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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un 26. 2022

138 엄마가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이유

물은 돌을 닳게 하고 넘치는 물은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나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나이다 주께서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 보내시오니...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깨닫지 못하나이다(욥 14:19-21)


우리 인생에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기에 우리는 고통을 뛰어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팀 켈러 목사님은 고통을 겪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목사님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예수님 앞에서 울 수 있다. 우리에게는 고통당할 때 품에 안겨 마음껏 울 수 있는 분이 계신다.

둘째. 예수님은 신실하다. 우리가 겪는 고통도 결국은 신실하신 주님의 계획 아래 있다.

셋째. 예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기도함으로 우리는 번민을 멈추고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길 수 있다.

넷째.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다. 아무리 큰 고통이 올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다.

끝으로. 예수님으로 인해 천국을 소망할 수 있다. 이 땅에서는 고통을 겪지만 예수님 때문에 장차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욥은 고통 속에 탄식하고 있다. 자녀를 잃은 상실감과 질병의 아픔이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심지어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희망을 끊으셨다고 토로했다. 고통당하는 욥의 모습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을 발견한다.

우리에게도 고통의 날이 올 수 있다. 그때 우리는 누구를 기억해야 할까? 바로 예수님이다.


<감사 QT 365> 중에서

 


아직도 난 이해할 수 없다.

 엄마에게 고통의 시간이 주어지는지를 말이다.

엄마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족으로써는 정말 괴롭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 것이며, 외로울 것이며, 답답할 것인가...


그저께, 엄마의 면회가 마지막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날이었다. (다음주부턴 드디어 대면면회!)

오후 4시. 요양병원의 마지막 면회는 진짜 운이 좋아야 잡을 수 있다.

난 이 시간을 잡기 위해 3주 전에 미리 예약을 걸어놨다.

엄마가 어린 시절 같이 살았던 큰 이모의 장남인 사촌오빠가 면회를 오시기 때문이다.


사촌 오빠는 엄마와 12살 차이.

76세인 사촌오빠.(나에겐 아빠 뻘이다)

엄마가 나를 늦둥이로 낳으셔서, 나는 사촌들 사이에 나이가 가장 어려도 학열이 높았다.  

큰 오빠의 딸은 나보다 한 살 더 많지만, 꼭 '정원 고모'라고 불렀다.

또 75세인 사촌언니의 딸은 나보다 5살 많지만 이모라고 불렀고, 20살에 할머니가 되는 우픈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초등학교 때 호칭이 너무 어색해서 동갑인 조카들과는 반말로 '야! 야야' 하며

이름을 부르며 놀았는데, 단체로 불려 가서 혼난 적이 있다.

감히 최참봉 집안에 격 떨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ㅋ.

서열은 꼭 지켜야 한다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칠순이 넘은 분들에게 "오빠~", "언니~" 하며 안부 전화를 하기가 매우 어색하긴 하지만.  

이렇게 어릴 때부터 배워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워진 건 사실이다.


엄마는 오빠를 보자마자 정말 좋아하셨다.

힘없어서 게슴츠레 떴던 눈꺼풀이, 오빠가 온다고 하니 확 떠져서 얼마나 크고 맑던지~


"이모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뭔 줄 아쇼? 정원이를 낳은 거야!"

"그래 맞아... 감사해"


고등학교 때, 엄마는 큰 이모를 돕기 위해 부산으로 가셨다고 한다.

6.25가 막 지난 때였는데, 엄마는 5-6살 된 조카들의 기저귀를 빨아 입히고, 밥을 지어 먹이고, 온갖 집안일을 도우면서 어렵게 학교를 다니셨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가족밖에 없던 그 시절... 그렇게 장성한 조카들이 공부를 잘해 말단 직원이 기업의 사장이 되기도 했고, 유명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기도 하고, 전문직을 갖게 되면서 나중엔 오히려 엄마를 돕고 돕는... 그렇게 서로에게 쌓인 정들이 커지면서, 외갓집은 더 우애 있는 단단한 집안이 되었다.

내가 비록 무남독녀지만 잘 버티는 건 든든한 사촌 언니 오빠들이 곁에 계시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해가 어머니 탄생 100주기요! 이모~ 엄마 기억나지?"

"그럼... 큰 언니가 나한테는 엄마였지..."


굳건한 유교집안이었던 곡성의 최 씨 가문이었지만

큰 이모가 일찍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셨고,

줄줄이 6명의 동생들과 그 자녀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모를 통해 엄마가...

엄마를 통해 내가.....

나를 통해 내 딸이...

예수님 믿는 3대째 믿는 집안이 된 것이다.


엄마는 지금 이렇게 병상에 누워계시면서도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는, 아직도 믿음이 약한 조카들 그리고 그의 손녀 손자들을 구원 얻게 하기 위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고 계신다. (조카의 자식들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함.)


"이모, 집에 가시면 내가 꼭 보러 가리다. 걷게 되실 거야!"

"아멘~~ 고맙다. "


정말 15분 정도?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촌오빠와의 면회를 통해 엄마의 컨디션이 좋아지신 걸 느낀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많은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이.... 가족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신다고 한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도 이해는 간다)

그래서 요양병원 안은 늘 우울하다.


하지만

엄마가 지금의 고통을 이기고 계신 이유는

딸이 매일 세 번씩 전화로 위로하고, 막내동생이 항상 관심을 갖고 찾아오며,

조카들과 교회 식구들이 안부전화를 하기 때문에

또 유튜브로 목사님의 설교를 24시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계신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엄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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