미국에서 VC 활동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러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10개 중 1개, 100개 중 1개, 심지어 1000개 중 한 개라도 건지면 결국 그것이 남는 장사가 된다고들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resilience가 있는 VC 혹은 기관이라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혹은 HP처럼 회사의 명운을 걸고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 아니면 도가 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DD를 쉽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무적, 기술적 측면 모두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공통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각도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위험 신호를 마냥 무시하지 말고 편견 없이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한 다는 것, 그리고 내부의 지속적인 반대 의견이 있다면 그것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일 것이다.
나는 사업을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 혹여나 사업으로 대성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모든 기업은 스타트업 시절, 과거에는 벤처기업이라고 불렸던 시절을 통과해야 하므로, 말이 좋아 벤처지, 결국 가시밭과 지뢰밭을 건너가야 할 수밖에 없음은 잘 알고 있다. 나 스스로가 앞으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혹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기업의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 전문성이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는 도움을 나눌 의향은 언제든 있다. 공대 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과학자로서, 산업의 맥락을 팔로업하는 사람으로서, 국가 과학기술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일종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