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하기까지.
굴이야! 굴이야! 여기 굴이 있어요!
세일이 진행될 때마다 모든 열정을 쏟아내겠다는 박 과장은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굴이야"를 외친다.
마치 불난 집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다급한 외침에 박 과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굴 먹고 힘이 불끈 솟아서 온몸에 불이 난 거 같습니다" 라며 고객들에게 방긋 웃어 보였다. 고객응대에 항상 진심을 다하는 박 과장이다. 하지만 그가 담당하는 수산코너는 몇 달째 매출이 늘지 않고 있다. 시즌에 맞춰 매대 디스플레이를 바꾸는 다른 코너와는 다르게 수산코너는 몇 달째 새로운 방식의 진열도 신제품구성도 없었다. Y본부장은 아침 조회 때마다 직원들 컨디션을 살피고 직원들 생일도 살뜰히 챙긴다. 매달 베스트 직원상을 주자는 의견을 내며 직원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챙겨주지만, 직원별 맞춤식으로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직원들이 그를 피해 다닌다. 경리팀 K과장은 똑소리 나게 일하는 완벽주의자지만, 직원이 실수하는 일이 생기면 다짜고짜 소리 지르며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밑에 직원들이 퇴사문의가 빗발친다. 묵묵히 일은 잘하지만 고객응대를 어려워하는 P대리. 항상 밝게 웃으며 고객과 직원들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업무지시사항을 자주 잊어버리는 L사원.
장단점이 확실한 직원들이 있어 때론 든든하고 때론 당황스럽다. 조직의 힘은 유사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비로소 더 큰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서로 맞지 않아 으르렁 거리거나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직원들을 보며 며칠째 업무 보직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다.
나는 뭐든 결정이 빠른 편이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에 가상시뮬레이션을 상세하게 그려보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처음 하는 일이지만, 마치 경험한 것 같은 익숙함이 생겼다. 어떤 선택이 내 앞에 오게 될지를 감지할 수 있었고 먼저 미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빨리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끌어 갈 수 있었다. 고민의 시간을 미리 갖기는 하지만 남들보다 빠른 선택 하다 보니, 신중하지 못한 선택에 후회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이 경험들이 내게 자양분이 된다 믿었고, 실패한 선택은 글감으로 삼으며 스스로에게 ‘오히려 좋아’라고 말했다. 빠른 결정이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거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선택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아이들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을 매번 선물했고 가상 시뮬레이션은 소용이 없었다. 미리 고민해 볼 시간은 없었고,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들에 버퍼링이 걸렸다.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하고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내 선택이 아이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마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의 하루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작은 결정 하나에도 내 마음은 더디게 움직였다.
그렇게 주저하는 시간들이 점차 많아졌다. 우유부단함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순간들은 사실 숨을 고르는 시간들이었다. 머리로는 생각이 앞서가는데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몸 안에서 리듬이 어긋날 때가 있다. 숨이 가팔라지는 순간이다. 그럴 때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면 다시 원래의 리듬으로 돌아올 수 있다.
돌아보면, 내가 주저했던 시간들은 늘 이성과 감성이 충돌할 때였다. 아이에게 화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태도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머뭇거렸고, 직무에 잘 맞는 직원이 팀과 호흡이 어긋날 때는 보직 변경을 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몸속 리듬이 흐트러진 순간에 필요한 건 빠른 결정이 아니라, 잠시 물러서서 숨을 고르는 일이었다.
결국 중요한 건 호흡이었다. 라마즈 호흡이 출산의 고통을 견디게 하고, 복식 호흡이 굳어있던 긴장을 풀어주듯 내 주저함도 선택의 순간마다 마음의 리듬을 다시 잡아주는 나만의 호흡법이 되어주었다.
들숨에 마음을 다잡고, 날숨에 긴장을 흘려보내며, 숨 좀 쉬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