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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소중함

by 글마루

쌀 한 톨의 소중함

비 오는 산책길. 널따란 들녘에 농로를 따라 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모심기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땅심을 받기 시작한 모가 파릇파릇 생기가 넘친다. 여름 내내 혹독한 더위와 가뭄에도 벼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쑥쑥 자랐다. 다른 밭작물들이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타 죽을 때도 벼는 혼자 의기양양했다. ‘그래, 너라도 건재해야지.’라며 나는 산책길에 가만히 벼를 응원했다.


8월이 막바지에 이르자 어느덧 낱알이 쭈뼛쭈뼛 얼굴을 내민다. 벼 이삭 하나에 약 120개의 낱알이 달린다고 하는데 낱알이 점점 굵어져 나오는 것을 이삭이 팬다고 한다. 이삭이 팰 무렵 자세히 살펴보면 벼가 꽃을 피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 나온 흔적을 남기기 위한 종족 본능. 순간 악조건 속에서도 제 역할에 충실한 벼가 위대해 보인다. 제 한 몸 다 바쳐 맺은 결과물을 인간에게 오로지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식량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올된 벼는 벌써 다글다글 영글어 간다. 밭작물이 독한 열기 받아 시들시들 말라가는 중에도 벼는 오히려 더 가지를 벌리고 굳세게 자란다.


태풍이 온다고 할 때 이제 막 이삭을 틔우려는 벼가 태풍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우려가 되었다. 폭우와 폭풍이 동반하면 고향의 온 앞뜰에 벼들이 물살에 쓸리고 바람에 쓰러져 누웠던 어릴 적 기억이 연상되어서다. 게다가 흙까지 쓸려 논바닥을 휩쓸면 벼들은 회생 불능이다. 장마가 여러 날 계속되면 미처 다 영글지도 않은 이삭에 싹이 돋는다. 그러면 벼농사는 폐농이다.


쓰러진 벼들을 일으키는 작업은 또 얼마나 고된가. 꺾이다시피 한 벼를 일으켜 몇 묶음씩 모아 볏짚으로 묶어주는 작업은 여러 날 계속되었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우의를 입고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내 눈에는 무척이나 힘겹고 서글퍼 보였다. 우의 밑으로 빗물이 떨어지면 빗물인지 눈물인지도 모를 물기를 훔치면서 아낙네는 작업을 한다. 벼농사로 먹고사는 농가에서는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인 벼를 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초를 다투는 다급한 일이었다. 밥심으로 살던 때 쌀의 소중함은 말해 무엇할까.


우리 집은 농토라야 문중 땅 도조 얻은 서 마지기와 남의 논을 타조로 얻은 닷 마지기가 전부였다. 도조 바치고 남의 땅으로 지은 벼를 일대일로 나누면 추수를 해봐야 손에 건지는 게 얼마 안 되었기에 봄이 되면 항상 쌀이 떨어졌다. 그러면 동네 부잣집에서 쌀을 빌리고 추수하면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예전에는 모도 손으로 심고 나락도 낫으로 직접 베어야 했다. 그러니 능률도 오르지 않고 소출 또한 적어서 소작농은 가난의 악순환이라는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버지는 나를 논에 데려갔다. 낟가리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벼를 베어야 다치지 않는지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주었다. 아버지는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에 침을 퉤퉤-뱉어서 비빈 다음 나락을 두 묶음 먼저 베어내 낟가리를 만들었다. 숫돌에 물 적셔 잘 벼려놓은 낫이 볏줄기를 지나갈 때마다 써거덕써거덕 소리를 내며 싹둑 잘렸다.


