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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Dec 06. 2021

006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요셉은 약혼자인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마리아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법에 따라 맞아 죽어야만 하는 마리아와 요셉은 도저히 결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마리아와 파혼한다면 마리아는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다. 

그게 요셉으로서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의 생각과 달랐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서 태어날 아기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셉이 깨달아야 할 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0-21)    

 

마리아가 임신한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을 죄에서 구원할 그리스도였다. 

요셉은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따라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최선은 우리의 최선과 다르다. 

그러기에 최선의 결정을 위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내려진 선한 결정은 언젠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제목이 될 것이다.


      


브런치를 쓰다 보니, 

맘에 묻어 뒀던 속마음까지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

꼭 어린 시절 단짝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난 뒤에 편안해지는 마음이랄까?

그냥 그렇다.      




엄마 아빠는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무엇을 포기하든지 

나의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언제나 날 믿어주셨던 것 같다.     

방송작가 일을 시작할 때도 그랬고, 

결혼하겠다고 남편을 인사시킬 때도 그랬고.

엄마처럼 딸 하나만 낳겠다고 말할 때도 그랬고.

글을 쓰겠다고 일을 다 포기하고 방에 들어앉을 때도 그랬고....

엄마 아빤 늘 응원해주셨다.

두 분은 내 등 뒤에서 든든한 백처럼 중보 해주셨던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가... 

난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거의 후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내 결정에 많은 후회와 원망 등이 남는다.      

우선 쓰러진 엄마를 데리고 119를 탔을 때다.

119 대원은 근처 대학병원이 아니라 내가 들어보지 못했던 병원 이름을 대며 출발을 했다.

뇌졸중 2차 병원이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지금 엄마가 다니고 있는 A대학병원으로 가자고 정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그 순간엔 엄마가 자주 다녔던 A병원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착했을 때 응급실 앞에서 20분.

코로나 검사한다고 2시간. 

기타 등등의 검사를 하고 동의서 받는다고 시간을 끌면서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걸 생각하면....

VRE에 걸려 10개월째 코호트 병동에서 느리게 회복하고 계신 걸 보면....

그때 나의 선택은 최선은 정말 최선이었는가... 

너무 후회스럽다.      


어느 날, 요양병원의 담당과장님과 면담하면서 나의 죄책감을 말한 적 있다. 


“119 대원이 가자고 했던 병원을 갔다면 엄마가 반신불수가 되진 않았지 않을까요? 제 선택이 너무 후회됩니다”

“따님.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잖아요. 119타고 병원을 돌고 돌았던 분들이 더 많아요. 병상이 없으니까 거절당해서 차 안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죄책감 갖지 마세요.”

“서울대 병원으로 갔다면. 엄마가 더 나아졌을까요?”

“어머님이 저 정도인 건 따님의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겁니다. 후회는 절대 따님과 어머님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아셨죠?”      



따뜻하게 웃어주시는 의사 선생님을 보며, 그때 내 후회를 접었다. 

엄마만 살리자!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건.. 

그 위로가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아빠와 치과를 갔었어야만 했을까....


괜히 아빠 혼자 병원 계단을 오르시게 해서, 심근경색이 오지 않았을까?

내가 치과를 안 갔다면, 아니 아빠를 부축해서 같이 병원에 갔다면... 등등...

아직도 큰 죄책감이 남는다.       


아빠는 틀니가 7년이 되어 헐거워지니, 

건강보험에서 치과 보조금을 다시 받아 새 틀니로 교체할 기회가 생겼다. 

'통틀니'다 보니 식사 중에도 계속 툭툭 떨어졌다.

아빠는 보조금을 받으니 이 기회에 뿌리가 남아 있는 송곳니를 빼고 임플란트를 하길 원하셨다. 

그 과정 중에 엄마가 쓰러지셨는데....

아빤 전립선 항암제도 더 이상 처방받지 못하셨고, 

혹시라도 전이가 되면 큰 일이니 영양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아빠라도 잘 드시고 건강해야, 엄마도 나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아빠가 소천하시고, 치과에서 전화가 왔었다.


“아버님. 틀니가 완성이 되었는데요, 오셔서 맞춰보셔야죠...”     


그 말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말했다.     


“그냥 버려주세요....”     




더 가슴이 아팠던 건...     

아빠가 임종을 맞았던 중환자실에서 싸준 아빠의 소지품 안에도 낡은 틀니가 있었다는 거다.

그 틀니를 보면서, 아빠의 얼굴과 교차가 되는데....

얼마나 가슴을 치며 울었는지 모른다...     

치과에 간 건. 

그땐 그 선택이 나의 최선이었다.

가혹한 돌덩이 같은 선택...     


“장인어른 85세까지 행복하게 사셨어. 목사님도 되셨잖아. 

짧게 아프고 천국 가신 건 축복이라더라. 

여보, 장모님한테 더 신경 쓰자. 천국에서의 장인어른의 바람도 그거일 거야”



     



생사의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있는 엄마의 곁을 지키면서 난 생각해본다.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소천은 큰 충격이었지만

만약 아픈 아버지까지 내가 모셔야 했다면...

어떻게 보면 아빠한테 감사한 일이었다.          

난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 

그 뜻을 알기 위해.... 

엄마와 함께 감사생활을 하면서 

내 믿음 생활을 점검하는 중이다. 

그저그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올리며 오늘도 힘내며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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