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허무함
소년이 우리 마을에 살게 된 건 그의 어머니가 시집을 오게 되면서부터였다. 도회지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던 소년은 세간에서 말하는 '사생아'였다. 그의 어머니는 유부남에게 속아 임신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다가 상처한 홀아비에게 시집온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개가도 재혼도 아닌 아들 하나 딸린 미혼모였다. 지금이야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고 누구나 인식하기에 어엿한 가정에서 출생하든, 미혼모가 낳은 아이든 소중한 생명이지만 당시 사회에서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얼굴이 갸름하고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미인인 아주머니는 낯선 동네에 재취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아들 둘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왔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마을에는 미인이 시집왔다고 소문이 돌았는지라 그 여인이 궁금해진 나는 아버지의 담배 심부름을 자진해서 하러 갔다. 아침 일찍 찾아간 집에서는 홈드레스를 입은 영화배우 뺨 칠 정도의 아리따운 아주머니가 고운 얼굴만큼이나 상냥한 말씨로 나를 맞았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달걀형의 갸름한 얼굴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나무랄 데 없이 미인이었다.
아직 어린이에 불과한 내 눈에도 그 여인이 홀아비에게 시집온 것이 억울하게 여길 정도로 외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나 미모가 남달랐다. 훗날 들은 얘기로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먹고살기 위해 화장품 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렸으며 알뜰하게 돈을 모아 시집오면서 땅마지기와 소를 여러 마리 살 수 있을 정도의 목돈까지 지참금으로 들고 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홀아비는 소위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재혼을 잘했다.
홀아비는 전처가 폐결핵을 앓고 있었을 때 패악을 부리기도 했는데 담배포 유리창 너머로 비친 다툼에 어린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픈 아내에게 삿대질에 고함을 지르더니 갈쿠리로 폭력까지 행사한 것이다. 병색이 짙은 그의 아내는 창백한 낯빛으로 남편의 패악질을 당하고만 있었는데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숨 가쁘게 아버지에게 알려 아주머니를 구해야 한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아픈 마누라에게 그게 할 짓인가?"라고 혀만 끌끌 찰뿐 내 기대처럼 아주머니를 구하러 나서지는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구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어떤 말씀도 없이 담뱃대만 빨아댈 뿐이었다.
폭력적인 장면을 목격해서인지 홀아비에게 시집온 그 여인은 처음부터 내게 안쓰러운 대상이었다. 얼굴만 고운 게 아니라 성품도 순하고 말수도 적었다. 재혼이지만 신혼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아저씨도 아주머니에게 원래의 성미를 감추고 잘했을 것이나, 오래가지 않아 본색이 드러났다. 전처가 병으로 세상을 뜨고 빚만 남은 집에 아주머니가 가져온 종잣돈으로 소를 사고 땅을 산 그 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산이 불어나 동네에서 제법 사는 집이 되었다. 그 공이 순전히 아주머니 덕분이었는데도 아저씨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며 데리고 온 의붓아들을 몹시 구박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아저씨는 의붓아들뿐 아니라 친 아들에게도 말을 듣지 않으면 한겨울에도 속옷바람으로 쫓아내고 매질을 할 만큼 독했고, 성미가 워낙 괄괄해서 동네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인의 주선으로 시집올 때만 해도 두 모자에게 따뜻한 울타리가 되리라 기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시집온 것을 후회한다는 말이 돌았다. 농촌에 시집오니 농사일에 시달리느라 그 곱던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빛이 바랬다. 또한 괄괄한 남편의 성미를 받아내고 데리고 온 아들이 구박에 폭력까지 당하니 속앓이를 해 두 모자가 기를 펴지 못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데리고 온 아들은 눈이 크고 매우 잘생기고 영특했는데 포악스러운 의붓아버지 밑에서도 공부도 잘하고 예의가 발랐으며 행동이 의젓했다. 도회지에서 자랐으면 엘리트로 자랄 수 있었을 텐데 산간마을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말쑥한 외모에 마을 사람들은 안 됐다고 입을 모았다. 아주머니의 종잣돈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재산이 모두 아저씨 소유였기에 아주머니는 구박당하는 아들을 데리고 떠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가지고 온 돈만 단속을 잘해도 두 모자가 평화롭게 살며 아들 뒷바라지도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거친 농사일에 시달리며 정작 자기 속으로 낳은 아들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아주머니는 급속도로 늙어갔다.
몇 년 안 있어 딸 하나를 낳았고 낳은 자식이 있는지라 그 골짜기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마을 아낙들은 안 됐다고 가끔 혀를 찰뿐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년은 학교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아무리 내 자식이 아니어도 설마 공부는 시켜주겠지 하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의붓아버지의 학대와 매질 속에서도 소년은 반듯하게 자라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해주지 않아 등록하지 못했다는 말이 돌았다. 공부가 하고 싶은 소년은 정치인을 찾아가 입학금을 부탁했다고도 하는데 그마저도 거절당하자 한동안 집에는 오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 위해 갖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데리고 온 아들에게 돈 한 푼 보태주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속이 곪을 대로 곪았던지 마흔 언저리쯤에 머리카락이 백발이 될 정도로 세었다. 가지고 온 목돈으로 집안을 부자로 만들어줬는데도 정작 자기 속으로 낳은 아들에게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과 소식 없는 아들 걱정에 아주머니는 눈물로 하루를 보낸다는 말만 들릴 뿐이었다. 가끔 고향에 방문할 때면 길 가에 있는 그 집의 아주머니가 시골 노인이 다 된 듯 초라한 행색으로 들일을 하는 모습만 비출 뿐이었다.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소년이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해 자리매김하길 은근히 기대했다. 인물도 좋고 똑똑하니 어떤 어려운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고 입을 모았는데 안타깝게도 청년이 된 소년은 20대 초반에 공부와 일을 병행하다가 과로로 세상을 등지게 되었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에 청년을 아는 사람들 누구 하나 탄식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같은 어미의 입장인 아주머니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청년의 죽음은 내게도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일어날 수 없는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 가운데는 의붓아버지의 모진 심보가 한몫했으나, 정작 당사자는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아들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키우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결혼으로 본인은 물론 그 자식까지 불행하게 성장하고 끝끝내 불행한 삶으로 마감한 현실에 아주머니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충격과 상실감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으나 그 슬픔마저도 몰인정한 남편 앞에서는 억눌러야만 하는 현실에 아주머니는 점점 말을 잃었다. 근처에 이웃이 없이 외딴집에 거주하는지라 마을 사람들과의 왕래가 잦지 않았고 원체 말수가 적었던 아주머니는 아들을 잃은 후 마치 죄인처럼 기가 죽었는데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닌 억지로 살아간다는 말이 들려왔다.
세월이 약이라고 산 목숨 끊을 수 없었던 아주머니도 생때같은 아들을 떠나보낸 지 어언 30년이 흘렀다. 40년 넘게 농사일에 시달리고 이젠 허리마저 구부러진 노파가 된 아주머니에게 남겨진 건 늙은 몸뚱이가 전부이다. 이후 아저씨가 아내의 공에 조금이라도 보상을 해주려고 몇 마지기의 땅이라도 이전을 해주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전실 자식의 반대로 무위로 그쳤다고 한다. 아주머니에게 남은 건 빈 손뿐. 억울하기만 한 아주머니의 삶도, 너무나 애석하기만 한 청년의 죽음도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그들은 잊힌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