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 대하여
마음과 얼굴이 고운 아주머니가 시골에 시집오고 얼마 안 있어 그 집에는 웬 청년이 들어왔다. '한수(가명)'라는 청년이었는데 길에서 배회하는 걸 데려왔다고도 하고, 시장에서 떠도는 걸 데려왔다고도 하는데 진실은 아저씨만 알 뿐이었다. 청년은 보통 이상의 건장한 체격에 머리는 감지 않아 엉성하게 새집을 짓고 잘 씻지 않는지 언제나 꾀죄죄했다.
청년은 그 집에 오자마자 충직한 일꾼이 되었는데 밥만 먹여주고 무료로 부리는 현대판 노예가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오갈 때 청년은 땡볕이 내리쬐는 논에서 모를 심고 김을 매느라 얼굴은 늘 검붉게 빛났다. 말귀를 알아듣지만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 청년은 말을 더듬는 일명 '반버버리'였다. 지금으로 보면 '지적장애'에 해당하는데 당시에는 일반인보다 언어나 인지력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단어로 '바보'라고 불렀기에 그 청년은 마을 사람들에게 '바보'로 인식되었다.
나이는 스물이 넘었지만 지적 수준이 낮아 말이나 겨우 할 줄 알고 글도 모르는 그 청년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도 모르는 채 아저씨에 의해 혹사당하고 학대당하기 일쑤였다. 우직하게 소처럼 일만 했는데도 요령이 부족하다 여겨지면 아저씨는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 '한수'라는 청년은 그 집의 일꾼으로만 산 것이 아니라 아저씨의 화풀이까지 다 감당해야 하는 감정받이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안 되었다고 혀만 찰뿐 직접적으로 나서서 청년을 구해줄 수는 없었다. 청년은 아저씨 집에 문서 없는 종이 되어 수십 년 동안 그 집의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해줬다.
아저씨네는 무료 일꾼 덕분에 아무리 바쁜 농번기에도 여느 집보다 여유가 있었으며 무엇보다 따로 놉을 얻지 않아도 농사짓는 데 무리가 없었다. 인건비가 들지 않으니 재산도 점점 축적되어 마을에서 부자의 반열에 들 정도로 부유해졌다. 아저씨는 바보 같은 청년을 부리는 것조차 힘들다며 마치 갈 곳 없는 청년을 거두어주는 척했으나 새벽부터 해가 져 깜깜할 때까지 일하고도 농한기인 겨울이면 점점 수가 늘어나는 소를 돌보느라 잠시 쉴 짬이 없이 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면서도 아저씨의 욕설과 폭력을 덤으로 받으면서도 어떤 대꾸나 변명도 하지 못한 채 학대당했다.
아주머니 역시 소처럼 일만 하며 아저씨께 온갖 욕설을 얻어먹는 청년을 딱하게 여기면서도 속만 태울뿐 선뜻 나서서 청년을 지켜주는 울타리는 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그 욕설이 아주머니에게까지 날아드는지라 표 나게 청년을 감싸주지 못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청년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공범이자 방관자이면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된 채 전전긍긍 애만 태우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집에는 왕처럼 마음껏 가족들을 군림하는 아저씨 외에는 모두가 피해자였으나, 그 역시 남의 가정사인지라 아무도 침범할 수도 간섭할 수도 없는 불가침의 영역 같았다.
그 집은 오래된 집을 부수고 마을에서 처음으로 빨간 벽돌로 된 슬래브집을 지었다. 도로가에 있어 오며 가며 사람들의 눈길을 받는 그 집은 아직 남아 있는 초가집이나 오래돼 허물어져가는 기와집에 비하면 성처럼 견고하고 웅장해 보였다. 그 집에는 아저씨 가족들만 거주하고 '한수'라는 청년은 아래채에 있는 창고 같은 공간에서 거처했는데 겨울이면 난방을 충분히 하지 않은 방에서 지냈기에 사람들은 안 됐다고 혀를 차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귀한 아들이었을 청년을 친자식처럼은 못 대해줘도 공짜로 일만 부려먹는 아저씨가 언젠가는 천벌을 받을 거라는 말을 뒤돌아서서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처음 마을에 왔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청년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중년을 한참 넘기자 붉은 얼굴에는 주름살이 파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는 흰머리까지 듬성듬성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다. 이미 결혼 적령기를 넘긴 청년이 장가를 들기는 요원했다. 자기 한 몸 앞가림하기도 부족한 처지에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내에게 시집올 여자는 없을 것이고, 조선시대도 아닌데 남의 집살이나 마찬가지인 청년에게 결혼은 기적일지도 몰랐다. 그런 욕구가 있는지 없는지 누구 하나 관심 가지는 이도 없이 시간은 흐르고 사내는 해가 뜨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니 허수아비처럼 들을 지켰다.
마흔을 넘긴 사내는 전보다 몸집도 작아지고 움직임도 전만 못하고 힘도 잘 쓰지 못했으나 그 집에서 쉰이 다 되도록 시간을 보냈다. 늘 낡아빠진 작업복에 바지에는 흙먼지가 묻은 채 대화 하나 나눌 친구도 없이 그렇게 늙어갔고 사내의 처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장애인이 누릴 최소한의 권리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야속하게도 한 치의 쉼도 없이 흘러간 것이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사회에서 소외당하며 살고 있거나, 억울하게 이용당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방송을 타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의식이 높아졌던 것일까. 누군가의 제보였는지 알 수 없으나,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내의 가족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천애고아인 줄 알았던 사내에게 형제가 있었으며 나중에 찾아와 데려갔는데 최소 30년 이상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다고 한다. 아무리 최저시급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몇 억에 달하는 돈을 토해내기란 여간 부자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았을 터. 법적으로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소문만 돌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우리나라가 사회복지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장애인이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돌봐주다시피 하는 제도가 있어서인지 가족들에 의해 어느 시설로 보내졌다고 한다. 가족들을 찾았어도 여전히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내가 뒤늦게라도 노동에서 해방된 것이 다행 중의 다행이라고 하겠지만, 보상을 받는다고 그 돈이 사내에게 쓰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건 불 보듯 훤했다. 태어날 때는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로 태어났건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사내의 인생은 어떤 것으로도 보상될 수 없을 것이다.
사내가 떠나가고 그 주인은 이제 여든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고 있다. 젊은 날 그 괄괄했던 성미도 세월 앞에 쭈그러지고 몇몇 노인들만 드문드문 늙은 사자처럼 어슬렁거리는 마을은 공기마저도 함께 늙어가고 있다. 낯선 마을에 억지로 끌려와 청춘을 다 바친 그 사내를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