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모순

확신의 오류

by DesignBackstage

S마트에서 다시 일해 줄 수 있냐고 이 년 전 퇴사한 직원에게 아버님이 전화를 걸었다. 그 직원은 노동청에 아버님을 신고한 직원이었다.


얼굴은 본 적 없었지만 숱하게 들었던 그 직원의 이름이 들리자 나는 순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은 퇴사 후 노동청에 특근수당 미지급건으로 진정점수를 했다. 명절 때마다 직원들에게 특근수당과 떡값을 현금으로 챙겨주며 격려했었지만, 문제는 ‘특근수당을 받은 적이 없다’며 노동청에 진정서를 낸 것이다. 직접 현금으로 수당을 건네고, 수당지급 사실을 확인하는 서명을 받지 않았던 것이 결국 화근이 된 셈이었다. 그 일로 아버님은 한 동안 분통해하셨다. 믿었던 직원들에게 받은 배신감은 물론 악덕고용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아마도 참기 힘드셨던 것 같았다. 꽤 오래전에 들었던 직원이름이지만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과 이름과 비슷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이름이다. 그 이름을 다시 듣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직원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할 거라고는 더더욱.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뿐 아니라, 별거 아닌 일이라 치부했던 일이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기도 한다. 7년 가까이 S마트와 거래했던 식당이 있었다. 식당이름에 '풍년'이 들어가서 인지 올 때마다 식자재 구입이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거래하던 식당이 코로나 이후로 미수금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간 거래 이력도 좋고 자주 오던 단골이라 월말에 결제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수개월간 결제가 미뤄지다가 어느새 일 년간 결제가 안 되고 연락도 끊겼다. 내가 근무하기 일 년 전에 생겼던 일이었다. 최근 악성 미수금정리를 하다가 발견된 식당이었다. 비고란에 추심이 중지된 상태라고 쓰여 있었다. 워낙 큰 금액이라 담당자에게 추심 이 중단된 이유를 물었다. 그 단골식당 대표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더 이상 추심을 진행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자녀들은 상속을 포기했고 아버님은 배우자에게까지 추심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저자 다니엘 커너먼은 “우리는 생각보다 덜 이성적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다.” 고 말했다. 아버님은 회사의 HR시스템이 잘못되어 실력 좋은 직원을 잃었다 인정하고 근로계약서에 휴일수당에 관한 조항을 추가했다. 괘씸함은 이성적이지 못한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실력 있는 직원을 채용한 것이었다.

풍성함과 넉넉함을 나누던 식당 주인은 끝내 누구보다 쓸쓸한 마음으로 생을 마감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직원은 S마트에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재입사했다.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왜곡되는지를 탐구한 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은 특별한 질병 없이 조력사를 택했다고 한다. 불확실성과 우연, 편향을 탐구해 온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불확실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모순으로 가득한 소식들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인셉션에서 땅과 하늘이 접히며 뒤틀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그 장면처럼, 어디까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어려웠다. 상황에 따라 옳음과 그름은 쉽게 바뀌고,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었다.


나는 노동청에 S마트 진정접수를 한 직원의 재입사를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농산물 매입처에 대한 정보가 탄탄하고 전략에 맞춰 가격설정을 잘하는 이 직원을 아버님은 S마트 구원투수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 직원이 재입사하게 된다면 매장 내 분위기가 어수선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S마트에서 오래 일하던 이 직원을 다른 직원들은 반갑게 맞이해 줬다. 아버님의 전폭적인 믿음 때문이었을까! 자신감 있는 태도와 적극적인 업무대응력이 짧은 시간이지만 눈에 띄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내가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니엘 커너먼의 말처럼 나는 이성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편견의 속에서 내 기준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감은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다고 여겼지만 자기 확신이 편견에서 비롯됐다면 그 판단은 결국 다른 형태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모순이 겹겹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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