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들의 아픈 상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힘든 일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아이들이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밤이면 열이 펄펄 끓어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아들은 돌 때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혈관을 못 찾아 머리를 빡빡 밀고 여러 번 바늘을 찔러 혹 풍선이 생겼다.
아이가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아 눈물을 쏟아낼 때
위로가 된 것은 아프고 나면 훌쩍 큰다는 친정 엄마의 위로였다.
정말 아이들이 아프고 나면 안 하던 예쁜 짓을 더하고
못 걷던 아이가 걸어 다니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았었다.
한 번은 둘째 아이가 급성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학교에 병가를 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아프면 엄마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하다.
둘째 아이가 퇴원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다급하여 아이를 업고 미친 사람처럼 뛰어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배를 누를 때마다 ”아! 아! “를 연발하여
수술을 해야 하는 큰 병인 줄 알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한참 동안 배를 눌러보던 선생님이 조그만 소리로 “꾀병입니다”라는 것이다.
“네? 그런데 어떻게 열이 나고 배가 아플 수 있죠?”
선생님은 그래서 병은 병이라고 하시며 활짝 웃어 보이셨다.
원기소(소화제)를 갈아 약봉지까지 받아 들어 아이의 꾀병이 민망하지 않게 신경 써 주셨다.
엄마가 곁에 꼭 있어주라는 말씀까지 덧붙여서....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을 향할 때 항상 마음이 아팠는데
아이도 그렇게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니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하루는 딸이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 오늘부터 학교 가지 말면 돼 (딸의 언어 그대로)”
“그게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여러분 오늘부터 방학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돼”
나는 딸아이의 말에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엄마의 출근길을 눈물을 쏟게 만들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하루는 예고 없이 비가 쏟아져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앞에 서있는 모습을 내다보며
비를 다 맞고 집에 왔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날 밤 걱정되어 물어봤다 “오늘 갑자기 비가 막 쏟아져서 어떻게 집에 왔어? ”
“응 엄마들이 우산 갖고 다 서있었는데 나는 엄마 없다고 했더니 어떤 아줌마가 자기 우산을 줬어
그래서 집에 와서 우산 챙겨서 오빠는 내가 학교에 우산 갖다 줬어”
세상에.... 나는 딸의 천역 덕스런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남의 우산을 빌려 쓰고 온 것은 그렇다 치고
집에 와서 오빠 우산을 챙겨서 학교에 가져다 줄 생각을 했다는 것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엄마가 항상 함께 있어주지 못해 아프고 미안했는데
어느새 아이들의 마음의 근육이 자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엄마 없이 사는 아픔만큼 훌쩍 자란 아이들이 너무 감사했다.
지금도 매일 일기예보를 챙기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두 아이들!
아이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스스로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