벼 베기를 하기 전 걱정하던 낫에 다리를 베면 어쩌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같이 시작했는데도 아버지가 벤 자리는 훤해지는데 나는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볏줄기를 잡고 낫으로 베면 싹둑싹둑 잘려 나가는 소리에 재미있어도 농사일은 쉽지 않았다. 오롯이 몸의 수고로움을 거쳐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아버지 등에서는 땀이 나다 못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검붉은 이마에는 땀방울이 콩죽처럼 흘렀다. 묵묵히 낫질하는 아버지의 어깨 위로 가난이 걸터앉아 옴짝달싹 못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우리의 일과는 여지없이 들로 나가는 거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산간의 해는 일찍이 산을 넘는다. 해거름이 되면 시원했던 바람이 차가워진다. 바람이 벼 이삭을 훑으면 노랗게 영근 이삭들이 싸르륵싸르륵 서로 부딪치며 고개를 흔든다. 쓱싹쓱싹 낫질 소리만이 들리고 어느새 아버지는 저만치에서 앞장선다. 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둑 발이 깔리니 두려움이 엄습한다. 들리는 건 바람 소리, 산새 소리뿐. 해는 벌써 기우는데 아버지는 낫질을 멈추지 않는다. 손바닥만 한 다랑논이라지만 논 서 마지기가 하루에 끝나지는 않는다. 나는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할 때까지 볏단을 날랐다.


물이 빠진 마른 논은 벼 베기가 수월하지만, 무논에는 물을 뺀다고 빼도 질벅질벅 발이 빠졌다. 발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진흙물이 튀어 젖은 바지는 점점 바닥으로 처졌다. 작업하기도 불편하고 허리가 아파도 잠시 앉을 수가 없었다. 베어낸 볏단은 즉시 옮겨야 했는데 이삭이 영근 볏단은 물먹은 솜이었다. 무거운 볏단을 발이 푹푹 빠지는 무논을 건너 논둑으로 들어 나르는 작업은 무척 고달팠다. 내가 볏단을 끌고 가는 건지 볏단이 나를 끌고 가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고된 시간. 나는 그때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얼마나 큰 수고로움으로 얻는지 알았다. 쌀 한 톨은 농부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라는 것을.


거두어들인 벼를 햇볕에 고루 말리기를 여러 날, 낱알들은 일곱 식구 먹을 양식으로 방앗간으로 보내진다. 어른들이 방아를 찧는다고 벼가마니를 나르고 할 때 나는 벼가 껍질을 벗고 쌀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기계들이 굉음을 내며 마구 돌아가고 컨베이어를 타고 쌀이 흘러내리면 손을 대고 한 움큼 쥐어보기도 했다. 금방 찧은 쌀은 아직 열기가 식지 않아 따뜻했고 달콤한 향이 났다. 껍질을 벗은 쌀알들은 토실토실한 아가의 볼처럼 보얗게 윤이 돌았다.


방아를 찧어 오면 식구들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처럼 들떴다. 무쇠솥에 쌀만 안쳐 갓 지은 쌀밥은 윤기가 좌르르 흘렀고 단내가 진동했다. 솥뚜껑을 열면 솥 안은 하얀 김으로 가득 찼고 그 증기를 쏘이며 어머니는 밥을 펐다. 그때 어머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또 눌은밥은 아이들 입을 달래줄 주전부리였고 거기에 물을 붓고 끓인 숭늉은 아버지의 소화제였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숭늉 한 사발로 게트림을 하는 것으로 식사는 끝났다.


가을이 깊은 어느 날, 산책을 나서는데 멀리서 기계 소리가 들린다. 기계에는 집채만 한 자루가 보이고 낱알들이 우르르 무서운 속도로 쏟아진다. 기계가 하는 일은 전광석화같이 빠르다. 몇 날 며칠 온 가족이 매달려 벼를 베어 말리고 다시 탈곡하느라 고생했던 옛날이 떠오른다. 기계화로 손을 많이 덜었다고는 하나 농사를 짓는 건 허리가 끊어지는 통증도 타는 듯한 땡볕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다. 온몸의 에너지를 쏟아낸 고통의 결정체를 알토란과 바꾸는 거룩한 일.


온 가족이 매달려 오롯이 몸의 수고로움으로 한 톨, 한 톨 장만한 쌀의 가치는 어떤 물질과도 견주기 어렵다. 공을 들인 것은 사람의 손길과 정성이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쌀을 씻다가 흩어진 알갱이를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주워 담는다. 또한 쌀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긴다. 땀의 가치를 아는 농부의 자식에겐 쌀 한 톨이 돈보다 훨씬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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