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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Nov 25. 2023

김장의 계절

갑자기 담근 알타리 김치의 맛


지난 주말 외출준비를 하려는데 엄마가 김치 거리를 가져왔다.
지인분이 농장에서 수확해 온 것을 나눔 해주신 것이다.
알타리, 무, 무청이 한가득이다.
그걸 보자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외출해야 하는데 김치 거리의 등장이라...
그 불안감은 몇 분만에 현실이 됐다.
성격상 일거리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치워야 하는 엄마는 외출준비를 하는 내게 꼭 바쁠 때 나간다며(?)
핀잔을 줬다.
일거리를 만든 건 내가 아니었음에도, 예정된 김장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약속을 다음 날로 미룬 나는 팔뚝을 걷어붙이게 됐다.

처음엔 한숨이 나왔지만 어쩌겠는가.
엄마 혼자 김치와 씨름하는 걸 두고 밖에서 마음속으로 계속 신경 쓰느니 함께 해치우고 끝내버리는 게 낫다.
대신 이걸 담그면 더 힘든 겨울 김장을 패스해도 될 테니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김치냉장고 청소를 하고 새우젓을 사고, 파, 마늘, 생강 등을 사고 김치통이 부족해 김치통도 급 추가로 샀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지만 대량의 겨울 김장을 담그는 것보다는 적은 품이다.

알타리가 절여지는 동안 찹쌀풀을 쑤고 파, 생강을 다듬고 마늘을  다진다.

고춧가루, 천일염, 새우젓과 한데 섞어 양념을 만든다.

(엄마표 김치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추구해서 새우젓 외에 다른 액젓은 일절 쓰지 않는다.)




이제 알타리에 열심히 버무린다.

16L 김치통 두통을 채우고서 알타리김치 담그기가 마무리됐다.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김치통을 둔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김치의 시간이다.

김치통 안에서 보글대며 재료들 간의 조용한 합주가 이뤄지겠지.




이틀 뒤 엄마가 김치가 아주 잘 익었다며 시식을 권했다.
김치통 뚜껑을 여는데 알싸한 양념 냄새 사이로 잘 익은 동치미에서 나는 새콤하고 톡 쏘는 무의 향이 풍긴다.
오~ 향을 맡고 감탄사가 나왔다.
이건 안 먹어봐도 이미 맛있다.
향이 이미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으니.
김치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넣었다.



톡 쏘면서 매콤하고 시원한 알타리가 입안에서 아삭거리며 풍미를 자랑한다.
이내 입안이 개운해진다.
겨울의 맛이다.
겨울에 담근 김치는 여느 계절보다 청량하고 아삭한 특유의 맛이 있다.
담글 땐 번거로웠지만 역시 담그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짜파게티에 알타리 김치를 곁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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