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5. 본격적인 재활치료의 시작
올 여름에 대학병원의 재활의학과에 입원 예약을 해놨더랬다.
VRE균만 떨어진다면 본격적인 재활을 하고 싶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12월 초에 기적적으로 VRE균이 떨어졌고,
드디어 어제!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오 예~~~
물론 3차 병원에 간다고 엄마가 크게 회복되는 건 아니다.
또 비용도 큰 걱정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한 번이라도 받아 보게 하는 것,
해볼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 해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됐다.
요양병원의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퇴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을 했더니 축하인사부터 전해줬다.
몸이 나아져서 퇴원하는 환자가 거의 없는데, 따님의 정성이 큰 몫을 했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해줬다.
아이고 쑥스러워...
8-90세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대부분 6-70세에 가깝다. 보호자도 노인인 거다.
하지만 난 엄마가 마흔이 넘어 낳았으니 에너지 충만한 40대.
엄마가 조금만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당장 병원으로 쫓아가는 열성 보호자다 보니,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함부로 못했다.
그런데 한 번은 엄마의 병실에 CRE환자가 2주 정도 함께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간병인 여사님에게 병실이 나오면 따로 격리할 예정이니,
보호자가 걱정하지 않게 말하지 말라며 차일피일 미뤘다는 거다.
엄연히 CRE는 2급 전염병이고 VRE 4급 전염병으로 더 강한 균이다.
둘 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에게만 나오는 항생제 내성균이기 때문에
보통은 각각 따로 격리하고 있다. 또 그렇게 알고 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데 병원 사정상 어쩔수 없이 같은 병실에 있다고?
그것도 보호자 모르게?
국민신문고에. 질병관리청에. 보건소에. 근처 요양병원 직원들에게 이런 경우가 가능한 지를 샅샅이 알아봤다. 솔직히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되며, 병원의 양심과 융통성, 재량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난 간호부장에게 노발대발 난리를 쳤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처사고 지역 보건소에 꼰지르면 병원이 감점받을 사건이며
이 병원에 감염대응팀이 있는지? 몇 명이며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코로나 방역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꼬치꼬치 물어봤다.
괜히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었다는 이유로 욕받이가 된 CRE어르신(괜히 미안합니다)과,
엄마보다 먼저 입원했지만 가래 석션 때문에 목을 뚫어 말씀을 못하시는 할머니는
사실 보호자도 자주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은 오직 병실 안에 공동간병인 뿐이었다.
그런데 공동간병인은 병원에서 월급을 받으니,
괜히 보호자에게 말해서 문제를 만들면 본인한테 좋을 게 없지...
우 C. 아이 C. ㅆㅂ.
이런 현실이 열 받고 화가 난다.
엄마가 아프시고 나서는 욕이 엄청 늘었다. 안 그럼 못 살 것 같다...
아프면 환자만 손해고, 보호자의 죄책감은 계속 쌓여만 가니까.
나의 항의 이후,
당장 CRE환자는 다른 병실로 이동했고, 간호부장은 태도가 달라졌다.
어찌나 엄마와 우리 여사님에게 친절하게 잘하는지. 또 한 동안은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오기도 했단다. 젊고 혈기 왕성한 보호자가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 수습을 하려는 듯했다.
음... 역시 지 X이 통했군....
이런저런 사건 사고는 있었지만
10개월간 이 재활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엄마가 회복되신 건 사실이다.
이 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보호자들의 댓글과 카페 환우들의 평가. 그리고 대학병원과의 거리. 대학병원 코디의 추천이었다.
병원 선택은 온전히 자식들의 몫이기 때문에
한 번 잘못 선택하면 고통은 부모님이 지니까 복불복.
꼼꼼히 알아보고 좋은 요양병원을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보호자인 나는 병원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코로나 시국에 면회를 가능하게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돈 걱정에 한숨이 바닥을 뚫지만
그나마 1:1간병인 여사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에 엄마와 소통을 할 수 있었고.
엄마의 말만 듣고 이 병원에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 대충 파악하는 정도다.
엄마와 같은 교회를 다니시는 수간호사님 덕에 엄마는 찬양도 따라 부를 수 있었고
야간조의 무뚝뚝한 간호사님은, 우리 간병인 여사님의 카리스마와 대립각을 세우며 혼나기도 했다.
매일 아침마다 입원한 환자들에게 문안 인사를 다니는 정형외과의 병원장.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지만, 희로애락 인생사를 다 꿰뚫고 사는 가정의학의 담당의사선생.
그리고 물리치료실에 내려가면 휠체어에 앉아있는 엄마를 아기 안듯 들어 올려 침대에 뉘어주는 정선생.
먼저 인사하며 다가와 어깨부터 발가락까지 한참을 주물러주는 다정다감한 김 선생과 엄선생.
엄마의 믿음 생활을 두고 직설적인 질문만 해서 엄마 속을 다 뒤집어놓는 오선생 등등....
이 병원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땐, 담당의사가 절망의 소리만 쏟아냈다.
백혈구 수치가 높다는 건 몸 안에 염증이 있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엔 대부분 신우신염. 욕창.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중환자실에 가실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라는 얘기였다.
또 사전 연명치료 동의는 어디까지 할 것인지
또 언제든지 응급실에 갈 수 있으니 병원 전화는 꼭 받으라는 당부는 충격적이었다. 그땐 두렵고 떨려서 엄청 울었었더랬는데...엄마가 회복되어 이 병원을 퇴원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축하해주는 의사의 말을 들을줄이야...
이 모든 건 매일 감사생활을 하면서,
회복되어 집에 갈 거라는 좋은 생각만 머릿속에 그리면서,
희망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엄마와 나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질는지는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일들이 닥칠지 모르지만
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과 감사의 마음으로
다시 엄마와의 새로운 생활들을 적어 내려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