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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범 Apr 22. 2024

군산

또 다른 이야기3

1919년 3월 1일 삼삼오오 모여든 학생들이 오지 않는 민족대표 33인을 기다리다 경신학당 학생 정재용이 떨리는 목소리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그 음성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조선 팔도로 번져 나갈 때 군산에서도 어린 남녀 학생을 필두로 평생 농사밖에 모르던 농민들까지 두 팔을 번쩍 들어 만세 운동을 벌여 나갔는데 구암교회에서 외가 쪽 먼 친척이던 오인묵 장로님의 배려로 교회 일을 도우며 영명학교에 다니던 할아버지는 만세를 부르던 교회 여학생을 두들겨 패는 조선인 경찰 손광태를 엎어치기로 메쳐버리고 여학생을 구해 달아났지만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갇혀 삼 년을 복역하고 만세운동 때 구해주었던 살살이 꽃 이파리 같던 그 여학생과 결혼 후 간도땅으로 가 대한독립단에 들어 왜놈들을 몰아내고 독립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초를 다 겪었으나 해방 후 돌아온 고국 땅 고향에서 왜놈들 앞잡이로 온갖 패악질을 부리던 그 친일파 손광태가 또 경찰이 되어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경찰서를 찾아가 항의하였지만 비웃음과 모진 매질을 당하고 울분을 이기지 못해 돌아가시고 말았다.


구암동에 와 미루나무 그늘에서 한참 동안 교회를 바라보다 기차를 타기 전 영등포역 구내에서 우동 한 그릇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교회를 지나 동네 어귀 빨간 양철 지붕이 눈길을 끄는 국밥집엘 들어갔다.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고 아직 저녁이 되려면 먼 시간이라 국밥집 안에는 손님은커녕 주인도 보이질 않았다.

“계세요? 계십니까? 몇 번을 부르고 나자 문밖에서 “먼 일이요”하며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아~네! 혹 국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나요?

“쬠 기다리시요~”

주방 안에 들어간 여자가 한참 지나 밑반찬 몇 가지와 함께 막걸리 한 주전자를 탁자에 놓았다.

“아~저~ 막걸리 안 시켰는데요”

“그냥 한 사발 하소!”

“ 여즉 꺼 밥도 못 먹은 것 봉께 맘 편한 사람은 아닐 것인디….”

“대간해 보이기도 허고”

헛웃음도 나고 왠지 부끄럽기도 해 양은 사발에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마시니

“어떻소? 속이 좀 시원하요?”

“네~그렇네요.”

국밥을 내려놓으며 맞은편 의자에 앉는 여자가 빤히 바라본다.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는데…

“어쩌 간은 맞는 가요?”

“사내가 어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리 얌전하요”

“찬찬히 자시고 나도 막걸리 한잔 줘 보시오!”

“아~네!”

막걸리를 따라 주며 그제야 여자를 자세히 보니 이제 막 40이나 됐을 법한데 눈가에 뭔지 모를 그늘이 깊다.

여자가 입가에 묻은 막걸리를 지우며 노래하듯 이야기한다.

“너와 나의 생애 /그 사이에는 /벚꽃의 생애가 있다”

“ 내가 젤 좋아하는 하이쿠예요.”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한 때 시를 써보기도 했기에 그냥 막걸리를 마셨다.  

“교회에 관계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혹 역사 연구하시는 사람인가?”

“아니요”

“근데 뭐할러 이 동네에 왔을까?”

사투리와 표준어를 섞어가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여자를 보며 저 여자는 왜 이곳까지 와 국밥집을 하는 걸까?

자세히 보니 세련된 도시 여자의 분위기가 풍기는데…. 하고 생각을 하며

막걸리를 따라 주는데 “나도 여기 온지는 이제 3년밖에 안됐어요.”

“일본에서 살다가 3년 전에 여기 군산에 왔고 국밥집 하던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시고 다른 것 하는 것도 귀찮아 그냥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네~ 그렇군요.”

“거기는 참~싱거워요” 호~호!

“식사 다 하시면 어디 가실 건가요?”

“아~글쎄요…..”

“그럼 저하고 동국사엘 다녀와요”

“다녀와요?” “어디 갈 데 정했어요?”

“아니요” “그럼 가요!”

어둠의 그늘이 조금씩 깊어지는 동국사는 아침나절 혼자 찾았을 때 보지 못했던 목련꽃이 흰빛을 발하고 지기 시작하는 붉은 동백은 처연했다.

여자는 말없이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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