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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Mar 22. 2022

강아지와 사람이 죽고 못사는 진화적 이유

개와 인간의 오래된 우정에 대하여 

 "뭉이야, 어떻게 우리집까지 오게 됐어?"


우리집 강아지 신뭉과 함께 생활한 기간도 어느덧 한 달하고도 반이 넘었다.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덩치가 커지고, 얼굴도 성숙하게 변하는 뭉이를 보면 참 재밌다. 처음에는 그저 낑낑대고 짖는 정도로만 의사표현을 했던 뭉이가, 점차 말을 알아듣고 나와 '상호작용'을 한다. 뭉이는 11월 14일에 태어난 말티푸로, 지금 약 4개월 조금 넘은 아기강아지다. 


뭉이를 어디를 가든 내가 가는 곳마다 그 작은 발바닥으로 잽싸게 따라온다. 가만히 앉아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골똘히 지켜보고, 별다른 움직임이나 자리를 뜰 징조가 보이지 않으면 그제서야 책상 아래에서 평온하게 개껌을 뜯기 시작한다. 매일마다 팔자좋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의 연속이다. 때때로 별빛을 머금은듯 반짝이는 눈동자가 내게 고정될 때면 언제나 심쿵 모먼트를 만끽하는 것은 행복의 덤이다.


당근 인형 장난감을 물기 좋아하는 신뭉(말티푸)


뭉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람과 강아지가 같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분명 신뭉은 본능적으로 크게 짖고, 미친듯이 사냥하고, 달리고, 아무데서나 응아 또는 쉬야를 보아야하는 '개(강아지)'다. 그런데 어쩌다 긴 역사를 거쳐 우리집으로까지 와서 같이 살게 되었을까?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먼 옛날부터 강아지와 동행한 이유가 궁금했다. 많은 유적과 그림에서도 개와 인간의 '찐 우정'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살펴볼 수 있고, 21세기를 사는 나 또한 매일마다 뭉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기록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하필이면 사람은 소나 돼지 또는 닭이 아닌 개를 들여와서 함께 살기로 했을까. 그리고 강아지는 왜 사람들을 친숙하게 잘 따를까? 


호기심이 발동해 검색을 하며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번 학기에 '진화생물학' 강의를 듣기도 하는 겸 과학적인 시각으로 이 질문을 해결해보고 싶었다. 알고보니,  현재까지 찾은 개의 유골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은 약 3만 3000년 전이라고 한다. 즉 개는 사람과 구석기 시대부터 함께한 것이다.


개와 닮은, 늠름한 늑대


개의 진화적 근원을 살펴본다면 이 설은 사실에 가깝게 받아들여진다. "야생 늑대가 사람과 가까워지면서 개로 진화했다"


세계적 개 연구학자인 레이먼드 코핑거 교수는 '피노키오 가설'을 제시했는데, 즉 제페토 할아버지가 피노키오를 자식처럼 키운것과 같이 사람이 늑대 새끼를 데려다 키우면서 개와 친밀해졌다는 것이다. 


그 옛날의 구석기 시대에는 동물들을 사냥하며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삶을 이어나갔으니, 인간은 종종 늑대 동굴을 습격했을 것이다. 그때 인간이 많은 늑대 무리를 없애는 과정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새끼들만은 죽이지 않고 데려다 키웠다고 한다. 역시 애들(또는 아이)만은 건드리지 말자는 인류 보편의 도덕이 3만년 전 구석기 시대에도 통했던 걸까. 아무리 경쟁 상대인 늑대라도 귀엽고 앙증맞은 새끼를 죽일 수는 없었던 인간의 마음은 절실히 이해되기는 한다.


어쨌든, 이것만은 확실하다. 어릴수록 인간을 잘 따랐던 늑대의 새끼를 데려와 함께 생활을 시작한 역사. 즉 인간과 경쟁할 정도로 공격적인 늑대는 없애고, 인간을 온순하게 잘 따르는 늑대만 남긴 것. 그렇게 긴 시간을 거듭해 온순한 늑대들만 수천 세대에 이르러 번식시켜, 오늘날의 개가 된 것이다. 




사람과 개의 환상의 조합 

나와 신뭉의 케미는 ? = �

개와 사람의 케미가 21세기까지 이어질 정도라면, 분명 새끼를 데려와 키워서 온순한 개체들만 남겼다는 사실 외에 또 다른 놀라운 이유가 있지 않을까?  


