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록의 물결이 싱그럽다. 무청 우거진 들녘은 바다가 연상된다. 바람 따라 나붓나붓 흔들리는 무청은 얼핏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 일렁임을 바라보노라니 내 내면에는 시래기 다발이 아슴아슴 손짓한다. 흐드러진 무청의 풍성함과 늘 명치를 옥죄고 드는 주림은 모순관계 같아도 동무처럼 함께 소환된다.
어제까지 초록의 물결이던 무밭이 먹다 남은 옥수수깡처럼 듬성듬성하다. 몇 주 전 다른 밭에 무를 이삭줍기해보니 그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놔두면 그냥 버려져서 썩어버릴 무에 씨앗 품은 해준 셈이다. 이번에는 단무지용 무인지라 김장용 무보다 시래기가 맛나다고 한다. 말리지 않았으니 정확히는 우거지다. 벌써 냄새 맡고 달려든 하이에나처럼 무밭 여기저기에 우거지 줍기가 한창이다. 내가 주워갈 것도 없이 저 사람들이 다 가져가 버리면 어떡하나, 조바심에 애가 타고 입이 바짝 마른다. 벌써 차 몇 대가 훑고 갔는지 모른다. 수확을 마치고 남은 것은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무, 배춧값이 비싸기에 그토록 서로 가져가려고 혈안이 되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습관처럼 연한 원두커피 한 잔에 빈속을 달래고 간단히 업무를 보다 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뜨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먹고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챙겨 무청 바다로 차를 몰았다. 이미 오전 내내 지나가는 차들이 무청을 수없이 거둬갔는지라 밭은 태풍이 휩쓸고 간 듯 휑뎅그렁했다. 듬성듬성한 무청을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패잔병처럼 등을 웅크린 채 줍기에 여념이 없다. 멀쩡한 게 별로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밭 깊숙이 들어가니 생생하고 빳빳한 무청이 천지다. 돈벼락을 맞아도 이리 설렐까. 허겁지겁 무청을 골라 봉투에 담다 보니 어느새 비닐봉지에 반 너머 채워졌다.
어젯밤에 잠 못 이루던 복잡다단했던 생각들이 무청 더미를 보자 흐뭇해진다. 새파랗고 길쭉한 줄거리를 커다란 솥에 욱여넣고 흐드러지게 푹 삶아서는 집된장, 고춧가루, 마늘, 대파를 넣고 바락바락 주물러 두고, 멸치육수에 쌀뜨물까지 정갈히 받아 팔팔 끓여내면 답답했던 속이 확 풀릴 것이다. 금방 끓인 시래깃국은 깊고 진한 맛은 없지만 시원하다. 그것을 약한 불에서 뭉근히 끓여내면 진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흐물흐물 푹 삶겨진 시래기를 한 젓가락 건져서 호로록 입에 넣으면 감칠맛에 혀가 녹을 정도다. 그와 동시에 시래기는 푸른 물결을 타고 유년의 늦가을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배추 무를 수확해 김장하고 나면 아버지는 배추 겉잎과 무청을 짚으로 가지런히 엮어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 뻣뻣하던 줄기들이 가을바람에 시나브로 마르기 시작하면 금방 겨울이 왔다.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 세상이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도 처마 밑에 걸어둔 시래기는 한뎃바람에서 한겨울을 버텼다. 어떤 가림막도 없이 눈보라 치는 바깥에서 칼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모습은 엄동설한도 마다하지 않고 지게를 걸머지고 매일 산에서 나무를 해오던 아버지와 닮았다. 따뜻한 아랫목보다 눈보라 치던 산길과 더 친했던 아버지. 어린 내 눈에는 아버지와 시래기가 동병상련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시래기가 눈을 뒤집어쓸 때 아버지 머리 위에도 눈이 하얗게 쌓였었다. 시래기가 우리 가족에게 겨울을 날 양식이 되었다면 아버지는 산에서 해온 나무로 군불을 때 따뜻하게 한겨울을 날 수 있게 해주었다.
잘 마른 시래기를 푹 삶으면 흡사 그 옛날 소죽을 끓인 후 김에서 나던 구수한 냄새와 흡사하다. 그래서인지 시래기 삶는 냄새는 나를 자꾸 유년 시절의 아슴아슴했던 순간으로 이끌어 준다. 어쩌면 기억 저편에 깊숙이 묻어뒀던 아버지를 회상하고픈 추억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시래기는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백석 시인의 시에도 평안북도 지방의 고유한 음식이 자주 등장한다. 국수, 가재미, 선득선득한 도야지고기, 반디젓, 무이징게국 등 실제 음식이 소재인 시가 많다. 시인이 홀로 외롭게 살아가면서 그나마 의지가 되었던 것은 유년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이 아니었을까. 가족공동체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에 먹으면서 쌓이는 정이 시나브로 깊어지는 것이다.
시래기를 오래 걸어두어 봄이 되면 푸른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누렇게 뜬 얼굴이 된다. 그땐 삶아도 맛이 없는 마른 풀처럼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식재료로서의 가치는 상실한다. 늦가을 찬바람 맞아 물기가 마른 시래기는 언제부터 아버지를 연상시켰다. 위암으로 육 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아버지는 싱싱하고 푸른 무청에서 누렇게 떠버린 시래기처럼 시들시들 말라갔다.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단단해 보여 돌콩, 대추방망이라 부르며 내가 놀리기까지 했으나, 한 번 생기를 잃은 아버지는 무청처럼 다시 생생하기가 어려웠다. 빛바랜 담배 떡잎처럼 누렇게 뜬 시래기를 버릴 때면 자꾸 돌아가신 후 이불 위로 비치던 말라빠진 아버지의 머리가 연상됨은 무슨 연유일까. 그 옛날 질리도록 먹던 시래깃국에서 아버지를 소환하고 싶었음일까.
무청을 보니 한겨울 걱정이 없을 만큼 든든하다. 지금이야 시래기가 건강에 좋다고 하여 별미로 먹는 식재료가 되었지만 당시 시래기는 구황작물과도 같았다. 시래깃국만 끓여서 먹은 게 아니라 무침, 죽, 떡까지 양을 늘리기도 하고 입맛을 돋우는 역할까지 했다. 가을부터 봄까지 처마 밑에 걸어두기만 하면 필요할 때마다 걷어서 사용했으니 따로 보관할 필요도 없었다. 버려질 배추 겉잎이나 무청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로 식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도 시래기는 각종 탕이나 찜에 넣으면 깔끔할 뿐 아니라 음식 맛을 한결 돋운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시래기 된장국은 회상하고 회상할수록 보고 싶은 아버지와도 닮았다. 애써 주운 우거지 고이고이 엮어 베란다에 걸어둬야겠다. 이미 다른 집에서는 시래기 타래를 걸어둔 것이 눈에 띈다. 참하게 잘 땋은 처녀의 댕기 머리처럼 매끄럽고 가지런하다. 전설처럼 시래기 줄기에는 우리 가족사가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있다. 흐드러지도록 푹 삶아 된장 푼 시래깃국을 먹는 식구들의 모습이 아직 눈앞에 삼삼하다.
2016년의 늦가을 구미보 근무 때 씀.
※ 사진 출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