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 부서에서 평가 잘 받고 있는 게 낫지 않아?"
(부서 선배가 스크류에게)
주변 동료의 다른 부서 발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옆에 있던 선배는 부서에서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 나에게 그랬다. 여기보다 더 좋은 부서를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여기서 평가를 잘 받는 게 낫지 않냐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회사 생활에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우선순위 안에서도 손꼽히는 중요한 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다른 부서 가서도 인정받을 자신 있는데요?'
(그저 속으로만 외쳤다. 속으로만)
사실 회사 내의 어떤 부서를 가든, 어떤 업무를 하든,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문직이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겠지만, 사실 대기업 내에서의 업무란 누구나 대체 가능하도록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 업무 공백 시 대체 가능하도록 하나의 업무를 정/부 담당자를 나누어 설계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대체 가능한 구조적인 설계가 어느 누구나 어느 부서에서든 적응 가능하도록 판이 짜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부서에서 내가 인정받는다는 것은 나의 태도에 대해 인정을 받은 것이고, 현재의 내 추진력과 업무 역량이라면 타 부서에서도 잘 적응하리라는 것이 나의 그간 생각이었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부서를 옮길 세 가지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 가지씩 기준을 만들게 되었다. 당신이 부서를 옮기거나 회사를 옮기더라도 아래 기준으로 한 번쯤은 판단해 보길 바란다.
첫 번째. 상대방이 원하는 역량을 갖추었는가
우리 회사에는 사내 부서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내 공모가 있다. 개인이 원할 경우 부서나 업무를 이동하며 새로운 커리어를 쌓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완벽하게 개인에게 유용하다고 말하기엔 어렵지만, 어쨌든 새로운 도전을 공식적으로 도움을 주기에 개인적으론 대찬성이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은 주니어 시절, 입사 동기 A가 사내 공모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말로는 본인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우연찮게 서류 합격하여 면접까지 보러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지원한 부서에 지식이 많지 않던 A는 면접 전형에서 쓴 고배를 마셨다. 현재 부서와 업무는 연관이 있었으나, 당시 면접을 보게 된 부서에서 원하는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를 바라보며, 부서를 이동할 때는 개인의 지원 동기와 현재 업무도 중요하지만, 이동하려는 부서에서 원하는 역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요와 공급에서 수요는 크지 않은데 공급을 하려고 한다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기본 개념처럼 말이다.
두 번째. 현재의 나와 연관이 있는가
현업 엔지니어로 일하던 B에게는 우연찮게 인사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도 했다. 세부적인 업무를 말하기 어렵지만, 제안이 왔던 업무는 당시 B의 업무와 전혀 무관한 분야였다. 마치, 대학 2년까지 수학 전공인 그에게 3학년부터는 경영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현재까지 쌓아온 부서 업무나 경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결국 해당 부서로의 이동은 거절했다고 전해 들었다.
스타트업에서는 피벗(Pivot)이란 용어가 있다. 피벗이란, 원래 유지해 오던 비즈니스 모델이나 경영 전략의 방향을 틀어서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창조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방향 전환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커리어를 피벗 하길 바란다면, 나는 업무연관성이 없는 이동도 기꺼이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경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부서 이동을 추구한다면 현재의 자신과 연관이 없는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세 번째. 해당 부서의 리더는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가
부서의 리더 역량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리더의 역량은 대부분 해당 부서원들만 알기 때문에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해당 부서의 구성원에게 이야기를 듣거나 주변에 알려진 소문에 의해 판단해야 하는 점이 있다.
세 번째 케이스의 경우,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는 충족하지만 리더의 역량 때문에 거절한 경우이다. 설비의 유지 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C에게 현재의 업무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업무 제안이 왔다. 신규 설비를 기획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마침 그곳에 자리가 있었고 그의 경력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부서 이동을 권유한 조직의 리더인 K 부장께서는 그의 역량도 인정해 주었기에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해당 조직의 리더가 조직관리에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그렇게 흔들리는 과정에서 그에게 제안을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C 군은 K 부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에 듣게 된 소식에 의하면, K 부장은 해당 조직의 리더를 내려놓았고, 이후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리더가 아닌 위치로 말이다. 그리고 해당 조직의 구성원들은 다른 조직에 흡수되거나 일부 인원은 이탈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동할 부서의 리더가 본인을 잘 이끌어줄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당신이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리더가 있고
현재의 업무와 연관 있으며
나의 역량을 만족할 만한 곳
앞서 이야기한 세 가지 조건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될 것이다. 당신이 만약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부서를 찾는다면 부서 이동을 고려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이동하고 나서의 조직의 분위기나 구성원들의 케미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 글에서는 퇴사가 아닌 사내 부서 이동에 대해서 다루었다. 당신의 회사는 사내 이동이 경직되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중요한 점은 현재 나의 부서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당신의 현재 부서도 머무르기에 적합한지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적고 난 몇 달 후, 나는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별도 매거진/브런치북으로 다룰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