바로 그런 포인트에서 우리는 늑대와 인간의 사회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늑대가 인간 사회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고. 늑대의 경우 가장 높은 서열의 '알파 수컷'이 무리를 선도하며 사냥한 것들을 나눠주는데, 이는 인간의 부족사회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다.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서로 응집하는 사회와 협력자가 필요하니까!

더 놀라운 점은 늑대와 인간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환상의 케미를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늑대의 경우 험악하고도 치열한 사냥없이 먹이를 주는 인간이 있었다. 그 자체로 생존과 번식에 큰 장점을 누렸다. 반면 인간은 다른 동물을 사냥하거나 집을 지킬 때 늑대를 대폭 이용했다. 집 지키는 강아지의 역사는 엉겁의 시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시프먼은 2009년 벨기에의 인류학자 미체 제르몽프레가 현생 늑대, 현생 개, 선사시대 개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를 거론하며, 늑대도 개도 아닌 중간지대 ‘늑대-개’가 3만2000년 전에 살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개의 가축화가 인간이 농작물을 기르기 시작한 9000년 전에 이뤄졌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으로, 개를 기른 주체가 신석기 시대 농부가 아니라 구석기 시대 수렵 채집인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늑대-개’의 출현 시기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지은이는 여기에서 개의 가축화가 인간이 네안데르탈인과의 먹이경쟁에서 승리하는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끌어낸다. 인간은 바늘을 이용해 야무지게 털옷을 챙겨 입고, 위협적인 무기를 만드는 능력 외에도 ‘살아있는 도구’, 즉 가축을 ‘창조’함으로써 그들의 예민한 후각과 청각, 뛰어난 사냥 실력을 빌릴 수 있었다. 실제로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사냥하면 사냥개의 도움을 받지 않을 때보다 획득한 사냥감이 56% 증가한다고 한다. “인간이 동물을 처음으로 가축화한 것은 도구를 최초로 발명한 것과 맞먹는 커다란 도약”이었던 셈이다.

출처 : https://www.hani.co.kr/arti/PRINT/823572.html


실제로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인 팻 시프먼은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제쳐 생존한 이유에는 개와의 동맹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근육량도 많고 덩치가 더 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지내던 개가 그들을 추격해 힘을 빼놓으면 이를 이어받아 사피엔스가 화살 등을 쏘아 네안테르탈인을 무찌르는 팀워크를 뽐냈다고. 시프먼의 말에 따르면 네안테르탈인이 유럽을 약 20만년 간 지배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개가 동행한 시기부터 그들이 멸종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신기하다. 신뭉의 아주 오래전 조상이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장악할 수 있도록 협력해서 네안데르탈인을 무찔렀다니. 지금 이 순간 내가 글을 쓰고 사유를 하는 과정에 있기까지 인간과 늑대의 동행은 정말 필연이었던 것이다. 





뭉이와의 아이컨택트가 설레는 이유 


개와 인간이 동행하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를 이어온 역사를 살펴봤다. 그런데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아이컨택트(eye-contact)"다. 뭉이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마주칠 때, 지긋이 나의 눈을 바라볼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연결(connect)의 느낌이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러한 비언어적인 소통 또한 진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이어온 것이라고 한다. 


궁금증은 서로 적대적인 인간과 늑대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냐는 지점이다. 시프먼은 ‘아이 콘택트’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늑대는 사회성이 발달했으며, 시선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데 능하다. 이런 늑대의 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오랫동안 인간과 눈을 마주치면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인간의 눈 또한 개를 가축화하기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인간은 오랑우탄, 침팬지 등 다른 영장목 동물과 달리 흰자위와 열린 눈꺼풀을 갖고 있어 시선의 이동이 멀리서도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출처 : https://www.hani.co.kr/arti/PRINT/823572.html


즉 위의 참고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과 훨씬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며 '교감'을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무리 안에서 사회성이 발달했던 특성과 이어지는 점이다. 놀랍게도 사람 또한 다른 영장목 동물과 달리 열린 눈꺼풀과 흰자위를 지녀, 시선의 이동이 멀리서도 쉽게 드러나 개를 가축화하기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그래서 뭉이와 마주보는 그 시간에서 아주 특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구나, 싶다. 


지금까지 사람과 강아지가 서로 죽고 못사는 이유에 대해 진화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봤다. 뭉이의 든든한 견주로서 우리집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키우는 것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오랜 시간에 걸친 역사와 과정으로 신뭉과 만날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직 부족한 초보 견주지만, 매일마다 뭉이와 진정한 교감과 상호작용을 거듭하며 더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야지:)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는 많은 유기견들이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뭉이의 견주로서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고 따뜻한 실천에 이르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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