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세계에서 배추밭에 배추와 애벌레는 어떤 관계일까요?
안개가 깊게 내린 아침입니다. 어제는 텃밭에서 땅콩을 캤고 배추밭에서 벌레들을 잡느라 아침시간을 보냈습니다. 손에 소꿉놀이 밥그릇을 들고 배추밭 옆에서 따라다니는 세살 리헌이는 배추 애벌레들을 그릇들에 모으느라 무척이나 집중합니다. "벌레, 벌레, 나, 나~~" 벌레를 잡아 자기에게 달라는 아이입니다. 그릇에 담아 키울 기세로 아이들은 진지합니다. 배추나비애벌레도 있고 달팽이도 있습니다. 아침마다 일을 도와주시는 할아버지들이 그릇에 잔뜩 잡아 오셔서는 "내가 잡았다."하시며 뿌듯해 합니다. 어느새 할아버지들도 아이들이 벌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걸 아시고는 바로 잡아 버리지 않고 모아주셨어요. 할아버지들도 아이들 세상에 오시면 아이들 시선에 살게 되시나봐요.
배추를 키우는 것은 살생과 생명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배추를 키우는 것, 배추를 좋아하는 벌레들이 모여들고 우리는 배추를 지켜내기 위해 모여든 벌레들을 잡아야 하는 특명이 있거든요. 우리의 도구는 오로지 우리의 손이랍니다.배추애벌레를 손으로 만질 용기와 함께 말입니다. 만일 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김장에 쓸 배추는 단 한포기도 남아있지 않으니 잡는 걸 선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레 그 자체가 생명이라 마음은 늘 무거워요. 이걸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농약대신 벌레를 잡아주는 걸 선택하고 그 벌레를 살생하거나 이웃집 닭에게 가져다 주는 것으로 그저 위안을 삼습니다. 왜냐하면 농약처럼 모든 걸 전부 죽이는 길은 아이니까요. 우리도 살고 벌레들도 전멸을 시키는건 아니니까요.
지금까지는 어른인 나의 세계였다면 어린이들의 세계에서 배추밭에 배추와 애벌레는 어떤 관계일까요? 이세계에서는 배추는 배추, 벌레는 벌레가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애벌레들을 만나기 위해 배추를 키우는 것처럼 그 위치가 바뀌었다 말해도 과언을 아닐것입니다. 초록초록 배추를 보는 재미보다 배춧잎 사이에 살며 열심히 잎을 갉아 먹고 걸쭉한 똥을 싸놓은 초록 애벌레를 찾는게 너무나도 재밌는 아이들입니다. 숨은 그림찾기보다, 보물 찾기보다 더 흥미롭고 재밌는 현실의 세계니까요. 누군가는 애벌레를 집으로 가져가 키우기도 하고 지난해는 여기서 잡은 벌레를 키워 고치를 만드는 것까지 본 영광의 시간도 맞이했답니다. 삶은 이렇듯 저마다의 시선과 세계로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지식을 알아버린 어른들은 머릿속으로 수없이 많은 관계망속 역할과 책임을 생각하느라 뭐하나 가볍게 만나지 못합니다. 이와 다르게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상상한 걸 그저 현실의 세계에서 실현해보는 용기와 모험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벌래가 되어보기도 하고 이들과 뭔가를 다 해보는 시간 말입니다.
이번 가을에도 아이들은 손바닥에, 그릇에, 배춧잎에 벌레들을 잡아 들고 다닙니다. 서로 누가 더 많이 찾았는지 경쟁도 하고 벌레들와 대화를 시도하는 아이부터 스스로 벌레가 되어 종일 기어다니는 아이도 있습니다. 9월과 10월은 벌레처럼 보낼 듯 합니다. 그러다 11월 김장을 할 때가 되면 마치 늘 그랬다는 듯 멋진 농부의 모습으로 변실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세상은 그 순간, 자신이 만난 존재들과의 관계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 몰입하고 집중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