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대화에 숨은 얼굴

S마트로 오세요!

by DesignBackstage

S마트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픈하려고 며칠째 고민 중이다. SNS에 ‘우리 마트로 오세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한 콘텐츠를 찾기 어려웠다. S마트는 사실 특별한 강점이 없어 보였다. 코스트코처럼 독보적인 상품이나 잘 만든 PB상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로 생긴 마트들처럼 깔끔하고 힙한 분위기를 내는 곳도 아니다. 있는 힘껏 S마트의 장점을 찾아보려고 꼼꼼히 살펴봤지만, 신선한 재료와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기본적인 강점 외에는 뚜렷한 특징이 보이지 않았다.


S마트는 학창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분명히 학기마다 주기적으로 자리이동이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 나는 항상 교실 중간 튀어나온 벽기둥 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공부를 월등히 잘하지도, 사고를 화끈하게 치지도 않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중간 정도의 몫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정쩡한 포지션의 내게 관심을 주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나는 튀어나온 벽에 설치된 선풍기 바람처럼 미지근하고 후덥지근했다.


그런 내가 주목받을 때가 있었다. 내가 만든 하드보드지 필통을 학교에 가지고 간 날이었다. 그 시절엔 하드보드지로 필통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좋아하는 스타 사진을 상자 위에 붙이고 위에 투명 커버를 덮으면 '나만의 필통'이 만들어졌다. 수업 내내 좋아하는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학교 숙제보다 몇 배는 더 공을 들였다. 필통은 친구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을 어디서 구했냐고 묻고,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 사진의 출처는 모두 같았다. 다들 똑같이 잡지를 뜯어 만들었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내 필통은 더 눈에 띄었다. 아마도 사진을 고르는 눈이나 배치를 하는 감각이 조금 달랐던 걸까? 그때 처음으로 내가 ‘좋은 것’을 고르는 능력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나만의 필통’을 만들던 때처럼, '나다운 감각이 살아 있는 마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임기를 마친 사장이 퇴직한 뒤에도 가끔 현직 임원들과 점심 자리를 갖곤 했다.
우연히 그 자리에 함께한 날, 나는 답답한 마음을 전 사장에게 털어놓았다. 회사 상황은 계속 안 좋아지고,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은 이 회사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분은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단점은 내가 더 이상 사장이 아니라는 거고,
가장 큰 장점은 네가 아직 이 회사에 있다는 거지."

내가 맡은 프로젝트마다 믿고 지지해 주던 사람이 퇴직 후에 해주는 말이어서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때 마음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말을 다시 꺼내 되새겼다. 그리고 다짐했다. 분명 나는 S마트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아니,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그날따라 대부분의 직원이 배송 나가고 매장에 직원들이 거의 없었다. 안내대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차근차근 매장을 둘러봤다. 마음을 그렇게 굳게 먹었는데도 도대체 보이는 게 없었다. 그때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콩나물 한 박스에 몇 개예요?"
"아이고 미안해요, 한 박스가 얼마예요?"
"제가 콩나물 개수는 다 못 세어 드리지만,
가격은 알려드릴 수 있어요."

단골 마라탕집 사장님과 나는 한바탕 웃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비슷한 장면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매일 주문을 넣는 단골들과 나누던 재미있던 순간들이었다.


그랬다. S마트는 ‘맛집 사장님들의 12년 단골 마트’였다. 주변에 새로 생긴 마트들처럼 시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변함없는 품질과 알뜰한 가격 덕분에 단골은 늘 꾸준히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바로 이런 소소한 장면들과 이야기들이 S마트만의 힘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잔잔한 에피소드들을 SNS에 하나씩 풀어보기로 했다. 화려한 사진이나 과장된 문구는 없지만,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품질을 지켜온 시간들, 그리고 단골들과 오가는 소소한 대화들 속에 S마트의 진짜 얼굴이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기록하다 보면, 어쩌면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S마트를 찾아올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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