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예술
미술관을 자주 간다.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수많은 작품들을 만나면 충만해지는 기분 들기 때문이다.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면 아티스트들의 고뇌와 노력들이 똘똘 뭉쳐져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농축된 그 에너지가 내 몸에 부딪히면 그 에너지가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내적 충만을 경험하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일단 관람 전 큰 호읍을 통해 농축된 기운을 모조리 흡수한다. 그리고 작품을 보면 궁금한 게 하나둘씩 생겨난다. 왜 이런 주제의 작품을 기획하게 됐는지, 그림을 그리던 시대적 배경은 어떻게 되는지, 아티스트가 중시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그 시대에 주목받았던 사람인지 거시적인 질문부터 그림에서의 인물의 시선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색 선정은 어떻게 했는지, 주로 등장하는 오브제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세세한 작품의 디테일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이 생긴다. 작품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사실 나는 시각디자인 전공자로 예술학을 전공으로 하는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영감의 원천이 되는 예술작품을 항상 가까이하려 노력했다. 미술학자 분들처럼 그림에 숨은 의미와 작가의 삶의 중요한 배경에 대해 말하기에는 내공이 적다. 하지만 내가 만난 작품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 가며 삶을 대하는 태도는 풍성해졌다.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마그리트의 그림 '중산모를 쓴 남자' <The man with the Bowler Hat>는 마치 남자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며 'raining man'으로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이들이 땅에서 붕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가끔 도심에서 차가 많이 밀릴 때, 드론을 띄워 무슨 일이 있는지 위에서 살펴보고 싶었던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하는 일마다 성과는 보이지 않고 꽉 막힌 것 같을 때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쯤에 와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림 속 신사들은 각자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각자 삶의 방향이 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The man with the Bowler Hat, 1964 (back)>
너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어?
내가 하는 일은 어디를 향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 길이 맞아 틀려? 를 묻는 게 아니었다. 그곳을 향해 가기로 했다면 가는 길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질문이 작게 쪼개져 거듭 물었다. '네가 가는 그 길에 즐거운 것들이 많아?' '지치지 않고 갈 수 있겠어?'라고 말이다. 나에게 이런 질문은 친구도 지인도 부모도 꺼내기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다. 작품의 숨은 의미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며 작품을 공부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그림이 내게 어떤 말을 던지고 있는가 귀 기울이다 보면, 한 단계 높은 곳에서 작품과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